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제한상영가 등급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독립영화제2008대상, 미국 시라큐스국제영화제 3관왕,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초청 등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김곡 감독의 <고갈>이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것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측은 <고갈>이 주제, 선정성 등의 수위가 '아주 높'고, 폭력성, 공포, 대사, 모방위험 등 다른 판단 기준들도 모두 수위가 높다고 판단하며, "대사 및 주제, 폭력성 부분에 있어서도 청소년에게는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분류했다"고 밝혔다.
2001년 12월 '제한상영가' 등급이 신설된 후, 몇 개의 제한상영관이 개관하였으나 경제적 이유 등으로 현재는 모두 영업을 중지한 상태다. 제한상영관이 없는 국내 현실상,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는 사실상 개봉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헌법재판소는 제한상영가 등급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으나, 영등위 측에서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 결정 전문. 황폐한 공장지대, 한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고 매춘을 시키면서 두 사람 사이에 기괴한 관계를 그린 내용 |
지난 2008년 1월부터 현재까지 등급분류신청을 한 영화 723편 중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는 해외작 529편 중 6편, 국내작 194편 중 2편으로 총 8편이다. 2009년 들어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작품은 <고갈>을 비롯해 <천국의 전쟁> 등 모두 3편뿐이다.
비타협영화집단 '곡사'의 김곡 감독은 항상 신선한 영화적 실험을 계속해온 독립영화계의 스타감독.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인 <고갈>은 최근에는 보기 드문 슈퍼 8mm 작업으로, 감독이 직접 현상하는 등 공을 들인 작품. 8mm 필름의 입자가 살아있는 이미지와 근원을 알 수 없는 사운드로 세기말적 불안함과 더불어 생성-소멸의 징후를 예술적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는 "종래의 화법과 당대의 관습을 모반하는 영화 양식의 개조를 보여"준다며, "이쯤에서 끝나 겠지 하는 순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집요함으로 영화 미학의 끝을 주파한다"고 극찬한 바 있다.
9월에 개봉할 예정이던 <고갈>은 이번 제한상영가 판정으로 개봉 자체가 불투명해진 상태. <고갈>의 김곡 감독은 "배급사를 찾지 못해 직접 사업자 등록까지 하면서 개봉에 열의를 보였는데, 이번 제한상영가 판정으로 개봉 일정이 난항에 처했다"며 "우선은 재심의 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고갈>은 7월 23일부터 8월 2일까지 폴란드 브로추아프(Wroctaw)에서 열리는 제9회 에어라 뉴호라이즌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2004년 <송환>이 초청되며 국내에 알려진 뉴호라이즌국제영화제는 영화예술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예술적 영화들을 소개하는 국제영화제다. 뉴호라이즌 측은 고갈을 '관습에 대항하는 호러'라고 소개하며 관심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