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중동이 '기회의 땅'에서 '수렁'으로 전락했다.
국내 건설업체나 엔지니어링업체들은 중동 시장에서 큰 수익을 올렸지만 지금은 적자를 면하면 다행일 정도로 고전하고 있다.
중동은 2000년대 들어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대규모 플랜트공사를 잇달아 발주했다. 이에 따라 국내 건설업체들도 대거 중동으로 진출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해외수주 총액을 기준으로 1990년대에는 아시아가 56.54%, 중동이 26.54%를 차지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역전됐다. 중동이 해외수주 총액의 59.97%를 차지했다.
국내 업체들이 중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지난 2009년부터. 이른바 '중동의 봄'이었다. 국내 건설업체들은 해외 수주 총액의 72.73%를 중동에서 따왔다. 반면 아시아는 17.98%에 불과했다.
대림산업, 삼성엔지니어링, 쌍용·SK·GS건설 등이 2009년 사우디로 진출했다. 사우디에 이어 아랍에미레이트(UAE)와 알제리, 오만, 요르단, 이란, 카타르, 쿠웨이트 등으로 시장을 넓혀나갔다. 첫 원자력발전소 수주이자 최대 수주액(400억달러, 한화 약 47조원)으로 화제가 됐던 UAE원전 수주도 이때 이뤄졌다.
국내 건설업계는 이 과정에서 외형을 키우는데 치중했다. 그래서 저가 수주도 외면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가 수주 공사가 서서히 끝나가자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건설업계는 지난 2012년부터 중동시장에서 적자에 시달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손태홍 연구위원은 "GS건설도 1조원 가량 부실이 있었고 SK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등 여러 기업이 적자에 빠졌다. 2013년부터 위기감을 느껴 저가수주를 자제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업계 전반에는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라 말했다.
중동 국가들은 저유가로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보다 깐깐해졌다. 눈높이를 높이는 바람에 수익성을 높이는 것도 버거워졌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카타르의 경우 월드컵을 앞두고 인프라 공사 입찰을 진행하면서 1등 업체가 결정되더라도 그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는 업체를 찾더라"며 "중동 발주자들이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수익성은 더욱 나빠졌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자국민 고용을 의무화하는 '사우디제이션(자국민 우대정책)'은 손실을 배가시켰다.
건설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사우디 노동자들의 인건비가 두 배로 뛰어올랐지만 그들의 생산성은 동남아 노동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결국 비용이 네 배로 늘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숙련도가 떨어지다보니 크고 작은 하자들이 생겨 완공 후에도 계속 추가로 공사를 해야 했다"며 " 비용은 늘고 완성도는 떨어지는 바람에 수익성을 좀먹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중동시장의 여건이 악화됐지만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손 연구위원은 "중동이 해외에서 규모로는 2% 밖에 안되는 작은 시장이지만 규모로만 판단하면 안된다. 기회로 봐야 한다"며 "중동은 국내 건설사들이 건설 인프라를 이미 구축해놓은데다 인프라 수요가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수익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손 연구위원은 "제일 잘하는 기술을 내세워 다른 국내·외 기업들과 협력 수주를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며 "신경써야 하는 부분과 인력투입은 반으로 줄면서, 관리도 쉬워지고 실패 위험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는 수주액이나 규모를 고려한 반면, 수익성이 있는지를 우선으로 따져 선별 수주를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내세워 다른 기업들과 협력하는 등 리스크를 줄이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