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코아 파업 사태가 434일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랜드 뉴코아 노조가 외주화와 비정규직 해고에 반발해 1년 넘게 파업이 계속되는 동안 노사 양측에 출혈도 심했고 그만큼 감내할 고통도 컸다. 지난 8월29일 노사 양측이 합의서에 도장을 찍음으로써 길고 긴 이랜드 뉴코아 사태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사실상 ‘합의’가 아닌 노조의 일방적인 ‘항복’으로 마무리되면서 씁쓸한 아쉬움을 남겼다. 권력과 자본 앞에 노동자의 힘은 무너지고 말았다. 뉴코아 노조의 결말은 파업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앞날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합의’아닌 ‘항복’
최종양 뉴코아 사장과 박양수 뉴코아노동조합은 지난 8월29일 안양시 평촌 뉴코아 아울렛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36명 재고용 등을 골자로 하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하고 ‘노사화합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노사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며 끝 모를 파업이 계속됐는데 갑작스런 ‘합의’에 시장의 반응은 놀라움 자체였다. 하지만 양측이 합의했다는 내용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합의’란 양측의 의견이 일치한 것인데, 이번 합의는 사측의 일방적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녀학습보조비 지급과 임신 여직원에 대한 수당지급 등에 대해서 사측이 합의하긴 했지만 주요 쟁점사항인 ‘외주화와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 등은 관철되지 않았다.
뉴코아 사태는 계산대 외주화와 비정규직 해고자에 반발한 노조가 들고 일어나 생긴 문제였다. 하지만 노조는 최우선으로 요구했던 계산대 외주화 문제를 철회하고 결국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비정규직 노동자 350여명의 복직은 물거품이 됐다. 노조가 주장해 왔던 계약만료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채용 요구도 사측은 수용하지 않았다.
징계 해고된 노조간부 18명에 대한 복직 문제도 빠졌다. 대신 외주화로 계약이 만료된 직원 36명의 재고용 해주기로 했을 뿐이다. 하지만 재고용되기로 한 직원들의 고용문제가 완전히 보장된 건 아니다. 계산원 업무는 이미 외주화가 마무리돼 돌아갈 자리가 없다. 설사 재고용이 이행되더라도 이들은 ‘신규채용’ 방식으로 1년 계약직으로 고용된다. 때문에 1년 후 계약연장이 안되면 일터를 잃게 되는 불안한 생활을 해야 하는 셈이다.
김연배 뉴코아 이사는 “점포 17군데 중 15곳은 계산 업무 외주화가 끝났고 이후 외주화가 실행과 관련해선 노조와 합의 할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노조와의 합의보다 일방적 결정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뉴코아 노조 핵심간부 18명은 ‘권고사직’ 방식으로 모두 퇴사시키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노조가 사실상 ‘백기투항’을 했다는 지적이다.
기륭전자 등 다른 파업에 영향 우려
강경하게 맞서왔던 노조는 2010년까지 무파업을 선언하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모델기업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해, 사측의 편으로 돌아섰다. 단순 손익계산만 따지고 보더라도 이번 뉴코아노조의 합의는 일방적 ‘패’에 가깝다.
노동계는 노조가 사측에 백기투항을 한 데는, 노조원들을 상대로 한 사측의 무차별 손해배상과 부동산 가압류 등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뉴코아 사측과 점주들은 노조간부와 조합을 상대로 현재 각각 35억원, 100억원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제기해 놓은 상태다. 김성희 한국비정규직센터 소장은 “손배소 등을 이용한 사측의 노동탄압 장치가 또다시 위력을 발휘했다”면서 “외주화 철회 등은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합의 과정에서 손해배상가압류 철회는 끌어내지 못했다. 사측은 징계와 손해배상에 대해 철회할 뜻이 없음을 강력하게 밝혔다. 뉴코아 관계자는 “법과 원칙의 틀 안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지만, 노조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반 노조 강경책도 장기 파업 노동자들에게 심리적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설상가상 뉴코아 노사분규가 끝난 가운데 최근 법원은 이랜드 노조 지도부에 대한 해임이 정당하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또한 정규직 직원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투쟁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생계가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이탈해 집회를 열기도 힘들었던 상황이다. 파업과정에서 뉴코아 노조는 동료를 잃거나 무노동 무임금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지난해 12월 박양수 노조위원장 등 노조 집행부 18명이 해고당했고 27명의 조합원이 징계를 당했다. 노사분규가 끝난 시점에 맞춰 지난 9월1일, 계열사 매장을 점거해 영업을 방해하고 명예를 훼손했던 일반노조 홍 모 사무국장의 해고는 정당하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뉴코아 사태가 남긴 것
뉴코아 노사분규는 마무리됐지만 홈에버 순천점 앞 천막 농성장에는 아직도 10여명의 조합원이 남아있다. 이번 합의로 뉴코아 노조와 함께 투쟁을 해 온 이랜드 노조는 사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홈에버가 곧 홈플러스에 인수될 예정이다. 인수업체인 삼성테스코 측과는 교섭에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고, 힘겹게 투쟁해온 이랜드 노조는 기댈 언덕조차 없어졌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며 3년 넘게 싸워 온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재 사측으로부터 54억원의 손배소에 피소된 상태다. 뉴코아 사태가 현재 장기 파업중인 기륭전자 등의 앞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뉴코아 노상듸 합의안이 이랜드 일반노조나 기륭전자 등 다른 장기파업 사업장에도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파업과 농성이 계속되면서 사측인 이랜드그룹도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이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2006년 4월 어렵게 인수했던 홈에버(옛 까르푸)를 불과 2년 만에 삼성테스코 측에 팔아야했다.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인수대금에서 80% 가량을 차입했던 이랜드로서는 막대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재매각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홈에버를 운영하는 이랜드리테일은 지난해말 1조7305억원의 부채를 안게 되면서 부채비율이 651%나 됐다. 이 같은 유형의 손실뿐 아니라 무형의 피해는 더 컸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홀대하는 ‘악덕기업’이라는 굴레가 씌워지면서 이랜드그룹의 기업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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