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풍경이고 정물이고 간에 모든 사물을 초상사진 하는 기분으로 찍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피사체가 되신 그 분의 신분과 성격, 삶의 역정, 지금의 기분과 표정을 담아내는 것이다. 내가 세상만물과 나누는 대화의 방식이 이러하다.”
카메라 영상으로 관객과 만났던 박찬욱 영화감독이 이번에는 자신만의 철학을 담은 사진 30점으로 관객과 조우한다. 박찬욱 감독은 10월 1일 부산 수영구 망미동 국제갤러리에서 첫 개인 사진전 <너의 표정(Your Faces)>을 오픈했다.
박찬욱에게 사진이란 영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주는 매체다. 철저히 계산하고 치밀해야만 하는 영화 작업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카메라를 들 때 편안함을 느끼는 그에게 사진은 '해독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박찬욱의 사진에서는 우연과 즉흥성이 큰 몫을 한다.
박 감독은 2016년에는 영화 <아가씨>를 만드는 동안 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을 엮어 ‘아가씨 가까이’라는 사진집을 내고, 2017년 개관한 서울 용산 CGV 아트하우스의 ‘박찬욱관’ 입구에는 <범신론>이라는 제목으로 넉달에 한번씩 여섯점의 사진을 교체 전시하는 등 그간 자신의 사진 작품을 조금씩 공개해온 박찬욱의 첫 갤러리 개인전이다.
같은 시기 발간되는 동명의 사진집(을유문화사 출간)에 실리는 그의 작품 중 30여 점을 선별해 인화하고, 전시공간을 디자인하고 라이트박스를 활용하는 등 전시 방식을 변주함으로써 사진 이미지의 물리적인 감상 경험을 풍성하게 제공하는 장으로 꾸려진다.
박찬욱은 대상이 풍경일 때도 정물일 때도 혹은 딱히 불리는 이름도 없는 잔해일 때도, 박찬욱은 피사체의 ‘눈동자’를 찾아낸다. 그렇게 눈을 맞춰 대상의 표정을 읽어낸다. 아름답고자 하지 않는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 미의 범주를 반문한다.
사진가 박찬욱에게 포토제닉한 아름다움이란, 지배적 가치체계나 관습적 미감의 그늘에 가려져 있으나 우리가 잠시 멈추고 현상 자체를 존중한다면 카메라의 위력을 빌어 발견할 수 있는, 여리지만 의연한 질서다. 전시는 12월 1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