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정규직 노동자의 반도 안되는 월급을 받고 일하면서 인간취급도 받지 못하고 사는 현실이 비참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곤 우리도 정규직과 같은 노동자로 인정해 주고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 뿐 입니다.” (울산지역 건설플랜트 노조원)
지난 4월19일 국회 앞에서 비정규 개악저지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같은 장소에서 연일 집회가 벌어졌다. 매 집회마다 전국에서 모인 수백여 명의 노조원들이 개악안 저지를 촉구하고 총파업 투쟁을 결의했다. 4월 말 비정규직 법안 처리에 앞서 국회를 전방위 압박하기 위한 공세였다. 더구나 국가인권위원회 의견서 발표 뒤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 쟁취에 유리한 국면으로 정세가 반전된 것으로 보고, 노동계는 이에 탄력을 받아 강한 투쟁의지를 불태웠다.
반면, 인권위 의견에 ‘잘 모르면 용감해진다’는 발언을 한 김대환 노동장관과 ‘황당하고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한 이목희 의원에 대해서는 맹비난을 쏟아냈다. 특히 민주노동당 이용식 최고위원은 “김대환 장군은 인간 말종같은 인물”이라고 치부했다. 그는 “소위 그래도 과거에 진보학자란 사람이 이제는 마지막 양심도 닫아버렸다”면서 “분개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 기댈 데가 없으면 그러겠나. 권력과 돈 외에 믿을 게 없는 인간이지만 우리에겐 믿음과 투쟁이 있다”고 결의를 다졌다.
노동계, 인권위 안이 최소의 기준선
국회 앞을 빼곡히 메운 노조원들은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 통과에 강하게 반발하고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목적으로 한 투쟁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350여개의 시민단체가 지지하고 나섰고 여론조사에서도 70% 이상이 인권위 의견을 정부가 수용해야 한다는 결과도 크게 힘을 실었다.
비정규철폐 100만인 서명운동본부는 “참으로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면서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은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아닌 완전 노동무장을 해제하고 노동3권을 앗아가려는 행위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인권위의 판단과 350여개의 시민단체, 여론의 지지, 민노당의 권리보장법안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말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국회는 인권위의 의견이 만족할 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정부가 인권위 의견을 을 수용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익을 강화하는 쪽으로 관련법안을 수정하라”고 주장했다. 인권위의 의견을 가이드라인으로 정해 놓고 협상에 임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단상에 올라 “개악안이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된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저지하고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투쟁 발언에 나선 참석자들은 저마다 비정규직의 차별과 부당을 호소했다. 비정규직 특수고용연대회의 조합원은 “우리는 특수고용 노동자를 ‘위장 자영업자’라고 부른다. 사용자측은 특수고용 노동자를 ‘사장’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길거리로 내몬다”면서 “이른 새벽 일하는 신문배달부, 보험외판원, 학습지 교사가 사장이냐“며 울분을 터트렸다. 그는 또 ”철저하게 성과급 위주이다 보니 쉬는 날 하루도 없이 밤늦도록 일해야 한다“면서 ”화물과 덤프트럭 노동자들은 부품 소요 비용도 노동자가 직접 지불한다. 신호위반과 사고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를 활주한다고 욕을 먹지만 트럭 한 대의 임대비용 7,000여 만원의 할부금에 보험료를 포함해 한달에 250만원의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길바닥 모퉁이에 차를 세워놓고 새우 잠을 자는 것도 이런 이유다“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실상을 호소한다.
비정규 노동자 임금 연간 10조 착취
한편, 협상결렬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기간제 근로자의 실상도 언급됐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는 “좋은 말로는 동료, 동지, 가족이라 해 놓고 하기 싫은 일, 어려운 일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떠넘기고 책임을 묻는다”면서 “계약기간 만료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밥 사다 먹이고 조용히 집으로 돌려보내는 건 TV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금융기관에서 번듯하게 일하는 노동자들 대다수는 비정규직 근로자인데, 특히 여성 근로자들은 성희롱과 성학대 등을 당하기도 한다. 해고당하지 않으려면 순순히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폭로했다.
4월26일 열린 결의대회에서 민노당 이용식 최고위원은 “분하고 억울한 마음 금할 길 없다. 국민에 봉사해야 할 국회 앞에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문을 연뒤 “비정규직 개악안에는 엄청난 음모와 사회의 모순이 숨어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월급의 반을 받고 있어 사실상 반은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 800만 명 중 평균 정규직 노동자 월급을 200만원으로 볼 때 100만원의 수당만 받고 있으니, 연간 10조 정도의 노동자 임금이 자본가의 주머니에 들어가고 있다며 작년 상장사 전체 이익이 70조 된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아쉬움도 언급됐다. 사회보험노조 김흥수 위원장은 “노 대통령 취임 당시 안보 정권, 친노동 정권, 참여정부 정권이라 했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 정권은 친자본 정권, 홀로 정권이 됐다”면서 전국민의 70%가 반대하는 비정규직 법안을 노무현 정권이 나서 서로 합의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의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이나 앞으로는 정규직 문제로 확산될 것”이라면서 “정부는 정규직이 자기 이익을 생각해서 반발하지 못할 것이고 비정규직은 열악해서 강한 투쟁 못할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으로 탄압을 하고 있는 만큼 투쟁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고 결의를 다짐했다.
비정규직 사회적 이슈화 끌어내
한편, 4월22일부터는 노동계를 대표하는 양대 노총 위원장이 공동으로 단식 농성에 돌입해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양대 노총 위원장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익을 강화하는 쪽으로 관련법안을 수정하라는 국가 인권위의 의견제시를 받아들이라고 촉구했다.
특히 지난 4월25일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올 들어 처음으로 공동 집회에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참가자들은 인권위 의견을 겸허히 수용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 뒤, 개악안 폐기와 차별철폐 투쟁에 적극 나설 것, 양노총 위원장 단식투쟁의 성과로 전조직적 힘을 모을것, 사회양극화 해소 투쟁에 나설 것 등을 결의했다.
또 4월25일부터 30일까지 제2회 비정규직 차별철폐 대행진에 노동자와 시민 등 150여명이 참여해 6일 동안 서울 25개구를 도보행진하며 비정규직 문제점의 심각성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