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후 전남 담양 및 장성군 일대에서 이념으로 인해 경찰들이 민간인들을 희생된 사건이 진실 규명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아래 진실화해위)는 '담양·장성지역 경찰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을 공보처 통계국『6·25사변 피살자명부』, 전라남도경찰국『전라남도 경찰전사』, 육군본부『한국전쟁사료 59』등 자료조사를 진행했으며 사건의 생존자, 목격자 및 당시 담양·장성경찰서 경찰 및 의용경찰을 대상으로 사건 경위 및 희생 이유 등에 대한 진술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1949년 7월부터 1951년 8월까지 전남 담양·장성군 일대에서 최소 57명 이상의 주민들이 통비분자, 부역혐의자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전남경찰국 기동대, 담양·장성경찰서 특공대 및 의용경찰 토벌대에 의해 희생된 사실을 밝혀냈다.
전남 담양·장성지역은 노령산맥을 축으로 지리산과 연계돼 있어 빨치산의 유격활동과 군·경의 토벌작전이 반복되었고 이로 인해 교전지역 인근에 거주하는 민간인들은 빨치산과 내통한 통비분자, 부역혐의자 등으로 몰려 군·경에 의해 희생되는 등 그 피해가 컸던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담양·장성지역이 수복을 앞둔 1950년 12월부터 경찰특공대 및 토벌대원들은 부역자 색출 및 빨치산 토벌을 이유로 담양·장성지역 주민들을 부역혐의자와 통비분자로 몰아 적법한 절차 없이 살해한 것으로 들어났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1951년 1월 장성군 서삼면 장산리에서는 '마을에 남아 있으면 토벌대에게 죽는다'는 빨치산의 선동으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빨치산을 따라 피난을 떠났으나, 고령 등의 이유로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들 중 18명은 부역자 색출을 위해 마을에 주둔한 장성경찰서 특공대에 의해 임곡천변에서 총살됐다.
1951년 3월에는 전남경찰국 토벌대는 담양읍 양각리에서 큰아들이 지방좌익에 의해 추월산으로 끌려간 뒤 공비 소년병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누나, 동생 등 일가족 4명을 백동마을 뒷산으로 끌고 가 사살했다.
또 1950년 12월 장성군 동화면에서는 아들이 인민군 점령기에 현수막을 제작하는 등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동화지서 경찰에 의해 처형되자, 그 소식을 듣고 지서에 항의하러 간 어머니 등 일가족 8명도 집단으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진실화해윈는 조사결과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가 57명이나, 일가족이 몰살됐거나 유족이 고향을 떠난 경우, 조사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를 감안한다면 이는 최소한의 희생자로 판단하고 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던 민간인들로 당시 경찰은 여성과 노인 을 비롯해 어린이들까지 살해하는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이 전쟁 시기 매우 혼란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하더라도, 경찰이 적법한 절차 없이 비무장 민간인을 살해한 것은 인도주의에 반한 것이며 국민의 생명에 대한 기본권을 침해한 불법적인 사건으로 보고있다.
또한, 국가의 공식사과와 위령사업의 지원 및 경찰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평화인권교육 실시 등을 권고했다.
[서울] (05510)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11 (신천동) 한신빌딩 10층 | TEL : (02)412-3228~9 | FAX : (02) 412-1425
창간발행인 겸 편집인 회장 강신한 | 대표 박성태 | 개인정보책임자 이경숙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정민 l 등록번호 : 서울 아,00280 | 등록일 : 2006-11-3 | 발행일 : 2006-11-3
Copyright ⓒ 1989 - 2024 SISA NEWS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sisa-news.com for more information
시사뉴스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 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