[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정치인을 겨냥한 테러가 빈발하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세 도중 총기 습격을 당했다. 앞서 EU의회 선거 기간에는 유럽 곳곳에서 정치인 테러가 잇달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초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가 목 부위를 칼에 찔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고, 3주 간격으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도 15세 소년에게 머리를 가격당해 입원해야 했다.
얼마 전 국민의힘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장에서 의자가 날아다닌 일도 있다. 전문가들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뿐이라고 진단한다. 적개심에 기댄 혐오 정치와 여기에 올라탄 강성 팬덤 정치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힌 결과라는 지적이다.
지구촌 정치인 테러에 몸살
정치인 테러는 정치 후진국에서 발생한다는 통념이 깨졌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주요 나라에서도 유력 정치인을 노린 폭력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적 분열에 따른 혼란이 특정 국가에만 해당하지 않는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총기 습격 한 달 전쯤인 6월 7일(현지시간)에는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코펜하겐 광장에서 선거 운동 도중 한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지난 5월에는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 외곽 마을에서 로베르트 피초 총리가 지지자들을 만나던 중 가슴과 복부에 총탄 세 발을 맞고 중태에 빠졌다가 최근 퇴원했다.
폴란드 총리 도날드 투스크는 자신도 암살 위협을 받아왔다고 공개했다. 6월 6~9일 유럽연합(EU) 입법기관인 유럽의회 제10대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에는 유럽 각지에서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잇따르고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독일의 기독민주당(CDU) 소속 로데리히 키제베터 연방하원 의원이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알렌의 유세장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인물에게 주먹으로 가격 당했고, 미하엘 스튀르첸베르거 전 자유당 대표가 반이슬람 활동을 벌이다 괴한의 칼에 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독일 연방범죄수사국(BKA)에 따르면 2023년 정치적 동기 범죄는 전년대비 1.9% 증가한 6만 28건으로, 연방정부 차원에서 집계를 시작한 2001년 이후 최다 건수이자 동년 대비 무려 10배나 증가한 수치다. 의회 선거가 진행 중인 프랑스에서는 50명이 넘는 후보와 운동원들이 물리적인 폭력을 당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전‧현직 총리가 잇따라 피습 당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지난 2022년 7월 선거 지원 유세에 나섰다가 전 자위대원이 쏜 사제 총기에 맞아 숨졌다. 일본 역대 최장기 총리 기록을 보유한 거물 정치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9개월 뒤 2023년 4월에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와카야마현 중의원 보궐선거 유세 현장에 폭발물이 터졌다. 기무라 류지라는 20대 남성이 기시다 총리에게 던진 폭발물을 경호원이 쳐내면서 기시다 총리는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정치인 테러는 실상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정치 수단’으로 테러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팬덤 정치’가 활발해지고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빈번하게 동원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현대 민주주의의 발생지인 미국에서 테러범에게 목숨을 잃은 대통령만 4명에 달한다. 1865년 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이 워싱턴DC의 한 극장에서 남부 출신의 배우 존 윌크스 부스의 총격으로 사망했고, 1881년에는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가 정신질환자의 총에 맞아 숨졌다. 1901년에는 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가 무정부주의자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으로는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자동차 퍼레이드를 하던 중 리 하비 오즈월드에게 저격 당해 사망했다.
대통령을 겨냥한 암살 시도도 이어졌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인 1981년 워싱턴 시내에서 정신질환을 지닌 남성이 쏜 총탄을 가슴에 맞았으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28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즈벨트,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 등도 연설 도중 총격을 받은 적 있다. 38대 대통령이었던 제럴드 포드는 사이비 교주인 찰스 맨슨의 추종자 등에게 2차례가 암살 시도를 당했다.
