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이대로 괜찮을까? 여당인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폭 전대’ ‘분당 전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당권 레이스 막바지까지 후보들 간 ‘이전투구’ 진흙탕 싸움이 지속됐다. 전당대회 이후엔 단일대오로 거대야당의 탄핵공세를 막아내야 하는데 뭉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전당대회는 ‘살벌한 축제’다. 수많은 당원이 모여 당의 새 지도부를 뽑는 만큼 기대와 설렘이 교차한다. 반면, 진영 내 미래 권력을 두고 벌이는 투쟁이라는 성격상 온갖 술수와 방법이 동원되는 전쟁이기도 하다. 그래서 깊은 상처를 남기는 잔혹사로 기록되기도 한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잔혹사, 보수 괴멸 직전으로 몰아
2007년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MB)·박근혜 두 대선 후보 경선은 말 그대로 ‘살벌한 축제’였다. 한국 정치사에서 손꼽을 정도의 정치 이벤트였다. 경선과정에서 나온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어록들은 아직도 인터넷 상에서 회자된다. 하지만 당시 서로 제기한 두 후보의 의혹들은 훗날 보수진영 전체를 궤멸 직전으로 몰고 간 사안이 됐다. 그렇다면 왜 두 후보 간 경쟁은 무리수를 둘 만큼 격화된 것일까. 그 이유는 당내 경선이 곧 대선이었기 때문이다.
임기 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또 당시 여당인 대통합민주당 대권주자였던 정동영 후보 인기도 높지 않았다. 당시 두 후보 중 누가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대한민국 최고 권좌를 차지할 가능성이 컸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당 내 계파 갈등이 격화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경선 과정에서 ‘친이계’는 “최태민이라고 하는 사람과 그의 딸 최순실이라는 사람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박근혜 후보를 직격했다. ‘친박계’는 도곡동 땅·다스 실소유주, BBK 주가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이명박 후보를 몰아붙였다.
경선 과정에서 두 후보는 자신의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10년 후에 사실로 밝혀지며 실형이 선고됐다.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 재임 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 원이 확정됐다. 박근혜 후보는 탄핵된 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20년·벌금 180억 원이 선고됐다. 2007년 당내 대선 후보 경선 후유증으로 두 후보는 모두 감옥살이를 해야 했고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참패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7.23 전당대회 ‘자폭 전대’?... “자폭수준은 아나”
오는 7월 2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한 4명의 당권 주자들은 지난 한 달여 레이스 기간 내내 거친 언어를 동원해 폭로전을 이어갔다. 보다 못한 당 비상대책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가 제재에 나섰지만 후보들은 잠시 주춤하는 듯싶더니 곧 거친 언사를 동원한 공격을 이어갔다.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 비례대표 사천 의혹에 이어 ‘댓글팀’ 의혹 등 비방·폭로전이 끊이질 않았다. 주로 한동훈 후보를 겨냥한 게 대부분 이었지만 한 후보도 이에 뒤질세라 나경원 후보의 ‘패스트트랙 공소 취소 부탁’을 폭로하면서 기름을 부었다. 당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한 후보가 즉각 사과에 나섰지만 이미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급기아 지난 15일 충청권 합동 연설회에서는 의자가 날라다니는 육탄전까지 벌어졌다.
당 선관위 관계자는 “자폭까지는 아니고 자해수준이다”라며 “분당까지는 안 갈 것이지만 봉합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나경원·원희룡·윤상현·한동훈 후보의 비방·폭로전과 지지자들 간 신경전이 과열되면서 전당대회 후유증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누가 당대표로 당선되더라도 전대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을 봉합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한동훈 후보가 예측대로 당권을 잡을 경우, 당내 다수 계파인 친윤계와 갈등이 더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어대한’은 무너졌지만 한 후보가 대세인 건 맞다”면서 “한 후보와 용산 간 대립 각이 더 날카로워 질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한 후보와 친윤계 간 갈등이 고조된 발화점인 ‘채상병특검’과 관련해선 “채상병 특검은 언젠가 용산이 받아들여야 한다”며 다만 “전당대회가 끝나고 공수처 수사가 마무리 되면 국회차원에서 발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분히 ‘한동훈 당대표’ 후보와 윤석열 대통령간 협의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대 이후 인화성 강한 사안들... 野에 공격 소재 한상 차려줘
당 일각에서는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사안들이 향후 정국 전반으로 번질 수 있는 인화성이 강한 사안들이라는 점을 우려한다. 지난 2007년 대선 후보 경선과정서 불거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혹들이 보수진영에 괴멸적 타격을 준 사례 때문이다. 당장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범죄 집단의 자백 쇼를 보는 것 같다며 한동훈 국민의힘 후보의 과거 댓글팀 운영 의혹과 나경원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의 공소 취소 청탁 의혹에 대해 고발조처하겠다고 예고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도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불법 폭로 대회가 됐다”며 “반드시 수사를 통해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불법이 드러날 경우 엄정하게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공세에 나섰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수도권의 한 당협위원장은 “우리가 야당이 배불러 죽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전대 이후가 심히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당내에서 이런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또 있다. 여당임에도 야권과의 의석수가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현 상황 때문이다. 민주당은 검사 4인 탄핵, 대통령 탄핵 청문회 개최 등 윤석열 정권을 압박할 현안들을 줄줄이 예고하고 있다. 의석수 차가 압도적이어서 국민의힘은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말고는 다른 뽀족한 방안이 없는 상황이다. 국정운영의 책임이 있는 여당이라는 점 때문에 장외 투쟁도 쉽지 않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실 관계자는 “당이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하고 전당대회 후유증으로 계파 간 분열이 지속된다면 당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