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영원한 권력의 시녀인가. 검찰은 과연 권력의 시녀라는 뿌리 깊은 본질을 털어낼 수 있을까. 강정구 교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그의 구속수사 문제로 이어지면서 천정배 법무장관이 사상초유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하지만 천 장관의 불구속 수사지휘권에 대해 김종빈 검찰총장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 훼손이라며 부임 6개월만의 전격 사퇴라는 회오리로 맞섰다. 국회 정치분야 질의장을 뜨겁게 달군 강정구 색깔 정국. 마침내 법무-검찰 갈등해소의 큰 짐은 정상명 신임 검찰총장 내정자로 옮겨졌는데…. 검찰중립, 검찰개혁의 신호탄은 과연 울린 것일까.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 훼손?
10월 정기국회를 달군 건 국정감사도, XX게이트도 아니었다. 임시,정기국회를 통틀어 처음으로 ‘게이트’가 없었던 국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10월 국회는 ‘색깔론’으로 대변되는 강정구 교수 발언과 그의 구속수사 문제로 야기된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검찰조직에 엄청난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천정배 법무장관의 건국 이래 첫 수사지휘권 발동은 김종빈 검찰총장의 즉각 사퇴로 이어지면서 ‘법무부 대 검찰 간의 전면전’양상으로 나타났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검찰은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을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 훼손’에 맞췄다. 물러난 김종빈 전 검찰총장이 퇴임사를 통해 밝혔듯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야말로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며 검찰의 독립은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데서도 이같은 입장은 명확히 드러났다.
천 장관이 자신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검찰법 8조’에 규정된 합법적 조치였음을 주지한 바 있지만 김 전 검찰총장은 이미 수사지휘권 발동을 겨냥 “검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최종 책임자는 총장이다. 헌법정신과 실정법에 따라 처리하겠다. 비합리적인 부분까지 장관의 지휘에 승복할 이유가 없다”며 구체적 사건에 대한 법무장관의 지휘를 받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했다.
수사지휘권은 부당한 검찰개입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후 정치권은 급속도로 냉각됐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검찰의 독립성을 훼손시키고 법질서를 뿌리째 무너뜨린 일”이라며 “법무장관의 책임을 묻겠다”고 맞섰다.
강재섭 원내대표도 최고중진 상임운영위 연석회의에서 한발 더 나가 “50년전 일본에서 법무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는데 그런 검찰 치욕의 날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현돼 심히 유감”임을 명백히 했다.
말그대로 법무장관의 부당한 검찰개입이 정치권 화두로 오른 셈이다. 하지만 과연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이 오늘 대한민국 검찰에게도 치욕의 기억거리로 남게 된 것일까.
불과 2년전 한 부장검사 출신의 검사가 ‘검찰개혁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란 주제로 언론에 발표한 내용은 오늘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적하며 사퇴한 김 전 검찰총장과 대한민국 검찰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검찰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것은 정치적 사건 등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권력자와 주변 사람을 비난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수사 검사의 용기와 소신 부족이 그 원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검사 스스로가 의식을 바꾸고 조직을 살려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검찰의 역사, 권력의 시녀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장경욱(38)사무차장은 “전두환,노태우대통령 시절 공안사건에서 검찰이 얼마나 많은 극우적 입장을 대변 했는가”반문한다. 그의 지적대로 우리사회에서 사법부, 판검사는 권력의 상징처럼 국민위에 군림해 왔다. 실제 검찰의 고문, 강압적 수사관행, 검찰의 권력주의는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민변 장 변호사는 “과거 검찰은 권력의 시녀처럼 밀실에서 아무런 근거없이 법무부장관을 통해 정치권의 압력을 전달받았다”며 “검찰청법 8조가 오히려 삭제됐어야 할 시기에는 침묵하던 검찰이 정작 통제가 필요해 합법적으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법무장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부터 해방직후 박정희 대통령과 5,6공을 거치면서 검찰은 ‘권력의 시녀’라는 뿌리깊은 본질을 털어내지 못했다. 장 변호사는 “검찰이 오히려 법무장관의 지휘권 행사에 반발하기 보다 내부민주주의와 과거청산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는 일침이다.
실제 법원의 과거청산뿐 아니라 사법권력의 한 축을 담당해 온 검찰의 과거청산 노력은 끊임없이 예의 주시돼온게 사실이다. 정부내 조직임에도 불구, 검찰은 유일하게 다른 기관들이 자체 과거청산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하는데 반해 이를 외면한 조직으로 인식돼왔다. 게다가 과거 정치검사, 판사들의 범죄적 행위들에 대한 단죄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게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검찰, 새로운 변화를 위하여
“정치권과 시민단체도 검찰이 개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나가야 한다. 검찰 개혁의 중점은 외부의 영향력, 특히 정치권이 관여를 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다. 법무부와 검찰의 고리를 끊으면서 법무부는 비검찰부화하고, 법무검찰행정 전문기관으로 바꿔야 한다. 법무부와 검찰에 신망받는 외부 인사를 대폭 영입해 참신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내부 견제장치를 갖춰야 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군사독재 정권이 장기간 집권하면서 절대권력화해 헌법은 유명무실한 장식물로 전락하였고, 헌법의 기본원리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여지없이 유린되어 왔다. 이 기간 1, 2차 사법파동을 거치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외쳤던 양식 있는 법조인들이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쫓겨났다. 사법부의 독립은 실종되었으며, 법원과 검찰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권력 견제라는 사법의 본래적 기능을 잃은 채 독재권력을 정당화하는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해 왔다.”
불과 2년전 당시 한 사법연수생의 칼럼을 통해 국민에게 비춰진 사법, 검찰의 모습은 오늘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술렁이는 검찰현주소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사법기능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원과 검찰제도 개혁. 대법원장과 대법관에 대한 민주적 선출제도 도입과 법조 일원화, 법관승진제도 개선이나 특별검사제 도입,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실시에서 검찰인사위원회의 권한강화와 외부인사 참여, 사법과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통제(배심제, 참심제, 검찰심사위원회 도입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제기된 검찰개혁의 로드맵은 분명 없던 것이 아니다. 단지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
어느때보다도 검찰총장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점. 개혁마인드와 조직장악력을 겸비한 신임 정상명 검찰총장 내정자가 어떻게 탄력받는 검찰개혁을 시작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