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권 위협받는 중소상인들
대형마트업체들은 추가 출점을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처질 수밖에 없는 사업의 특성상 목이 좋은 곳을 찾아 치열한 출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각 지역에 출점소식이 들릴 때마다 생존권을 위협받는 영세 상인들은 반대시위를 벌이며 출점을 가로막고 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신규점포를 개장할 때마다 요란법석을 떨던 대형마트들도 소리 소문 없이 의식을(?) 간소화하고 있다.
이마트는 최근 104호 광명점을 오픈하면서 기존의 방식과 달리 홍보 없이 문을 열었다. 주변 중소상인들은 개장 첫날부터 ‘개점 반대’를 외치며 극렬하게 저항해 왔다.
상인들은 대형마트의 공세를 막기 위한 나름대로의 대책위원회까지 조성해서 반발하고 있다.
대형마트의 출점은 지자체와의 갈등도 진행 중이다.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은 출점을 둘러싸고 전주시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전주시 덕진구 일대에 매장을 짓고 건물 사용승인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시가 반려해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더구나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몸집 까지 줄여가며 출점하고 있어 지역 상인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진다. 기존의 3천평대 이상의 초대형 매장을 수백평대의 ‘소형마트’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대형마트의 이같은 전략 변화는 대형마트 간 출점 경쟁으로 더 이상 대형 매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고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대형 매장 입지 규제가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등 신규출점 여건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형점포 출점이 본격화될 경우 명맥만 유지해오던 슈퍼마켓과 동네 구멍가게 등도 잠식당할 위기에 처해진다.


최경주 대형마트.SSM확산 비상대책위 사무국장은 “대형마트 때문에 죽은 중소상인들이 동네 상권을 노린 소형마트의 확산으로 두 번 죽는다”며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해 정부 차원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역경제 기여도는 낮고 역외유출 심화
대형마트의 진출이 잇따르면서 매출은 급증하고 있지만 역외로 유출되는 지역자금이 상당해 사실상 지역경제 기여효과는 미미하다는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는 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2년 경북지역의 경우 대형마트의 전체 매출은 3천110억여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대형마트의 증가로 지난해는 11월말까지 매출액이 7천340억여원으로 4년 만에 두 배를 넘었다. 지난해 대전에서는 대형 유통업체가 100여억원의 수익을 올렸지만 지역복지사업에는 수익의 0.25%밖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통계가 발표된 적이 있다.
대형 유통업체가 지역경제에 크게 도움을 주고 있지 못한다는 주장이 입증된 셈이다. 매장에서 거둬들인 수익을 매일 본사로 송금하면서 지역경제의 쏠림현상을 부추긴다. 대형마트의 매출 액 중 종업원 임금과 관리비, 현지 물품구입비 등을 제외하고는 대형마트의 본사가 있는 서울 등으로 유출된다. 연간 매출 40억원 이상인 업체는 상공회의소법에 따라 해당 지역의 상공회의소 회원이 되어 회비를 납부해야 하지만 회비를 납부 한 대형마트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또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공산품의 구매도 생색내기 수준에 불과한데다 고용창출 기대효과도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전통시장 등 기존 상권의 위축은 생존권을 위협할 정도다. 이 때문에 경북 상주에서는 농민회 등이 대형마트 규탄시위를 벌였고 문경에선 대형마트 입점 반대운동이 일어날 조짐이다.
이원재 한겨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지역에 뿌리를 둔 점포가 뿌리 채 뽑혀나는 현상을 막기 위해 기업의 활동에서 사회책임경영 측면도 주목해야 한다”면서 “외국의 경우 대형유통업체가 입점하면서 지역의 소규모 토종업체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지역경제의 기반 위에서 영업하는 상생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에서는 제조업체와 유통업체의 상호 동반성장과 협력을 위한 ‘제조-유통 상생협의회’가 발족했다.
대형마트, 유통시장 잠식
대형마트가 증가하면서 기존 중소 유통업체의 매출을 상당부분 잠식, 유통시장의 ‘공룡’으로 군림하고 있다. 1996년 유통서비스업 개방 당시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 유통시장이 외국계 대형할인점에 먹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개방 10년 만에 국내 유통업체들은 한판 승부에서 이기고 외국계 유통업체를 퇴출시켰다. 까르푸와 월마트는 한국시장에서 유독 힘을 못 쓰고 국내 업체에 인수되면서 한국에서 떠났다.
하지만 성공 뒤엔 희생자가 따랐다. 2000년 매출액을 100으로 볼 때 대형 유통업체 매출액은 1996년~2006년 사이 20.1에서 2천111로 10배 넘게 성장한 반면, 재래시장을 포함한 기타 소매점은 97.9에서 93.4로, 슈퍼마켓은 114.4에서 95.5로 줄었다. 1998년 8천91개였던 대형유통점은 2005년 307개로 330%나 늘었지만 영세소매점은 70만 6천개에서 62만 6천개로 11.3%가 줄었다. 대형마트의 성장은 이처럼 재래시장의 위축을 초래하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강구하며 영세 상인의 회생을 도왔지만 ‘반쪽자리’에 불과했다. 2002년 재래시장 활성화 특별조치법이 마련됐지만 시장과는 손발이 맞지 않았다. 재래시장 활성화대책, 소상공인지원책을 중심에 두고 한계에 이른 자영업자를 고용지원서비스를 통해 근로자로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02년부터 2005년까지 3천719억원을 들여 환경을 개선하고 올해도 1천906억원을 투입해 경쟁력을 높이기로 했다. 하지만 시장의 변화속도를 정부의 정책이 따라가지 못한다. 강원도 춘천시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올해까지 200억 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지만 현재까지 재래시장의 매출액이 얼마나 증대됐는지 고객은 얼마나 늘었는지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모양만 갖춰놓고 현실적으론 가진 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쓰고 있다는 불만이 계속되고 있다.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대형마트와 영세상인간의 양극화는 괴로운 문제지만, 국제규범이나 소비자 후생, 유통산업 발전 등을 볼 때 정부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고 한 것도 사실상 대형마트의 규제에 반대하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형마트의 출점을 반대하는 지역 상인들은 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한 생존권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