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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준의 역사기행

[역사기행] 폴로스틱을 든 서역인의 정체

한국의 미스터리 유물 파헤치기(上)



[시사뉴스 박웅준 칼럼니스트] 경주국립박물관에는 통일신라시대의 무덤(구정동 방형분)에서 가져온 돌이 있다. 이 돌은 무덤 입구의 모서리를 장식했던 것으로 한쪽 면에는 인물상이 다른 면에는 서 있는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인물상은 수염이 덥수룩하고 눈이 깊고 코가 큰 이국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서역인임을 알 수 있다. 

이 인물이 무엇보다 주목받는 이유는 봉이나 막대로 보이는 물건을 양손으로 잡고 있다는 점이다. 박물관의 설명문에도 언급하고 있듯이 이 물건은 일반적으로 폴로스틱으로 알려져 있다. 서역에서 유행하던 폴로가 서역인을 통해 들어와 신라에서도 유행했다는 것이다. 

과연 이 물건은 폴로경기를 할 때 사용하는 스틱일까? 그렇다면 왜 하필 무덤 입구에 조각되어 있었을까? 그리고 그 옆의 사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아쉽게도 이러한 질문에 답을 줄 만한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없다. 정체를 밝혀줄 단서가 많이 부족하고 폴로스틱을 든 서역인이라는 굳어진 이미지 때문이다.

폴로스틱이 맞을까?

폴로는 고대 중앙아시아의 이란지역에서 다리우스대왕(기원전 521-485년) 시기에 시작되었다. 중국에서는 마구(馬球) · 격구(擊球) · 타구(打球)로도 불렸는데 당나라 때에 처음 들어왔다. 당 봉연(封演)의 『봉씨문견기(封氏聞見記)』에 의하면 “당 초기 이세민(627~649)이 사람을 서번(西番, 티베트)에 보내 타구를 배워오게 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송의 고승(高丞)도 『사물기원(事物紀原)』에 “구장(毬杖)은 오래지 않으며, 당대부터 놀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나라와 문화교류를 빈번하게 했던 신라가 이러한 신문물을 접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한치운의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 발해 사신 왕문구(王文矩) 일행이 889년에 일본에 가서 격구를 하였다라는 기록이 우리나라 최초의 폴로에 대한 기록이다. 고려시대에는 『고려사(高麗史)』 태조 2년에 아자개 일행의 환영식을 격구장에서 했다는 기록이 처음 나타나 적어도 후삼국시대 폴로를 했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의 기록은 없지만, 당나라의 경우와 후삼국 시대에 격구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신라 시대에 폴로가 들어왔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렇다면 서역인이 든 물건은 실재 폴로스틱이 맞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당시 중국의 폴로스틱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1971년 중국 섬서성 건릉(乾陵)에서 발굴된, 당 고종의 여섯째 아들인 이현(684년 사망)의 무덤 벽화 가운데에는 폴로를 하는 장면이 있다. 말을 타고 공을 쫓아가는 인물들은 모두 한 손에 폴로스틱을 쥐고 있다. 한 손으로는 말고삐를 쥐어야 하므로 폴로스틱은 한 손으로 쥐기 쉽게 얇고 길다. 이 밖에 당삼채와 동경(銅鏡)무늬 등에서도 폴로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모두 얇고 긴 스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스틱은 그 끝이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어 월장(月杖)이라고 불렸는데 길이는 약 1.5m 정도였다. 이에 비교하여 경주박물관의 서역인이 들고 있는 것은 끝이 휘어져 있다는 점만 빼고 더 짧고 굵다. 휘어져 있는 부분도 당나라 것과 달리 넓적하고 둔탁해 보인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 서역인이 들고 있는 것을 폴로스틱으로 보기엔 어려울 것 같다. 당나라 시대 당시나 이후의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격구에 쓰이는 채 모두 얇고 긴 형식으로 실용적이지만 서역인이 들고 있는 것은 실제 말 위에서 공을 치기 위한 용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馬)도 타지 않은 채로 폴로스틱만 들고 있는 인물이 무덤 입구에 있어야 할 이유도 찾기 어렵다. 폴로채가 아니라면 무엇을 들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서역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자의 역할과 의미

