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지난해 불거진 자동차 워셔액 안전성 논란에 따라 메탄올(메틸알코올) 성분 워셔액에 대한 안전기준이 강화됐으나, 정부가 이 과정에서 인체 위해성 평가를 거치지 않고 해외 기준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 같은 규제가 올해 8월에서야 시행돼 시중에는 여전히 메탄올 워셔액이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메탄올 워셔액 유통·판매에 대해 6개월의 유예기간을 부여함에 따라 내년 2월까지 메탄올 워셔액이 소비자들에게 판매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21일 환경부는 자동차 워셔액 등의 생활화학제품을 위해우려제품으로 지정하고, 이에 대한 안전기준 강화 내용을 담은 ‘위해우려제품 지정 및 안전·표시기준’ 개정안이 같은 달 22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자동차 워셔액은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에서 관리해왔으나 이날부터 환경부로 이관됐다.
자동차 워셔액의 안전성 문제가 대두된 것은 지난해 7월 초다. 자동차 워셔액의 주성분으로 쓰이던 메탄올이 중추신경계 마비, 실명 등 인체피해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위해성 논란이 확산된 것. 메탄올 외에 에탄올을 주성분으로 한 워셔액 제품도 있지만 메탄올 제품이 에탄올보다 저렴해 많은 소비자들이 메탄올 워셔액을 사용해왔다.
위해성 평가 없이 해외 기준 ‘그대로’
그러나 환경부는 이 같은 안전성 우려에도 메탄올 워셔액에 대한 인체 위해성 평가를 시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환경부로 이관되기 전 자동차 워셔액을 관리해왔던 산업부 소속 국가기술표준원의 한 관계자는 안전성 논란이 벌어진 지난해 7월 당시 한 매체를 통해 “자동차 워셔액의 인체 위해성 여부에 대해 테스트를 하기로 하고 실무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시사뉴스>가 국가기술표준원에 메탄올 워셔액 안전기준 마련 과정에 대해 문의하자 관계자는 “관련 업계와 소비자 등의 의견을 듣고 이를 수렴해 메탄올 함량을 0.6%로 제한하는 안전기준을 마련했다”며 “환경부가 위해성 평가를 하면 이 결과를 산업부가 받아 안전기준을 만드는 과정으로 진행되나, 기준 마련 전까지 위해성 평가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메탄올 워셔액에 대한 별도의 위해성 평가를 국내에서 진행하지는 않았다”며 “위해성 평가를 국내에서 시행하기도 하지만 국제 표준에 맞춰 해외 기준을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직접 평가를 하는 경우와 해외 기준을 인용하는 경우는 어떤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그때그때 정책적 상황이나 필요성을 검토해 결정한다”고 답했다.
이어 “메탄올 함량 0.6%의 기준은 굉장히 보수적인 수치라, 사실 업체들 입장에서는 사용금지나 다름없는 것”이라며 “(안전기준 개정) 이전의 메탄올 주성분 제품들은 메탄올이 50~60%씩 함유돼 있었다. 0.6%라는 기준을 도입하면 자연스럽게 메탄올을 주성분으로 하는 워셔액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판매 중인 메탄올 워셔액
또한, <시사뉴스>가 지난 21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를 방문해 확인한 결과, 메탄올이 함유된 워셔액이 여전히 판매되고 있었다. 해당 제품들의 제조일자는 2015년 12월부터 2017년 9월까지로 다양했다. 하지만 정부는 업체에 유예기간 6개월을 부여한 만큼, 이에 대해 규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메탄올 워셔액에 대한 인체 위해성을 정부가 직접 확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메탄올 함량이 높은 워셔액이 소비자들에게 판매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안전기준과 규제는 적용되는 시점의 법을 따르는 것”이라며 “(안전기준 개정 이전에 유통된 제품이) 당시의 안전기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규제할 수 없다. 기업들에게 자발적으로 기존 제품 생산을 하지 않고 이미 유통된 제품을 수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할 뿐이다”라고 답했다.
유예기간, 재고처분 기간 아니다
판매중단 고려해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송기호 변호사는 “안전기준 마련을 위한 위해성 평가는 그 나라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해 마련해야 한다”며 “긴급한 경우 임시적으로 해외 기준을 가져다 쓸 수는 있겠지만 안정적으로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체의 위해성 분석을 통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유예기간이 업체들의 재고처분 기간이 돼서는 안 된다. (인체) 위험성이 인식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해당 제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부와 업체가 소비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며 “(즉시 판매중단 조치됐던) 가습기살균제의 경우에는 당시에 이미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이긴 했으나, 자동차 워셔액도 가습기살균제와 다르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제품 판매중단 조치를 고려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