한국 안전지대 아냐...올해만 2건
한국도 정치테러에서 안전지대가 아니다. 올해에만 유력 정치인 2명이 습격당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월 2일 오전 부산 강서구 가덕도 신공항 부지 현장을 방문하고 지지자들과 만나던 과정에서 머리에 '내가 이재명'이라고 적힌 왕관을 쓴 60대 남성에게 공격당했다. 이 전 대표는 피를 흘린 채 쓰러졌고 2시간 가량의 수술을 진행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달 25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거리에서 신원 미상의 남성으로부터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했다. 괴한은 당시 “배현진 의원이시죠”라고 두 차례 물은 뒤 신원이 확인되자 공격을 시도했다고 알려졌다.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된 피의자는 미성년자로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송영길 민주당 전 대표도 2022년 3·9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재명 대선후보를 위해 서울 신촌에서 지원 유세를 하던 중 한 유튜버가 내리친 둔기에 머리를 가격 당했다.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맞는 일도 겪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지난 2018년 5월 국회에서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는 단식에 나설 당시 30대 남성이 휘두른 주먹을 맞았다.
2006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신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장을 찾아 단상에 오르다가 50대 남성이 휘두른 문구용 커터칼에 11cm 길이의 오른쪽 뺨 자상을 입는 ‘커터칼 피습’ 사건이 벌어졌다. 박 전 대통령이 치료를 받은 이후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대전은요"라고 말한 것은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한나라당에 열세이던 대전시장 선거 판세가 뒤집히는 등 지방선거 승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테러로 얼룩진 아픈 현대사 장면이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고 서거했다. 박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는 1974년 8월 15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진행된 광복절 기념식에서 박 대통령 암살을 기도한 문세광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염산 테러를 겪었다. 김 전 대통령은 신민당 원내총무 시절인 1969년 6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 투쟁을 벌이다 귀가 도중 괴한 3명으로부터 차량에 염산 테러를 당했다. 1973년 8월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도 있었다. 당시 유신 반대 운동을 벌였던 김 전 대통령은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납치당해 바다에 수장될 뻔하다 가까스로 생환한 바 있다. 좌우 진영이 날을 세웠던 해방 직후에는 정치 테러가 빈번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대표적이다. 1949년 6월 숙소이자 집무실인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됐다. 1940년대 당시 유력 정치인이던 송진우, 장덕수, 여운형도 테러에 목숨을 잃었다
정치인의 숙명?... 갈등 한복판에서 대중 노출
큰 족적을 남긴 정치 지도자가 쉽게 공격 대상이 되는 건 숙명이라는 견해도 있다. 정치인은 항상 갈등의 한복판에서 대중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1948년 1월 30일 반이슬람 극우파 청년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파키스탄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부토 전 총리는 2007년 12월 27일 라왈핀디에서 유세한 뒤 총에 맞아 숨졌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1995년 11월 4일 텔아비브에서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에 반대하는 유대인 인종주의자 청년 이갈 아미르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외에도 파트리스 루뭄바 초대 콩고 총리, 올로프 팔메 스웨덴 총리, 조란 진지치 세르비아 총리, 무함마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라피크 하리리 레바논 총리 등 많은 존경받는 정치지도자들이 암살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문제는 모든 정치인이 “나도 언젠가는 당할 수 있다”는 ‘피습 포비아’에 사로잡혀 정치가 굉장히 위축된다는 점이다. 포비아(Phobia)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적을 놀라게 하던 전쟁의 신으로 알려진 포보스에서 유래한 용어로, ‘공포’와 ‘두려움’을 의미한다.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하는 정신질환 또는 불안장애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포비아 공포증은 일상적인 생활이나 활동에 방해를 일으켜 해를 끼칠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이윤우 디오피니언 대표는 “내 경험상 실제로 정치인들이 체감하는 공격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크다”며 “팬덤 정치에 익숙해지다 보니 우리 진영과 조금 다른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자신의 경험을 토로했다. 이 대표는 “상대를 무조건 ‘악마화’하는 정치 문화를 극복할 해결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정치인 테러가 주로 선거유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정치인 대중 노출 빈도가 높아지는 것과 함께 선거 메시지가 극단적으로 자기 지지층만을 타깃으로 한다는 분석이다. 민주정책연구원 이진복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전략은 ‘51% 전략’이다. 공화당의 선거 브레인 칼 칼 로브(Karl Rove)가 제시한 ‘51% 전략’은 철저히 승리지상주의로 설계된 로드맵이다. 그는 지난 2000년 미국 대선이 끝나자마자 치밀한 대선평가에 근거, 50 대 50의 선거 구도를 깨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1%만 더 이기면 된다는 51% 전략을 도출했다. 2000년 대선 평가에서 칼 로브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발견은 고정지지층이 경쟁 상대보다 더 크다면 부동층에서 패배하더라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지층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심화(Deepen, not broaden)’한다는 전략이다. 지지자 동원에 집중하는 네거티브 올인 전략을 통해 실제로 2004년 대선에서 공화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바로 이 공화당 전략의 극단화, 네거티브 전략이 ‘트럼프 현상’에 내재되어 있다. 지지층을 심화시키려 유권자의 분노를 극대화하기 위해 ‘상대 악마화’가 동원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좋아서 투표하는 게 아니라 상대에 대한 분노로 투표한다”라는 말은 이제 선거 전략의 교범이 되었다.