이 서역인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다른 면에 조각된 사자를 주목해야 한다. 별개의 공간에 표현되어 있지만 하나의 기둥에 인접해서 조각된 것으로 보아 서역인과 관계성을 맺고 있음이 틀림없다. 별개가 아닌 하나의 도상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사자는 사람처럼 서서 왼쪽 다리를 내디디고 있어 마치 걷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얼굴은 하늘을 보며 입을 벌리고 있고 그 속에서 연기가 나고 있는 듯하다. 이 사자상과 인물상을 동시에 본다면 인물이 이 사자를 이끄는 것처럼 보인다. 이 사자가 무덤에 조각된 것은 벽사(辟邪, 귀신을 물리치는)의 의미가 있음이 틀림없다. 이러한 사자를 이끄는 서역인,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신라문화가 가진 강한 불교적 색채를 염두에 둔다면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많은 사자상은 대부분 불교와 관련이 깊다. 이 경우 사자는 백수를 굴복시키는 왕으로 불법을 수호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리고 사자는 문수보살을 등에 태우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 경우 곤륜노(崑崙奴)라는 인물이 사자를 이끄는 것으로 표현된다. 곤륜노는 머리가 곱슬머리이고 피부가 검은 노예를 의미해 서역인의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다. 6세기 북위의 양현지가 지은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는 서역의 사신이 사자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고 낙양의 장추사(長秋寺)에는 행상이라는 행사를 할 때 악을 물리치는 사자가 그 앞을 인도하였고 칼을 삼키거나 불을 토하는 등 기이한 묘기를 부렸다는 기록이 있다. 서역인과 사자의 결합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서역인은 노예도 매매했기 때문에 사자는 서역인 또는 그들이 데려온 곤륜노와 결합을 할 수 있었다. 사자를 부리는 서역인의 이미지는 당나라의 도용(陶俑)과 조각에서 그 예를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산동성에 있는 당나라 시대 용호탑(龍虎塔)의 화려한 조각 가운데 경주의 것과 유사한 도상이 있다. 얼굴은 훼손되었지만, 서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사자 옆에서 경주의 서역인과 거의 같은 물건을 들고 있다. 이 경우 이 물건은 사자를 부릴 때 쓰는 불자(拂子)로 끝이 하키채처럼 꺾어진 것은 그 부분이 털과 같이 유연한 재질이기 때문이다. 같은 탑의 다른 사자상 옆에는 곤륜노를 볼 수 있다.

신서고악도와 향악집성



신서고악도(信西古樂圖)는 당나라 시대의 연희(演戲)를 묘사한 두루마리다. 12세기 일본에서 필사된 것으로 신라시대 사자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진짜 사자가 아닌 사자춤을 설명한 것이다. 이른바 신라박(新羅狛)이라는 신라의 사자와 사자무(獅子舞)를 그림과 함께 문헌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문헌은 모두 중국의 것으로 신라가 중국의 것을 들여왔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당나라의 문헌인 『악부잡록(樂府雜錄)』을 인용하는데 서역 구자국(龜茲國, 쿠차국)의 사자춤도 신라에 소개됐음을 알려준다. 여기서는 사자를 부리는 사람을 사자랑(獅子郞)이라고 하고 붉은색의 불자(拂子)를 갖고 있다고 한다. 또한 『문헌통고(文獻通考)』를 인용하면서 사자의 고삐를 쥐고 있는 자의 복식은 곤륜(崑崙)의 모습으로 한다고 했다. 그림에서는 불자를 쥔 사자랑을 볼 수 있고 서 있는 모습의 신라박과 사자탈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이 어딘지 경주박물관의 서역인과 사자의 모습과 닮아있다.

