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라는 문화가 있다. 요약을 하면 벽이나 그 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을 뜻한다.
'그래피티(graffiti)'의 어원은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와 그리스어 'sgraffito'이다. 분무기(스프레이)로 그려진 낙서 같은 문자나 그림을 뜻하는 말로 'spraycan art' 'aerosol art'라고도 한다. 유럽에서는 '거리의 예술(street art)'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래피티'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예술로서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터이다. 사이 톰블리(Cy Twombly)·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등은 낙서의 표현법에 관심을 보였고 장 뒤뷔페(Jean Dubuffet)는 아웃사이더 아트로서의 낙서의 의미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래피티가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말 뉴욕 브롱크스 거리에 낙서가 범람하면서부터이다. 처음에는 반항적 청소년들과 흑인, 푸에르토리코인(人)들과 같은 소수민족들이 주도했다. 분무 페인트를 이용해 극채색과 격렬한 에너지를 지닌, 속도감 있고 도안화된 문자들을 거리의 벽에 그렸다. 이것들은 즉흥적·충동적이며 장난스럽고 상상력이 넘치는 것들이었다.
랩 음악과 브레이크 댄스를 즐겼던 이들은 거리의 벽, 경기장, 테니스장, 지하철 전동차 등 가리지 않고 그릴 수 있는 곳에 그림을 그렸다.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낙서가 큰 도시문제이기도 하였다. 그래피티가 도시의 골칫거리에서 현대미술로서 자리잡은 것은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와 키스 해링(Keith Harring)의 공이 컸다.
바스키아는 정식 미술 수업을 받지 않았음에도 단번에 미술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그는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어설퍼 보이는 그림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아 표현하였다. 주로 자전적이야기·흑인영웅·만화·해부학·낙서 기호·상징·죽음과 관련된 주제였다.
한편 로마의 미술상 클라우디오 브루나는 소규모 비영리화랑인 얼터너티브 스페이스에 그래피티 전시회를 열면서 그래피티는 미술 영역으로서 인정되었다. 그래피티 미술은 1980년 '타임 스퀘어 쇼'에서 공식적으로 소개되었다. 해링·바스키아·리 퀴노니스·알레스 발라우리·앤드루·위튼·제파이어 등이 참여한 최초의 대규모 전시회였다. 또 시드니 자니스의 블루칩 갤러리에서는 '포스트 그래피티(Post Graffiti)'라는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런 '그래피티'가 연세대 앞 굴다리에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연세대 앞 굴다리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얼굴과 함께 'MUDERER'라고 적힌 판화형식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80년대 이후로 처음 등장한 전두환 'MUDERER'는 아직 누구의 행적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살인자의 오명은 세월이 지남에도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다.
80년 대 중반 종교계와 대학가의 지하에서 은밀히 광주민주화운동 비디오 테이프가 돌고 있었다. 당시 이 비디오를 본 대학생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광주민주화운동의 원흉으로 생각하고 '살인자', '살인마'라고 낙인을 찍었다.
또한 대학가 벽이나 현수막에는 '광주학살 원흉 살인마 전두환 노태우를 처단하자'는 글귀가 많이 등장했다. 시위현장에는 언제나 바닥과 벽에 '전두환 노태우 처벌'이 적혀 있다.
당시에도 벽에 낙서와 그림으로 표현한 것은 저항의 표시이지 '그래피티'라고 볼 수 없다. 지금도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우면 그 곳에 현 정부의 비난의 글을 적기도 하는데 '그래피티'라고 볼 수 없는 것처럼 당시도 마찬가지 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뒤에 전두환 이라는 이름은 왜 다시 등장했을까?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전립선 수술을 받아 29일에 있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은 "그동안 전립선 비대증으로 고생해왔고 최근 종합 검진을 받은 뒤 미뤘던 수술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으나 왜 하필 미루어왔던 수술은 영결식 전날에 했을까...
이에 대해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으나 노 전 대통령은 초선 의원 시절인 지난 1989년 국회 5공 청문회 마지막날 "전두환 당신은 살인마야"라고 외치며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명패를 집어던진 바 있어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영결식을 피하려고 일부러 수술을 전날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때 한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한 개그맨의 유행시킨 말이 있다. "전 안좋은 기억이 있어요∼".
그럼 전두환 전 대통령도 이랬을까... "청문회 때 나에게 명패를 던진 노무현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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