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선 ‘한국’
노 대통령이 ‘조용한 외교’를 벗어나 일본에 대해 강경노선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일본의 무시와 무대응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본이 이처럼 일련의 망언과 망동을 해 댄 것은 미국의 백그라운드가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련의 미국의 일본 감싸기 정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3월20일 노무현 대통령의 20여분의 걸친 강의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또 때마침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유엔 개혁안도 흘러나온 것.
오마이뉴스는 미국의 최근 친일 행보가 지난 2월말 미국 기업연구소(AEI)가 펴낸 이 기관의 연구원인 댄 블러멘털의 ‘미.일 동맹의 부활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블러멘털은 “90년대에 미일동맹은 쇠퇴했었으나 테러와 북핵 위협에 대처하면서 미.일동맹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며 “이는 군사강국으로서 중국의 부상에 대처할 수 있는 의미있는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이 부시 정권과의 테러와의 전쟁을 굳건하게 지지했고 자위대를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투입했다. 미일 전략적 통합을 촉진시키는 탄도 미사일 방어체제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것”을 근거로 들며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중동이지만 일본은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위한 큰 게임 속에 미국을 위치시키고 있다”고 썼다.
반면 한미동맹은 표류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펜타곤의 구상에 ‘NO'라고 답했다. 그러자 도널드 럼즈펠트 미 국방장관은 한국이 알아서 스스로 방위하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한국은 누가 적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헨리 하이드 미 하원 국제 관계위원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독도와 교과서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가 냉전에 가까워지는 와중에 미국은 노골적으로 ‘일본 편들기’를 한 것이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동아시아 국제정치역학상 미국의 비중이 동아시아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 한 한미동맹의 부실화는 미일동맹의 공고화로 가속시킬 수밖에 없다”며 “한쪽에선는 그 대안으로 중국을 거론하나, 미국과 멀어진 한국을 중국이 우대하겠나”고 우려했다.
자주외교 ‘성급했나’
시민단체와 네티즌을 중심으로 “참 적절한 대응이다” “속이 후련하다”는 호평을 받은 반면, 여야 정치권과 학계 전문가들이 속속 “성급했다”
신중했어야 했다“는 우려를 하는 것도 향후 외교문제를 걱정하는 이유 때문이다.
특히 외교전문가들이 포진한 외교부와 사전에 논의없이 발표된 노 대통령의 담화문에 외교부는 향후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한미동맹을 우선시 해 온 외교부와 다소 배치되기 때문이다. 외교부 한 관계자는 매우 난감한 입장을 표명하며 어떤 발언도 언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겠냐”면서도 “기본적으로는 NSC 성명발표에 따라갈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전혀 예상 못했다”며 “그저 노 대통령의 소신적 의견 아니겠냐”고 말해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성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은 최후의 국정조정자로서 뒤에 묵직하게 있으면서 세련되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센터장은 “신 독트린에서 이미 우리 입장을 어필했는데 굳이 총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었다”며 “대통령은 최후의 보루로 협상의 여지를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발언은 역사 교과서 문제를 앞두고 일본에 전면 압박 공세를 가할려고 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일본에서 눈하나 깜짝 안할 것이고 이는 곧 대일 관계에 긴장과 갈등을 조성할 것이며, 동북아 정세에도 불안정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일관계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은 “할 말은 할 말대로 하고 교류는 교류대로 할 것”이라며 자주외교 정책을 펴 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독도문제는 외교역량을 통해 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교적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새 친구를 사귀어도 기존의 동맹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동아시아 국제정치는 단순히 의도의 순수성만으로 풀기 힘든 고차원적 방식이므로 신중한 처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홍경희 기자 mete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