신라 말의 학자 최치원이 지은 한시인 『향악잡영(鄕樂雜詠)』에는 신라의 악무 중에서 <금환 金丸>, <월전 月顚>, <대면 大面>, <속독 束毒>, <산예 狻猊>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 가운데 <속독>은 “고수머리 남빛 얼굴 못 보던 사람들이 떼 지어 뜰에 와서 난새처럼 춤춘다. 북소리 둥당 둥당 바람 소리 살랑살랑 남북으로 뛰어다니며 끝없이도 춤춘다”라고 하고 <산예>는 서“역에서 유사(流沙) 건너 만릿길 오느라고 털이 모두 떨어지고 먼지조차 묻었구나! 머리를 흔들면서 꼬리마저 휘두르니 온갖 짐승 어른 되는 네가 바로 사자던가” 속독은 당시 서역 가운데 하나인 속특(粟特, 소그드 Sogd)인을 묘사한 것이고 산예는 사자춤을 묘사한 것으로 서역에 기원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 같은 문헌들을 검토했을 때 서역인과 사자의 결합은 서역에 기원을 둔 사자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즉 경주박물관의 이 두 이미지는 신라의 사자춤을 묘사한 것일 수 있고 불교적 수호와 벽사의 의미를 표현하는데 당시 유행한 이미지를 차용한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앞으로 더욱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서역인의 얼굴을 잘 살펴보니 어딘가 우울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백거이의 시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서량기엔 가면 쓴 오랑캐와 가짜 사자가 등장하는데 (중략) 마치 서역 사막 건너 만 리 길 온 듯하네, 자줏빛 수염에 눈 움푹한 오랑캐가 북 장단에 춤추며 뛰어나와 말씀 아뢰네. 이르기를 양주가 함락되기 전 안서도호부에서 공물 바칠 때 왔는데, 조금 뒤 새 소식 전해오기를. 안서로 가는 길 끊기어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라 하네. 사자 마주 보고 두 줄기 눈물 흘리며 울면서 양주가 적에게 함락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묻네, 사자도 머리 돌려 서쪽 바라보며 한 소리 슬피 울자 관객들도 모두 슬퍼하네.”



폼페이오-김영철 뉴욕회담 무산…‘인권ㆍ비핵화 논의’ 부담?
[시사뉴스 이동훈 기자] 뉴욕에서 열리기로 예정됐던 북미고위급회담 무산되면서 그 배경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현지시간 8일 북미 고위급회담을 개최키로 했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는 현지시간 6일 돌연 “이번 주 뉴욕에서 열리기로 돼 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북한 관리들과의 회담은 차후에 개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북미고위급회담 연기와 관련해 “북측에서 연기하자는 통보를 받았다는 게 미국 측의 설명”이라고 말했다. 이번 북미고위급 회담이 취소된 여러 말들이 정치권 사이에서 오가고 있지만, 실제 원인은 뚜렷하지 않아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다. 그러나 대체로 미국측이 제기한 북한 인권 문제 및 완전하고 검증된 비핵화 요구에 따른 부담이 북한 측으로서는 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은 북미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하고 있었다. 실제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미 국무부 당국자는 “미국은 북한 정부가 저지르는 지독한 인권침해와 유린에 깊이 우려한다”며 “북한 지도부의 책임을 계속 추궁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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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칼럼] 동물 살해,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어
[이정민 칼럼니스트] 인류는 다른 생물들의 희생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가 좀 더 애정을 갖고 감정을 이입하기 쉬운 귀여운 동물이나 포유류에 한해서 동물학대를 논의할 뿐 다른 종류의 희생이나 학대에 대해서는 무감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중 잣대에 대한 비판들은 대부분 피장파장의 오류와 현실성 문제로서 반박된다. 심지어 일부는 “개미까지 죽이는 것조차 처벌한다면 처벌 안 당할 사람이 있겠는가? 단속 자체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인간과 가까운 동물부터 점차 동물학대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일 뿐이다”고 주장한다. 모순되게도 이런 논리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곤충을 죽이는 행위도 법으로 처벌하면 좋겠냐?”고 물으면 “그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동물을 살해한 사람이 “너는 개미를 밟아 죽였으니 내가 동물 죽이는 것에 뭐라 하지 말라”며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 논리로 동물학대를 정당화하려 든다면 그대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는 피장파장의 오류일 뿐이다.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형성은 불가피한다. 동물을 우리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다. 인간과 동물이 물리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공간에 함게 존재하는 한 서로의 삶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