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가 헌법의 정교분리원칙에 위배된다며 전사자 유족단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오사카(大阪)지방재판소(지방법원)가 28일 기각 판결을 내렸다.
아베 총리는 2013년 12월26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 등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에 일본과 대만 등에 거주하는 전사자 유족 765명은 2014년 4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1인당 1만엔(약 10만 2000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오사카지법에 제기했다.
아사히 보도에 따르면, 그러나 오사카 지법 재판장은 이날 판결에서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는) 원고들의 법적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라며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장은 신사 참배가 헌법의 정교분리원칙(종교와 정치의 분리 원칙)에 위배되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또한 향후 총리의 신사 참배를 금지해달라는 원고 측 호소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베 총리의 참배에 대해 판결을 내리기는 오사카 지법이 처음으로, 현재 도쿄 지방법원에도 국내외 633명이 제소한 상태다.
일본의 현직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아베 총리가 처음이 아니다. 보수 정치의 거목이라 할 수 있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전 총리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도 재임시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소송이 제기된 바 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1985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으며, 이로 인해 제기된 소송에 대해 1992년 오사카 고등재판소는 "위령의 목적이라도 해도 객관적으로 종교 활동의 성격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며 위헌 소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2001~2006년 집권한 고이즈미 전 총리의 참배에 관해 2006년 최고재판소는 소송을 기각하는 한편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고재판소의 이러한 판결이 나오기 전 하급심 재판소인 후쿠오카(福岡) 지방재판소와 오사카(大阪) 고등재판소에서는 현직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헌법이 금지하는 '종교적 활동'에 해당한다"며 위헌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12월 26일, 관용차를 타고 야스쿠니 신사로 이동해 참배했다. 그는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라고 기재해 10만엔 상당의 헌화료를 내기도 했다. 헌화료는 사비로 충당했다.
20~80대의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원고단은 전사자 유가족과 피폭 2세, 종교인들로 이뤄졌다. 이들은 아베 총리가 관용차를 타고 이동한 점, '내각총리대신'이라는 공적 직함으로 헌화료를 납부한 점 등과외교 마찰이 예상되는 한국이나 미국에 신사 참배를 사전 통보한 점을 근거로 "직무상 공적인 성격의 참배다"라고 지적, 헌법 20조의 정교분리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원고단은 태평양 전쟁 책임자인 A급 전범을 포함한 전사자를 '영령'으로 모시는 종교시설을 국가 대표자가 특별히 지지하는 인상을 줬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안보법 통과를 주도한 아베 총리가 이전의 군국주의를 지지하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전쟁 준비 행위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는 "신사 참배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입장에서 총리 개인의 종교상 자유의 범위이므로 정교분리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배시 관용차를 사용한 것은 경비상의 사정으로, '내각총리대신'의 이름으로 헌화료를 낸 것도 지위를 나타내는 관례상의 행위에 불과하다고 변명했다. 고이즈미 참배 소송에 대한 2006년 6월 대법원 판결이 "참배 행위로 불쾌했다고 해도 손해 배상의 대상이 되는 법적 이익의 침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한 것을 근거로 이번 참배 역시 구체적인 손해는 없다고 반박했다.
야스쿠니 신사 측도 2006년 대법원 판결 후, 총리의 신사 참배가 개인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의 영령을 합사한 시설로,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246만 6000여명이 합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