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유재천 KBS 이사장, 김은구 전 KBS 이사 등이 회동한 것이 KBS 사장 공모 절차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정치권 안팎으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 이 모임에서 "KBS의 공영성 회복과 경영난 해소를 위한 개혁 방향 등에 대해 KBS 출신 원로들의 얘기를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동관 대변인은 "유재천 이사장이 앞으로 KBS이사회가 자율성을 갖고 예산편성 등 경영문제나 사장인선 문제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했고, 다른 참석자들도 정치적인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는 사장 인선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시중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KBS 후임 사장이 중요한 문제이며,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여러분을 모시게 됐다"는 요지의 인사말을 했으며, 다른 참석자들도 김인규 씨에 대한 낙하산 인사 논란 등을 꺼내며 후임 사장 선임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법에 따르면 KBS 사장은 KBS이사회가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돼 있기 때문에 KBS 사장 인선에 전혀 권한이 없는 최 방통위원장의 행보는 방송계의 정치적 현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개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시중 위원장은 앞서 지난 5월 정연주 전 사장 진퇴문제가 논란이 됐을 때도 당시 이사장이던 김금수 씨를 만나 이를 논의했던 것으로 드러나 결국 김 전 이사장이 자진사퇴하는 등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었다.
또 국무회의에서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와 촛불시위에 대한 방송보도의 문제를 제기해 정부의 방송장악 논란의 핵심으로 지목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언론노조는 "대통령의 정치적 후원자, 멘토로 불리는 사람이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됐을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면서 "정치적 독립과 중립성 유지가 제일 중요한 방통위원장이 정치적 행보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4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미디어행동'은 즉각 성명을 내고 모임을 같이 한 4명에 대해 사퇴를 요구했다.
미디어행동은 "민주주의를 말살하기 위한 야음을 틈탄 회동"이라면서 "방송과 언론쯤은 통치의 수단, 선전의 장치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누리꾼과 시민의 자유언론을 마구잡이로 짓밟으면서 능청스럽게 '언론자유 보장'을 말하는 이들의 기만에 대체 누가 또다시 속아 넘어갈 것 같은가"라고 반문했다.
또 "민주적 절차를 넘어선 권력의 오만, 권력의 음모, 권력의 작태를 고스란히 드러낸 결정적 사건으로 확실하게 못을 박는다"고 단언했다.
한편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모임을 해명하고 입장을 밝혔으나, 최 위원장은 아직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도 이 모임에 대해 의구성을 제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5공 군사정권시절에나 있었던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가졌다"면서 "지난 몇 달 동안 KBS 정연주 사장을 쫓아내고 입맛에 맞는 사람을 KBS 사장으로 앉히기 위해 수단과 방법으로 가리지 않으며 난리법석을 떨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그저 편하게 생각하고 모였다고 어울리지 않는 변명을 하다니 참으로 치졸하다"고 비난했다.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당내 브리핑에서도 "28년 전, 전두환 신군부가 대언론 쿠데타를 벌인 것과 흡사하다"며 "이명박 정권은 KBS 장악 음모를 노골화해서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이제는 더 논할 필요가 없다. 국정조사를 해야 하다. 그리고 관련자들은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주당 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회도 성명을 내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정정길, 이동관, 최시중, 유재천 네 사람을 내치라"면서 "KBS를, 언론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보내라"고 요구했다.
자유선진당도 "차라리 해명하지 말고 침묵이나 지킬 것이지,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면 이런 해명을 하겠는가"라면서 "어쭙잖은 해명은 의혹만 더욱 키울 뿐"이라며 "그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은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하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주노동당은 브리핑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면서 KBS는 거듭나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 KBS 거듭 남을 돕기 위해 청와대와 방송통신위원회, KBS 이사회가 손발을 걷어붙여 공영방송 관제화의 한 길로 달려가고 있다"며 "검찰, 감사원 등 사정기관이 총동원돼 정연주 사장을 주저앉히더니 청와대와 방통위가 가세해서 방송장악의 마침표를 찍으려고 한다"고 정부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와는 반대로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청와대 설명 외에 더 할 말이 없다"고 말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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