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이 신선의 세계에서 노닐 듯 대담하면서도 자유롭게 노닌다. 천년고도 경주의 문화유산이 깃들어있는가하면, 흰 종이와 먹과 붓이 만나 한민족의 뿌리와 정신을 노래한다. 시공과 계절을 넘나든다. 하늘과 땅, 산과 나 무, 바위와 바람까지 감싸안았다. 그속에 금강산, 경주 삼릉, 불국사와 첨 성대도 보인다.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이 2022년~23년 미국, 독일 등지에서 비상한 주 목을 받은 한국화 작품들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소산비경(小山悲境) : Sublime Beauty of Sosan》전으로 선보이고 있다. 작품 은 수묵화 20여점. 붓과 먹으로 만든 세상이 환상적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을 하늘에서 아래로 보듯 부감법 으로 그린 <현율>. 수직으로 선 거대한 봉우리들이 숭고함마저 풍긴다. 같 은 금강산이라도 눈이 내려 먹빛이 옅은 <금강산의 설경>은 한층 감성적 이고 포근하다.
신라인을 자처하면서 경주에 화실을 짓고 생의 후반부를 보내고 있는 박 화백은 경주의 비경도 많이 그렸다. “(김)대성이 짓고 (박)대성이 그렸다” 는 말을 들었던 감동의 <불국사설경>(2024)을 비롯해, 휘영청 밝은 달과 천년고도 경주 삼릉의 비경을 <삼릉비경>으로 몽환적으로 담아냈는가하 면, <신라몽유도>(2022)는 꿈속에서 본 신라의 이상향을 그린 작품이다.
중앙에 구층석탑을 꽃술처럼 놓고, 그 주위에 꽃잎처럼 석굴암 본존상, 금강역사, 석불, 분황사, 인면기, 오리형 토기, 천마, 첨성대, 성덕대왕신종, 석탑 등을 배치했다. 솔거미 술관의 동명의 초대형 작품(5m x 12m) 보다는 작은 작품이다.
#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국제적 학술논의 이끌어
이 전시는 2018년부터 준비된 전시로 22년부터 독일, 카자흐스탄, 이탈리 아, 미국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센터, 다트 머스대학교 후드미술관 등 모두 8곳에서 열린 해외 순회전시의 국내 기념전이다. 미국의 한국학 연구 석학들이 ‘박대성 화백’을 선정하여 2년간의 전시와 연계 심포 지엄, 강연, 한국화 작가 최초의 영문 연구 도록 발간,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국제적 학술 논의 등을 준비한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3년 말까지 계속된 순회전은 유력 경제지 포브스(Forbes)에서 소개하며 이목 을 끌었다. 특히 다섯 차례의 북미 일정은 모두 유의미한 성과를 남겼다. LACMA에서 열린 전시는 처음 열린 한국 작가 초대전이었다. 또 현지의 높은 반응으로 본래 일정보다 약 2달간 연장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어 하버드대학교 한국학 센터와 다트머스대학교 후드미술관,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찰스왕센터 (Charles B. Wang Center at Stony Brook University) 및 메리워싱턴대학교 (University of Mary Washington)는 전시 개최와 함께 심포지엄이나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로써 한국화를 비롯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국제적 학술 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찰스왕센터와 메리워싱턴대에서 있었던 <박대성: 먹의 재창조(Park Dae Sung: Ink Reimagined)>는 서른 점이 넘는 작품을 선보이며 박 화백의 해외 전시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다트머스대의 김성림 교수 주 관 하에 네 개의 대학이 전시와 연계하여 발간한 도록도 큰 수확이다.
평론집 형식의 이 도록은 한국화 작가를 미술사적으로 비교 분석한 최초의 영문 연구서로, 향후 박대성의 해외 활동과 한국화 연구에 좋은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대성의 작품이 해외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데는 그 의 작업에 깃든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한몫했다는 평이다.
박대성 화백은 “국내에서는 한국화 연구나 작품이 홀대받는데, 해외에서 우리 수묵화(水墨畵)에 높은 관심을 보여 감동적이었다”면서 “‘왜 이렇게 훌륭한 전시를 이제서야 보게 되었나’라는 반응으로 전시가 연장되기도 했 다. 수묵을 편견없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여 기뻤다”고 밝혔다.
