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이 시작된 이후 주말과 공휴일에 문을 닫는 약국이 늘어났다. 긴급상황에 약품을 구할 수 없는 국민들의 불편을 막고자 지역마다 순번을 정해 돌아가던 당번약국을 대신해 심야응급약국의 전국 확대가 시도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어떤 것이 “국민을 위하는 것”이냐는 점이 화두로 떠올랐다. 경실련 측은 의약품 정책에서 국민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정책적 지향이 수립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안전성과 편리성을 근간으로 안전한 일부 일반 약에 대해서는 약국이외의 장소에서의 판매를 허용해 줄 것을 주장해 왔다.
제도 에두르지 말고 약국 외 판매 서둘러야
최근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에 대한 논의가 재고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가정상비약을 일반의약품과 같이 분류한 약사법(제44조와 제50조, 의약품판매)에 의거하여 약국에서만 판매되도록 규제됨으로서 국민들이 약국이 문을 닫는 주말이나 심야에는 가정상비약 구매에 큰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 약사회에서 추진한 24시간 약국은 내부적인 문제로 인해 시·도 약사회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했다. 이를 보완하기 시도한 심야응급약국제도 역시 전국 50곳에 불과해 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 요구에 대한 궁여지책일 뿐이라는 지적 역시 이어진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10여년 전부터 일반 국민, 시민사회단체, 소비자단체, 정부부처, 국책연구소 등은 안정성과 유효성, 사용적합성이 보장되는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허용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작년 4월 초 대한상공회의소는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에 관한 소비자 인식조사' 를 통해 소매점에서의 비처방약의 판매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 OECD의 한국 보건의료개혁보고서(2010)에서도 아스피린과 같은 간단한 약물의 약국 외 판매허용이 도움이 될 것으로 지적된 바 있다.
한편 대안으로 제시되어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심야응급약국 운영 실태에 대해 작년 9월과 10월, 2개월에 걸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모니터링한 결과, 일반약국의 참여율 저조, 서울·경기 지역에의 편중 등으로 국민 편의가 외면되고 접근성이 떨어져 실효성이 적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에 의약품 구매 불편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011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를 포함하지 않음으로서 대통령으로부터 감기약 등 일반약의 슈퍼 판매 필요성을 지적당하는 상황을 자초하였으며, 특정 직역을 위한 전시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마저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현재 실행하고 있는 제도인 심야약국이나 당번약국제도보다는 유효성이 입증된 가정상비약에 대해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실련 측은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가 이루어지게 된다면 국민 편익이 증대되고, 제약업체간의 가격경쟁에 의한 약값 인하로 가계부담의 감소 등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대한 약사회, “약국 정체성 잃어선 안돼”
그러나 대한약사회 측의 입장은 강경하다. 단 1알, 단 1병의 의약품도 약국 이외 어느 장소에서든 판매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힌 대한약사회 경기지부 측은 지난 8일 제 1차 지역 분회장단 회의를 개최하고, 최근 사회적으로 일고 있는 일반의약품의 슈퍼판매 허용 논의에 대해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그동안 약사직능과 약사 정체성에 대한 대국민 홍보부족과 대한약사회의 현안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가 오늘과 같은 사태를 초래하게 된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분회장은 "의약분업 이후 약사들이 처방전에 집중한 나머지 일반의약품의 활성화와 복약지도 등에 있어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부분에 대해 통절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면서 "약국과 약사직능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 기여도 등 순기능에 대한 대국민 홍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직능 바로 알리기 캠페인 등을 통한 홍보역량을 강화함과 동시에 약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오는 그릇된 정책과 판단에 대해서는 약사회 대표기관인 대한약사회가 의지를 가지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현태 지부장도 "의약품 슈퍼판매 허용논의 논란의 해결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면서 "핵심은 국민의 안전이 우선이냐, 편의가 우선이냐를 고민하면 정답은 바로 나온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의 경우에도 슈퍼에서 판매되고 있는 유명 진통제가 자살도구로 빈번히 쓰이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가 이루어질 경우의 단점을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