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중 최대 대목인 추석을 앞두고는 세일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올해는 극심한 판매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일 간판을 내걸고 손님 끌기에 나선 것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보인다.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봉급생활자에 대한 상여금 축소가 줄을 잇고, 소득자의 하위 30%의 절반이 적자생활을 할 정도로 소비위축해 올 명절은 역대 가장 추운 추석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특히, 제수용품은 태풍과 같은 큰 피해가 없어 과거보다 가격상승 크지 않을 전망이지만, 계속되는 무더위로 인한 배추와 무 등 채소값은 지난해 비해 최고 2배 이상 오르면서 명절보다 겨울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햇곡식 나오지만 얼마나 팔지
과거 햇과일과 곡식이 나오는 시점과 거의 일치하면서 전반적인 재수용품 가격이 급등했었다.
올 명절은 2월에 윤달이 끼어 평년보다 10여일 늦게 찾아왔다. 제수용품이 가격 면에서 크게 상승하지는 않아 오랜만에 맛볼 수 있는 풍요로운 추석을 기대했지만, 이러한 기대가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소비위축으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제사상에 빠져서는 안 될 사과와 배 등 과수의 경우 4%대의 전반적인 물가상승으로 지난해보다 25∼30% 가량 높게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처럼 태풍이나 장마 피해가 없는 무더위로 소비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발생한 것이어서 추석을 전후해 변동성은 있겠지만, 큰 변화는 없지 않겠느냐는 견해가 높다.
가락시장 한국청과 주식회사의 경매사인 박모씨는 “보통 햇과일이라고 해도 완생종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올해는 윤달관계로 완생종이 많이 나왔다. 작황도 좋고, 과수 농가에 치명적이라고 할 수 태풍피해와 흑석병 발생도 미미해 생산량도 많아 전반적으로 가격하락요인이 많다”면서도 “계속되는 무더위로 여름에 판매가 많이 돼 그나마 가격이 상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시장 전망이 밝지 않다. 다름 아닌 경기침체 때문.
박씨는 “생산이 늘고 추석이 얼마 안 남았는데 물건걱정은 전혀 없는 반면, 소비가 안돼 얼마나 팔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동대문시장 상인 3분 1로 줄어
추석을 전후해 매출이 늘어났던 재래시장 상인들은 제수용품 아니라 타 업종까지 번지는 상황이다.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심모씨는 “과거 명절에는 ‘빔’의 문화로 어느때보다 장사가 잘 됐지만, 그러한 얘기는 옛 말이 됐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명절이라고 하면 새 옷을 장만하기 위해 사람들이 시장으로 몰렸는데 외환위기 이후에는 이런 발길조차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심씨의 설명이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 대표 재래시장을 표방하던 동대문 시장의 상인의 약 3분의 2 가량이 가게를 접고 다른 일을 찾아 나선 상태. 뿐만 아니라 2∼3층으로 구성된 상가건물이 과거에는 모두 판매장으로 이용됐지만, 몇 년 전부터는 상인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면서 창고로 대부분 사용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국의 저가 상품이 국내 시장에 몰려들면서 정상적인 유통 통로를 밟지 않는 것도 문제점으로 저적됐다.
심씨는 “여기(동대문시장)는 원래 전국의 모든 상인들이 모여드는 지역인데, 중국산을 컨테이너로 실어 나르는 개인사업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전국 상점에 직접 갖다주면서 시장질서가 파괴되고 있다”면서 “외환위기 이후에는 추석이라고 하면 와서 흉내라도 내는 손님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 조차 구경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김모씨는 “장사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인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밤장사가 주류를 이루는 시장 특성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개시도 못했다는 말을 종종 듣고 있다”며 한 숨만 내쉬었다.
직장인 상여금 줄어
서민들의 지갑이 얇아지고 있는 것도 명절 세일과 판매부진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가 전국 356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추석자금 실태를 조사한 결과 상여금을 지급할 계획을 갖고 있는 사업장은 65.8%에 불과했다. 금액도 지난해까지는 51∼100%를 지급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만, 올해는 기업의 절반 가량이 50%이하를 상여금으로 책정하는 등 서민의 마음엔 추석에 앞서 겨울이 먼저 온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대기업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동안 명절에 정기 상여금외에 특별 상여금을 직급했던 전자업계는 50∼100%의 정기 상여금만 지급키로 했고, 자동차 업계의 대표적인 현대자동차는 부장급 이하 직원이 30만원 과장금 이하는 35만원, 대리급 이하는 기본급의 50%를 상여금으로 받을 뿐이다.
그나마 명절에 상여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직장인들은 행복한 편이다.
통계청과 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소득 하위 30%의 절반은 적자생활을 하는 상태고, 체불임금은 7월말 3,35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7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각 지방노동사무소가 발표한 체불임금은 이 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경기·인천지역의 체불임금은 714억여원으로 지난해 7월말 489억원에 비해 45.8%가 늘어났고, 강원지역도 48억여원에서 57억여원으로 20% 가까이 증가했다. 이외에 울산(129.5%) 대전·충청(98%) 영남(73%) 등도 큰 폭으로 많아지고 있다.
신종명 기자 skc113@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