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오승환 기자]
여명 의원의 방에는 몇몇 유명 정치인의 초상이 걸려 있다.
레이건, 이승만, 박정희, 마가렛 대처…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서른도 안 된 서울시의회 최연소 의원의 꿈이 투영돼 있다.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지금은 102대 6(서울시의회 내 더불어민주당 대 미래통합당 의석수)의 완전 기울어진 전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야말로 남자들의 영웅담에나 나오는 ‘17대 1’이다.
레이건처럼, 마가렛 대처처럼 되려면 잔 다르크가 걸었던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여 다르크’가 말하는 ‘용감하고 끈질긴’ 진실을 들어봤다.
# “그러니까 여 의원님네 당이 선거에서 이기셨어야죠”
여 의원은 자유한국당 보수혁신위원회 출신이다.
얼핏 보면 혁신과 보수는 모순적이다.
“대학생 땐 새누리당에 상당히 비판적이었어요. 당사 앞에서 집회도 많이 했었죠. 저는 ‘신념형 우파’에요. 당시 새누리당 정책들을 보면, 중도좌파적인 게 많았죠. ‘우파정당 이 왜 저렇게 포퓰리스트 같은 생각을 하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혁신위원회에 들어와 보니 우파 유권자들의 공감을 살 만한 공약들을 개발해야 했어요. 어려운 일이었죠. 우리의 신념으로 공약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그 공약으로 50%의 국민을 설득하려니까… 중도를 위한 공약을 만들어도 진보에서는 너무 ‘우파적이다’ 비판하고, 우파는 ‘왜 이렇게 중도냐’면서 반대했죠. 그래서 ‘밖에서 비판만 하는 것보다 실무를 배우고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해보자’는 생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습니다.”
혁신이 마무리될 즈음 당에서 "지방선거에 비례대표로 출마해 달라. 청년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는 보수정당이 극심한 비난을 받던 시기.
부담도 됐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당시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의 연설원이 돼 서울 곳곳을 누비며 연설을 했어요.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았죠. 손가락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우호적인 시민들 앞에서가 아닌 비판적인 사람들 앞에서의 연설이란... 너무 막막했고 절절했습니다.”
선거결과는 예상보다 처참했다.
서울시의회 110석 중 자유한국당 소속은 6명뿐.
“민주당 의원만 102명이었어요. 그들 잔치에 우린 불청객 같았죠. 제가 서울시의원이 된 건 우파 유권자들을 대변하기 위한 건데, 제가 통과시킨 조례안들은 좌우논란 없이 누구나 원하는 조례안뿐이었습니다.”
승자독식. 다수결 원칙 앞에 여 의원은 무력감에 빠졌다.
“가장 힘든 게 첫 행정사무감사와 예산심의였습니다. ‘정말 이건 죽어도 통과시킬 수 없는 조례안이다’ 하며 막고 있는데, 새벽 2시였나? 정부 공약사업이라며 담당 정책국장이 찾아와 '그러니까 의원님네 당이 선거에서 이기셨어야죠' 하는 거예요. 순간 '빵' 터졌어요. 속으로 ‘그래, 맞는 말이다’ 했죠.”
그렇다고 좌절할 순 없었다.
“제가 반대한 정책은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해 예산이라도 깎아보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소용없었죠. 상임위에서 깎은 예산들이 본회의 가서 그대로 증액돼 있는 거예요. ‘이게 민주주의냐?’라고 따지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민주주의는 다수결’이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