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 자금출처·기업윤리 놓고 논란
대한전선이 국내 기업을 상대로 업종 불문한 문어발식 다각적인 투자를 하고 있어 횡보에 많은 의혹을 낳고 있다. 제조업으로 잔뼈가 굵은 대한전선은 무주리조트를 시작으로 용산선인상가, 진로, 쌍방울 등의 인수에 많은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대한전선의 이같은 투자방식을 놓고 ‘염불보다 잿밥에 맘이 있다’는 말과 같이 인수 후 기업 경영보다는 차익을 노린 M&A성 기업사냥을 하고 있다는 추측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일부 재계는 대한전선의 투자자금출처를 놓고 해외유입설과 차입금에 대한 높은 이자산정 등의 방법으로 마련된 비자금설까지 제기되고 있어 기업윤리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투기 시발점 무주리조트
대한전선이 국내 기업에 대한 무차별적 자금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두 가지 이론이 나오고 있다. 한 쪽은 전통 산업인 전선업이 향후 비전이 적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업확장을 시도한다는 부분과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기업사냥을 하면서 수익을 노린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전자 보다는 후자 쪽에 무게를 싣고 있어 향후 대한전선의 횡보가 주목된다. 이 같은 횡보는 2002년 무주리조트를 시작으로 대한전선이 기업사냥에 뛰어든 내용들이 상당부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대한전선이 무주리조트를 인수할 당시 무주는 평창과 함께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초 무주리조트를 인수할 계획을 세워놓지 않았던 대한전선이 제대로 된 사업성 검토도 없이 1,530억원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 인수에 참여한 관계자의 증언이다.
당시 무주리조트 관계자는 “2000년 자산규모를 8,700억원까지 줄였다”면서 “하지만 무주리조트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기업은 미국의 캐피탈회사인 볼스브릿지 한 곳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볼스브릿지의 실사결과 2001년 3,500억원에 계약이 이뤄졌다”면서 “충분한 자금이 없었던 볼스브릿지가 차일피일 계약을 미뤄오다가 2002년 4월 계약파기를 선언하려 하자 급히 대한전선의 자금을 끌어들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대한전선은 무주리조트 인수 선언 후 다음달인 5월 자금을 납입하며 인수를 마무리 했다.
“아무리 기업에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인수결정 이후 두 달도 채 안돼 2,000여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동원했다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면서 “내가 알기로 당시의 대한전선은 무주리조트에 대해 눈길 한 번 안 줬던 기업인데 황당하더라”라고 이 관계자는 증언했다.
결국 대한전선은 무주리조트에 대한 투자를 위해서라기보다 동계올림픽 프레미엄을 보고 인수에 참여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한전선이 인수 후에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은 것도 뒷받침하고 있다.
선인상가조합 1,000여억원 손실입어
대한전선이 무주리조트를 시작으로 최근 3년간 기업 M&A와 관련 5,500억원을 투입해, 제조업으로서의 영업보다 금융지원업무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용산 선인상가 모습. |
대한전선이 또다시 인수에 뛰어든 것은 무조리조트를 인수한 지 2개월 남짓에 불과하다.
용산 선인상가는 IMF 당시 부도를 맞아 한 때 삼성전자와 한국할부금융 등을 대상으로 경매가 진행됐으나 조합측이 대출을 일부 상환해 경매를 막았다. 당시 용인상가에 대한 주거래 은행인 경기은행이 퇴출되면서 채권은 자산관리공사(KAMCO)로 넘어갔고 조합이 KAMCO와 협의 채권을 매입했다. 조합은 2002년7월13일 물건취득을 위한 경매에 단독으로 응찰 853억원에 낙찰 받으며 선인상가의 소유가 임차인조합으로 바뀌었다. 조합으로서는 2002년7월22일까지 경매잔금을 납부하면 소유권이 이전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한전선의 자금을 등에 업은 지포럼측이 경매에 들어가기 전인 2002년 6월25일 기존 선인산업 주주들과 선인상가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7월 16일자로 법원에 966억원의 채무변제 공탁금을 내 걸은 일이 뒤 늦게 밝혀지면서 이를 둘러싼 분쟁이 시작됐다.
결국 임차인조합은 경매 낙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포럼이 대한전선에서 차입하고 변제가 남아있는 금액을 떠 앉으면서 약 1,000여억원의 손실을 낸 것으로 증언했다.
조합 관계자는 “이미 낙찰을 받았는데 이 같은 문제가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대한전선이 끼어들어 조합원들이 상당한 손실을 보고 말았다”고 분개했다.
이 관계자는 “법적 분쟁이 명확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얘기가 나올 경우 대한전선이 어떻게 움직일지 몰라 부담스럽다”며 취재거부의사를 표현했을 정도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하지만, 법적으로 잘 해결되면 그때는 모든 것을 얘기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여운을 남겼다.
대한전선은 “우리(대한전선)가 선인상가 사태에 개입함으로 인해 (선인상가)이 1,000억여원을 손해봤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문제”라고 말했다.
브레이크 없는 기업사냥
쌍방울 주총에서의 패배로 경영진 가운데 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 대한전선이 2월5일 주식 11.99%를 추가로 취득하며 32.52%의 지분을 확보 최대주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대한전선측은 이를 기반으로 조만간 임시주총을 열어 경영권을 인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대한전선의 M&A작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진로와 경기컨트리클럽(경기CC)에 까지 손길을 뻗친 것으로 전해져 무차별적으로 행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전선은 진로를 인수하기 위해 불과 3개월 만에 2,738억여원을 투입 법정관리 채권을 확보. 실질적인 최대 채권자로 올라선 상태다. 하지만 일각에선 진로를 인수하게 되더라도 후 직접경영을 하지 않고 주류업계나 제3자에게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는 대한전선이 줄기차게 사실무근임을 강조함에도 나오는 말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주류산업에 대한 경영이 전혀 없는 대한전선이 진로를 인수하더라도 정상적인 경영을 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우려를 표명했다.
한편, 대한전선이 최근 법정관리에서 졸업하는 D 기업에 대한 투자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기업사냥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