박대성 화백은 순회전시 기간중 수묵화 시연도 곁들이며 수묵의 멋을 펼쳐보여 관람객과 연구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화업 전반에 걸쳐 천착한 주제와 소재의 가장 완숙한 경지를 선보이며 소산수묵(小山水墨)의 독창성을 펼쳐보였다’는 평가도 받았다.
# 박대성 화백에 대한 국내외 석학들의 평가는
박대성 화백의 해외 전시에 대한 연구자들의 평가는 어떨까.
존 스톰버그 후드미술관 관장은 “박대성의 작업은 한국 미술의 과거와 동시대 미학을 융합한다”면서 “그의 필법과 소재, 재료는 전통적이지만 동시에 색채사용과 작품의 크기, 구성은 현대적이다”고 평했다.
직접 전시 기획도 했던 김성림 다트머스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그동안 미국에서 한류가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 등 팝컬처로 주로 알려졌는데, 이제는 한국의 전통과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박 화백은 한국의 오랜 수묵화 전통을 이으면서도 그걸 현대와 접목한 화가다”라고 평했다.
후드미술관의 ‘앨런 루트 현대미술 강의’ 강연자로 참여한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박대성의 그림은 그만의 독창적이고 기백이 넘치면서 열려있다”면서 “개념적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완숙한 작품으로, 그의 시각적 진화는 전통미술과 현대미술 등 양분화를 뛰어넘는다”고 박 화백의 실험적 면모를 높게 평가했다.
# 일평생 ‘보이지 않는 뿌리찾기’ 성과
박 화백은 그간 한국화의 현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송, 원, 명(宋, 元, 明)시대의 작품을 실견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 북경, 계림, 연변 등지로 화문기행(畵文紀行)을 떠나거나(1988~1989년), 실크로드(1993, 1995년)를 방문해 명산대천(名山大川)의 이국적인 풍경을 현장에서 스케치하는 등 창작의 바탕을 넓히는 데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또 1994년 뉴욕 소호에서 현대 미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박 화백은 미국에서 1년간 머물다가 귀국했다. 독자적인 화풍 개척을 위해 귀국한 다음날 바로 경주로 내려갔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산업사회 속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조용히 관조하면서 법고창신(法鼓昌新) 속에 새로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강했다. 천년고도에서 수묵화를 기본으로 지필묵(紙筆墨)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장르를 넘나드는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기 시작했다.기성 동양화론과 국내외 현대미술의 동향을 모두 섭렵하며 조형 실험을 거듭했다.
작가에게 한국화를 현대화하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한 작품에 다양한 기법을 쓰는 것, 그것이 내가 작품을 현대화하는 방법이다”라는 작가는 “뉴욕에 머물면서 하나의 작품에 여러 양식과 기법을 적용하고 싶어졌다. 내 작품을 어색하게 서구화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는 2019년 LACMA에서 브리타 에릭슨(Britta Erickson)에게도 답했던 대목이다.
박 화백은 이번 순회전에 대해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다. 일평생 ‘보이지 않는 뿌리’를 찾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 진정성을 느낀 것이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 굴곡과 고난 속에서 꽃피운 화가의 삶
박 화백의 인생을 보면 많은 굴곡이 있었다. 5세에 6.25전쟁으로 부모와 왼쪽 팔을 잃었다. 독학으로 미술에 입문했다. 60년대 후반에는 서울대 미술대학장인 김종영 조각가를 만났고, 박노수 화백과도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석도륜(1921~2011) 선생에게 1년간 서예를 배웠다. 등단한 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8번이나 수상했다. 1974년 대만 고궁박물관으로 떠나 중국 고전 산수화의 장대한 스케일을 보고, 자신의 그림이 너무 보잘 것 없이 느껴져 3일간 울었다 한다.
1년간 박물관 숙소에 머물면서 처음부터 새롭게 그리기 시작했다. 제2회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1984년 가나아트 1호 전속작가가 됐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전속 화가로도 활약하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수교전 중국에 들어가 중국화의 거장 리커란(李可染 1907~89)을 만나 ‘글씨와 먹의 중요성’을 재인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