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로 인한 인권침해가 심각했다는 것은 암암리 알려진 사실이었으나 이번에 공식적으로 밝혀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공안통치였음이 들어났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아래 진실화해위)는 긴급조치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은 ‘우리의 교육지표사건’과 ‘추영현 반공법․긴급조치 위반사건’에서 수사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사실이 나타났다. 또한 1974년에서 1979년에 이르기까지 총 9차에 걸쳐 발동된 ‘긴급조치’가 정치․사회․문화 등 사회 전 분야를 위압적으로 통제하면서 헌법상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권 전반을 심각하게 침해한 사실도 확인했다.
진실화해위는 긴급조치로 인해 처벌받은 위 두 사건과 함께 긴급조치 제1, 4, 9호로 인한 인권침해 사실을 규명해 달라는 신청사건에 대하여 긴급조치 판결문 1,412건, 당시 수사 및 재판기록 등에 대한 자료조사와 당시 수사관 등의 진술을 통해 사건의 경위를 조사했다.
‘우리의 교육지표사건’은 1978년 당시 전남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송기숙 등이 1968년 제정․공포된 ‘국민교육헌장’의 비민주성을 비판하고,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대량징계가 발생하고 있는 비교육적 상황을 규탄하는 성명서 ‘우리의 교육지표’를 작성하여 명노근, 이홍길 등 전남대학교 교수 10여명의 서명을 받아 AP통신, 아사히신문사, 서울대, 이화여대 등 언론사, 대학가 등에 배포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송기숙은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유언비어 날조유포, 사실왜곡전파)으로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을 선고받고 약 1년 1개월간 복역하다가 석방되었고, 서명했던 교수 11명은 전원 직위해제 되었다가 같은 해 10월 복직되었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을 조사결과, 중앙정보부 전남지부는 성명서가 발표된 다음날인 1978년 6월 27일 송기숙을 비롯한 서명에 참여한 교수 전원을 체포․연행하여 자술서 및 진술서를 받은 뒤 송기숙을 검찰에 송치했으나 중앙정보부 전남지부의 수사행위는 당시 중앙정보부법에 열거된 중앙정보부의 수사범위를 벗어나 중앙정보부법을 위반한 것으로서 불법적 수사에 해당되어 위법․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임이 확인됐다.
당시 박 정권은 ‘국민교육헌장’ 반포 뒤 박 전 대통령이 피격으로 사망하기 전 까지 각 초(당시 국민학교)․중고등학생에게 헌장을 외우도록 하여 헌장의 우수성을 나타내려고 애를 썼었다.
또한 ‘추영현 반공법․긴급조치 위반사건’은 1974년 당시 일간스포츠사 편집부 차장으로 근무하던 추영현이,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경찰 정보원 ○○○에게 북한실정 및 민청학련관련 발언을 하였다는 혐의로 반공법, 긴급조치 제1, 4호 위반으로 징역 12년이 확정되어 약 4년 3개월을 복역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 조사결과, 추영현에게 접근하여 의도적으로 북한관련 발언을 유도한 ○○○은 1960년경 추영현과 같은 신문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던 사람으로, 자신의 국가보안법 전력으로 인해 서울 남부경찰서에 의해 일상적인 동향감시를 받던 중, 요시찰감시대상에서 제외되는 대가로 추영현에 대한 공작수사에 정보원역할을 했다.
당시 서울 남부경찰서는 위 ○○○을 이용하여 범죄사실을 유도하는 등 추영현에 대한 1년여의 장기 함정수사 공작을 수행하고, 수사과정에서 범죄사실의 자백을 강요하며 폭행 등 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위해 1972년 11월 제정된 유신헌법은 제53조에서 국가적 비상조치의 일환인 긴급조치권을 아무런 사전적․사후적 통제 없이 대통령 개인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행사할 수 있도록 하여 국민의 기본권에 중대한 침해를 초래했고, 뿐만 아니라 유신헌법은 긴급조치를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명시하여 긴급조치에 대한 일체의 민주적․법률적 통제도 차단했다.
이러한 유신헌법에 의거하여 실제 1974, 1975년 9차례나 발동된 긴급조치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신체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 양심․사상의 자유 및 죄형법정주의, 영장주의, 인신구속기간의 제한 등 헌법상 보장된 가장 기본적인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제약하거나 박탈하는 것이었다.
특히 정권안보 및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워 이 조치에 대해 비판하는 경우까지 처벌하게 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현대 입헌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위법․부당한 공권력 행사로서 중대한 인권침해임을 확인함
실제로 진실화해위가 입수한 긴급조치 사건 판결문 1,412건 중 유신체제와 긴급조치에 항의하는 지식인, 종교인, 학생, 정치인 등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한 처벌 비율이 32%이고, 일반 국민들의 일상적 발언을 유언비어 유포라는 명목으로 처벌한 사례는 48%에 달하고 있다.
이는 입수한 판결문에 한해 정리한 것으로 입건되어 실제 수사를 받았으나 기소되지 않아 법원 판결에 이르지 않은 예비검속차원의 탄압사례는 수천 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의 반유신운동을 북한과 연결된 국가전복 활동 등으로 몰아 ‘민청학련 사건’을 만들어 긴급조치 4호를 발동하였는데, 심지어 학생들의 출석 및 수업불참과 표현물 소지 등에 대해서도 최하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긴급조치 4호 발동으로 1,024명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이 중 253명이 비상군법회의에 송치되었고, 이 가운데 최근 법원 재심에서 무죄 판결된 인혁당계 8명이 사형을, 이철 등 민청학련 주모자급이 무기징역을, 나머지는 징역 5년 이상의 징역형 등을 처벌 받았다.
이와 관련 당시 한 외판원은 주위 사람들에게 “정부가 돼먹지 않아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라고 했다고 하여, 또 다른 한 조류사육업자는 “긴급조치 4호가 정부의 잘못을 은폐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학생들을 억압하려는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하여 각각 1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하였음
진실화해위는 이러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국가에 대해 ▲ 긴급조치 위반죄 등으로 판결을 받은 신청인 등 피해자와 그 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 ▲ 대통령의 긴급조치의 발동과 수사과정에 따른 기소 및 재판 등에 대하여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 ▲ 긴급조치로 인해 중대한 인권침해가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교육하는 것이 필요 등 세 가지를 권고했다.
이어 국회에 대해서는 긴급조치 위반 피해자들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또한 지난날 유신통치로 초래되었던 인권침해 과거사를 정리하기 위한 별도의 입법조치를 취할 필요를 권고했고, 법원에 대해서는 긴급조치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헌법재판소에 긴급조치의 위헌여부에 대한 판단을 구하여 긴급조치에 의한 인권침해를 전면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 김준곤 상임위원은 “유신정권의 긴급조치는 헌법에 부여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이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들을 위한 구제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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