극단의 정치 생태계가 테러 자양분
상대 진영을 향한 반감은 투표 행위나 단순 비판을 넘어 이제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를 상대로 흉기 테러를 저지른 범인은 “이 대표가 대통령이 돼 나라가 좌파세력에 넘어가게 되는 것을 막고, 이 대표가 좌경화된 세력에 공천을 줘 국회까지 넘어가는 것을 저지하려고 범행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런 극단적인 정치 신념의 기저에는 팬덤 정치에 기대 상대에 대한 혐오를 일상적으로 생산해내는 정치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전 대표 피습 당일 ‘이봉규 티브이(TV)’를 비롯한 일부 극우 유튜브 채널 등에선 피습 사건이 이 대표 쪽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폈다. ‘가짜 칼’ ‘가짜 피’라는 가짜뉴스도 퍼져나갔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민주당 온라인 당원 게시판과 이 대표 팬카페 등에는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부정적인 여론을 덮으려는 것” “피습의 배후는 윤석열” 등의 주장이 올라왔다. 배현진 의원 피습 사건 직후 강성 보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는 범인에 대해 “이놈 왠지 이준석과 민주당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한 몸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폈다.
또다른 보수 유튜브 채널 ‘뉴스위크’는 영상에서 “학생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은 전교조의 결과물”이라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비단 유튜버뿐만이 아니었다. 전현직 국회의원은 물론 정치권 안팎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들이 사실인냥 확산되었다.
이런 혐오·막말·팬덤 정치는 진영 간에만 있는 건 아니다. 같은 진영 내에서도 온갖 폭언과 증오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을 일컫는 ‘개딸’은 친이재명의 홍위병 역할을 자임하며 조금이라도 이재명 전 대표와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내면 득달처럼 공격한다. 민주당을 ‘이재명 일극체제’로 만들어 당내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는 비판이 쏟아지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는 8.18 전당대회는 ‘이재명 추대식’이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민의힘도 예외는 아니다.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는 7.23 전당대회 레이스가 막바지인 가운데 당권주자 간 폭로와 공세는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분당 전대’ ‘자폭 전대’라는 자조적인 말이 흘러나온다. 급기야 지난 15일 충청권 합동 연설회에서는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당일 육탄전은 유튜버 간 몸싸움에서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극렬 유튜버들은 특정 정치인을 공격하는 데 앞장선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과거 정당판에서 활개 친 ‘정치 깡패’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에게 정치적 갈등은 수익과 직결된다. 갈등을 증폭시켜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면 구독자들이 지지 성향에 따라 “속 시원하다”며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극렬 유튜버들이 방송에서 욕설과 폭언을 하며 시청자들을 자극하는 이유다.
‘팬덤 정치’ 분노 정치에 활용...악순환 잘라야
전문가들은 일상화된 혐오 정치가 빈번하게 극단적으로 표출로 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세대를 막론하고 내면화한 정치혐오가 특정 정당이나 인물에 대한 증오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정치 팬덤이 활발해지면서 팬덤을 정치 양극화와 분노 정치에 활용하는 정치 행위가 심해질수록 테러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정치권이 공존·공영의 가치를 회복하지 못하면 이 같은 테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도 팬덤정치가 양극단으로 치닫다 보니 혐오가 증오정치로 악순환하면서 ‘정치 테러’가 발생했다”며 “정치 지도자들이 서로 남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는 상황에서,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은 생전에 “정치는 전쟁이 아니다”며 “정치는 말로, 전쟁은 군인이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최근 정치인들의 메시지가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 지도자들이 먼저 극단적인 언어가 정치 테러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