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취재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계열사 70곳이 42개 금융사로부터 3747억원을 빌린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사들은 유씨 일가 계열사에 수천억원대 대출을 해주면서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회사의 자산건전성을 '정상'으로 분류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특혜를 제공했다.
권순찬 금융감독원 기획검사국장은 15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지난달 18일부터 유씨 일가의 금융회사 특혜대출, 금융회사 대출금 유용, 외화밀반출, 재산 해외도피, 회계분식,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일부 금융권의 부당 대출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같이 밝혔다.
권 국장에 따르면 국내 42개 금융사가 유병언 일가 계열사 70곳 중 46곳에 3365억원을, 유병언 일가와 측근 90명에게 382억원을 빌려주는 등 3747억원을 대출해줬다.
◇문어발처럼 얽힌 70개 계열사… "조사과정서 더 늘 수도"
금감원이 확인한 유병언 일가 관계사는 모두 70곳에 이른다. 이들 계열사는 지주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가 천해지(42.8%)를, 천해지가 청해진해운(39.4%)을 지배하는 등 얽히고설킨 지배구조를 나타냈다. 이들 계열사 중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회사는 46곳이었다.
천해지의 여신금액이 934억원으로 전체의 28%를 차지했으며, 뒤를 이어 기독교복음침례회(515억원), 아해(249억원), 온지구(238억원) 순이었다.
금융회사별로는 13개 은행이 2822억원(83.9%), 11개 상호금융사가 322억원(9.6%)으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여신전문회사(8곳), 보험사(3곳), 저축은행 1곳 등이 유병언 계열사에 자금을 제공했다.
70개 계열사 중 외부감사대상인 회사는 이원아이홀딩스·천해지·세모·아해·트라이곤코리아·에그앤씨드·온지구·문진미디어·청해진해운·다판다·노른자쇼핑·국제영상·티알지리츠 등 13개사로, 이들 회사의 총채권은 256억원, 총채무는 449억원이었다.
관계인 중에서는 에그앤씨드의 대표이사인 이석환씨가 가장 많은 금액인 92억원을 빌렸으며, 장남 대균씨(69억원), 차남 혁기씨(35억원), 김혜경씨(27억원), 처남 권오균씨(15억원) 역시 금융사로부터 수십억대 대출을 받았다.
권 국장은 "감사보고서를 공시하는 상장사나 외부감사대상 기업의 경우 관계사를 파악할 수 있으나, 그 외 감사보고서를 공시하지 않는 기업은 자금추적 등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었다"며 "때문에 관계사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42개 금융사의 납득하기 어려운 대출…자본잠식 '정상' 분류하기도
문제는 42개 금융사가 유병언 일가 계열사에 대출해준 3700억원대의 대출이 부실 투성이라는 것이다. 미래수익성 과대평가, 한도초과 대출, 대출조건 미이행 방기 등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권 국장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에 대출을 취급한 한 금융사는 담보를 받으면서도 중요사안인 청해진해운의 운항관리능력과 선박우선특권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았다.
또 기독교복음침례회가 자금잠식으로 은행대출을 받기 어려운 관계사 트라이곤코리아의 채무상환 지원을 위해 대출을 받는 것을 알면서도 자금용도 심사를 생략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담보가를 평가할 수 없는 교회건물과 토지 등이 담보로 잡혔다.
또 완전자본잠식으로 부실징후 기업에 해당하는 관계사(트라이곤코리아 등)의 대출금 자산건전성을 '정상'으로 분류하는 등 부적절한 관리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청해진해운 관계사인 노른자쇼핑의 경우 기업운전자금으로 받은 7억원의 대출을 다른 용도에 사용했는데도 여신을 취급한 금융사는 세부 자금명세와 점포 개설 여부를 점검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대출승인조건이 이행되지 않았음에도 별도 조치가 이뤄지지 않거나 이자가 연체되는 상황에서 특별한 조치 없이 대출기한이 연장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발생했다.
신협의 자금 관리는 더욱 심각했다. 일부 신협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유병언 일가의 인물 4명에 대해 특별한 이유없이 66억원을 송금했다.
또 유병헌 계열사 하니파워에 대해 연체 중인 은행대출 8억2800만원을 대환취급하고, 은행(10.8%)보다 낮은 금리(8.8%)를 적용하는 한편 연체이자 3000만원을 감면해줬다.
모 신협의 경우 관계사인 금수원의 지시로 매년 기독교복음침례회 여름수련회 행사비를 지원했고, 유병언씨의 사진 4점을 1100만원에, 달력 12개를 240만원에 각각 구입했다.
◇분식회계·계열사간 부당 자금거래
유병헌 일가의 재산 증식의 배경에는 분식회계와 계열사간 부당 자금거래가 자리잡고 있었다. 권 국장에 따르면 유병언 일가 계열사들은 자산가격을 부풀리는 등 회계분식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천해지의 경우 특수관계자인 아해프레스에 지급한 선급금 164억원과 재고자산 매입거래 4억원을 감사보고서 주석에 기재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많은 회사의 관계사가 관계사간 지급보증, 유형자산 매매, 매출, 매입거래가 재무제표 주석에 누락됐다.
계열사간 부당 자금거래도 심각했다. 청해진해운 관계사들은 신협 등을 통해 727억원을 대출받아 다른 관계사에 514억원을 지원했다. 에그앤씨드는 한국제약이 9억원에 취득한 부동산을 9개월 후 17억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유병언 일가 계열사들이 관계사 종업원을 동원해 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1994년~1997년 세모 종업원 1035명이 보증기관의 소액대출보증서를 받아 184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실제 돈을 빌린 주체는 세모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병언 일가, 외국환법 위반해 260억원대 불법송금
유병언 일가 계열사들은 부당 대출와 분식회계 등으로 끌어모은 자금 일부를 해외로 불법 송금했다.
권 국장에 따르면 천해지 등 관계사는 유병언 일가가 해외에 설립한 현지법인에 사진작품 매입, 저작권료 지급 등의 명목으로 2570만달러(15일 기준 약 263억원)를 송금했다.
또 이들 관계사들은 해외현지법인 투자지분을 제3자에게 무상양도하거나 헐값에 처분해 760만 달러(15일 기준 약 77억원)의 투자자금 회수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권 국장은 "외화 유출 과정에서 해외현지법인 자회사 설립신고위무 위반, 투자관계 종료 후 청산보고서 미제출 등 총 16건의 외국환거래법규 위반사항이 적발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융회사와 임직원의 위법·부당행위에 대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검사과정에서 드러난 금융관행과 제도상 문제점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개선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