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 의사를 고발한 이후, 낙태 문제가 찬반논란이 되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사실 낙태는 인간의 생명존중과 결부되어 드러내고 허용을 말할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낙태 공화국’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쉽게 용인돼 오곤 했다. 하지만 최근 낙태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하면서, 허용이냐, 여성의 선택이냐는 문제로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여성단체, “낙태 결정은 여성의 선택”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20여개 여성·시민단체는 지난 5일 ‘여성의 임신·출산 및 몸에 대한 결정문 선언’ 행사를 열었다. 이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임신, 출산, 낙태 등 여성의 몸에 대한 결정권은 여성 자신에게 있다”는 것.
프로라이프의사회의 낙태시술 병원 고발로 정부의 낙태 규제 움직임이 이는 데 대해, 여성단체들은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들의 절박함과 위급함을 외면하고 여성의 몸과 자율권을 통제하려는 ‘반인권적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여성의전화 란희 인권정책국장은 “현재 병원들의 낙태거부로 문의전화가 폭증하고 있으며 법적으로 낙태가 보장된 성폭력 피해 여성들조차 낙태시술을 거부당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은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단속이 심해지면서 병원들이 “피해를 입증할 증거를 가져오라”고 요구해 낙태가 사실상 어려워졌다.대한산부인과의사회 조병구(에비뉴여성의원 원장) 공보이사는 “강간을 당했다거나 임신부에게 병이 있다면서 낙태를 해 달라는 경우가 늘었지만 상당수가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낙태비용이 턱없이 비싸지고 원정낙태가 이뤄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다함께 여성위원회 최미진 활동가는 “낙태고발 후 시술이 음성화되면서 비용이 10배 치솟고 해외원정 낙태에 나서는 여성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며 “낙태 범죄화를 말하는 이들은 여성의 삶이 얼마나 잔인하게 망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에 따르면 그동안 산부인과 병원의 80~90%가 낙태 수술을 중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술을 계속하는 일부 의료기관이 '위험비용'을 요구하면서 비용이 크게 올랐다. 미혼모 시설에 입소한 임신 5개월 여성의 경우도 종전에는 100만원 안팎의 비용만 부담하면 됐으나 600만원으로 올랐다. 프로라이프 의사회 최안나 대변인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초기 임신의 경우 수술비가 종전에는 30만~40만원 했으나 최근에는 70만~150만원으로 올랐다”며 “일부 낙태 수술을 계속하는 병원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낙태 이유, 원치 않는 임신 가장 커
현행 모자(母子)보건법은 임신부에게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전염성 질환이 있거나, 근친상간· 강간 등에 의한 임신, 산모 건강이 위험해지는 경우의 5가지 사유에 한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단, 이 경우라도 임신 24주 이내여야 하고, 본인과 배우자가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합법적 이유보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개인적 여건에 따른 선택에 의한 낙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낙태에 대한 조사결과는 보건복지가족부와 고려대 의대가 2005년 실시한 ‘인공 임신중절 실태 조사’가 유일하다.
당시 조사에서는 연간 34만2,000건의 인공임신중절 시술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기간 태어나는 신생아는 44만명으로 태아 4명이 태어나는 사이 태아 3명은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생명을 잃는 셈이다.
낙태 시술 가운데 1만4,900여건(4.4%)만이 법적인 허용조건을 갖췄고 나머지 33만건은 불법시술인 것으로 나타났다.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은 기혼이 19만8,000건(58%), 미혼이 14만4,000건(42%)이었으며 이중 10대는 3.5%를 차지했다.
낙태의 이유로는 기혼여성은 ‘자녀를 원하지 않아서’가 70%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경제적인 어려움’ 17.5%, ‘임신 중 약물복용’ 12.6% 순이었고, 미혼여성은 ‘미혼, 또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93.7%를 차지했다.
최근 여성포털 ‘이지데이’가 여성 네티즌 2,14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7%가 “낙태경험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들이 낙태를 선택한 이유로는 ‘미혼이나 미성년자라서’(17%), ‘경제적 어려움 때문’(10%), ‘가족 계획상’(8%), ‘근친상간 등 부적절한 관계로’(1%) 등을 들었다. 또한 최근 낙태 찬반 논란에 대해서도 무려 78%가 ‘낙태 금지하되, 부분적 허용’을 원했다.
찬반 논란 전, 사회적 이해 우선돼야
하지만 낙태 반대운동을 벌여온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젊은 산부인과 의사들의 모임인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지난 3일 불법 낙태 산부인과 병원 세곳을 검찰에 고발했고, 이 낙태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이들은 “낙태는 범죄”로 규정짓고, “이를 방치해온 정부에게 책임이 있으며, 정부 대책이 없으면 고소·고발을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지난 1일 보건복지 129콜센터에 불법낙태 신고센터를 개설해 관련 시술 산부인과 신고 병원 검찰 고발, 산부인과 분만수가 인상, 청소년 미혼모 사회적 지원 강화 등 반(反) 낙태 분위기를 조성을 위한 '불법 인공임신중절 예방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낙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불법 인공임신중절 예방을 위한 사회적 협의체’를 발족시킬 예정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와 관련, 불법 인공임신중절 광고를 내는 의료기관에 대해 1차 서면경고, 2차 3개월 회원자격 정지, 3차 제명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삼진아웃제’를 도입한 상태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국내 불법낙태 가운데 90% 이상이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발생하는 만큼 사회적 여건이 변하지 않는 한 낙태는 근절될 수 없다”며 “무면허 시술이 음성적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낙태를 단순히 불법이냐, 합법이냐, 생명존중이냐, 경시냐 하는 문제로 해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두나 활동가는 “낙태시설의 적법성이나 시술의 범죄 여부에만 매몰되면 생산적 논의를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며 “여성이 낙태를 하게 되는 맥락이나 사회적인 경험 등이 함께 얘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에선 그간 불법낙태 행위를 무거운 죄로 판단하면서도 대부분 선고유예나 집행유예 등으로 가볍게 처벌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6~2009년 전국 법원에 불법낙태로 기소된 21명 중 벌금형을 받은 1명을 빼고는 모두 집행유예 또는 선고유예를 받았다. 벌금형을 받은 사람도 의사가 아닌 산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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