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 파워! - 세상을 바꾸는 아줌마들
세상의 중심은 아줌마!
평범한 주부 혁명부대 ‘녹색여성모임’
우리 사회에는 세 가지 성이 있다고 한다.
남자 여자 그리고 아줌마. ‘아줌마’라고 하면 파마머리 흐트러진 외모 큰 목소리 자리다툼 등이 떠오른다. 더불어 천박 무식 무능 등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런데 온갖 부정적 의미의 대명사 아줌마가 이러한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었다. 아줌마이기 이전에 생명의 근원인 어머니로서, 또한 이제는
가정이라는 우물에서 뛰어나와 사회의 근간으로서 당당히 나선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당차고 힘찬 행보를 시작했다. ‘아줌마 파워’의 무서운
기세로 이 땅에 선 평범한 주부들. 대표주자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이하 녹색여성모임)을 통해 만나봤다.
연극 통해 환경문제 다뤄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에 자리한 녹색여성모임은 6명의 이 지역 여성들을 주축으로 1995년 4월22일 창립됐다. 대부분이 주부인 녹색여성모임은
‘살기 좋은 지역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무공해 비누 만들기, 쓰레기 줄이기, 장바구니 들기 등 환경운동을 펼쳐왔다. 현재는 강북구를 비롯해
성북구 노원구 도봉구의 주부들이 모이면서 회원수가 급증해 환경문제에서 노인·아동 복지에 이르기까지 좀더 포괄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중 다른 지역단체에서는 보기 드문 특별한 소모임이 있는데 바로 환경연극단 ‘만년대계’다. “아이들이 환경에 대해 쉽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시작했다”고 동기를 밝힌 인미화(41) 씨는 “연극 볼 기회가 적었던 이 지역 아이들에게 가히 폭발적 반응”이라고
말한다. 1999년부터 ‘쓰레기들이 몸살을 앓은 이야기’ ‘쓰레기는 반으로 재활용은 두배로’ ‘쓰레기 귀신은 물러가라!’ ‘나는야 지구
지킴이’를 매년 한편씩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선보였다. 특히 작년에는 4개 학교 학생들과 학부모 등 2,700여명이 관람했을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연극을 해본 적도, 해야겠다고 꿈꾼 적도 없는 평범한 우리들이 몇 개월을 준비하고 또 무대에 서기까지는 고생도 컸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고 인씨는 대변한다.
상반기에는 이론공부, 8월말부터 본격적으로 대본작업과 연기연습을 거쳐 11월경 공연에 들어간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재활용에 관한 수업과도
맞물리면서 일선 교사들에게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다.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이 바로바로 눈에 보여 어떤 참여활동보다 만족스럽다”는 권길자(40)
씨는 “성취감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후기를 전한다. “보약을 먹은 기분”이라며 자신의 변화에 놀라는 주부도 많다고 한다. 내성적 성격에
내가족만 챙기던 주부가 외향적이고 이타적 성격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올해에는 벌써부터 강북보건소 청탁으로 어버이날에 맞춘 노인대상 연극을 준비 하고 있고, 환경에 국한했던 주제를 가족간의 갈등, 사회문제
등으로 확장하자는 의견도 일고 있다. “연극을 통해 자녀교육은 물론 우리 안에 있는 열정을 발산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는
권씨는 “서울시에서 지원도 받는 등 우리의 연극에 관심쏟는 이가 많다”며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구청도 감복했다?
녹색여성모임은 결손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열린숙제방을 운영하고 있다. 오후 1시30분부터 6시까지 숙제지도는 물론,
종이접기나 자전거교습 등 취미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처음 공부방에 왔을 땐 말 한마디 안하고 왠지 불안해 보였던 아이가 이제는 먼저
말을 걸 정도로 활발해졌다”는 게 자원교사들의 설명이다. 자녀를 키워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마음을 여는데 유리하고, 학생들도 잘
따른다. 또한 부모를 대신해 담임과 상담할 때도 경험이 강점으로 작용한다. 아줌마이기 때문에 모성애가 강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발산된
것이다.
공부방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자 강북구청은 수유2동 방과후교실을 3월3일 신설하면서 녹색여성모임에 위탁했다. 열린숙제방 운영을
지켜보고 감탄한 결과다. 지역단체에 위탁운영을 맡긴 것은 국내 최초다.
이뿐만 아니라 NGO스터디모임을 통해 시민운동과 사회복지에 대한 이론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처음엔 단순히 선한 의지에서 출발했지만
하다보니 더 많이 알고픈 욕심이 생겼다”며 “시간이 부족하지만 계속 공부해서 전문적 활동가의 모습으로 변모하고 싶다”고 김재옥(52) 씨는
포부를 드러냈다. 실제로 “구청에서 주민자치센타 운영방향에 대해 자문을 구해올 정도로 우리 모임의 전문성과 신뢰성이 인정받고 있다”고 회장
정외영(47) 씨는 말한다.
바쁜 가사노동으로 시간적 육체적 정서적으로 전력하기 어려운 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아줌마들이 당당히 사회로 나왔다. 그들이 내건 구호는
‘지역발전과 자아찾기’다. 지역발전은 나아가 대한민국의 발전이 될 것이고, 자아찾기는 아줌마상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세 가지 성이 있다고 한다. 남자 여자 그리고 위대한 아줌마!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