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같이 절실한 정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사는 동안 숨을 쉰다. 모든 생물은 숨을 쉬지 않으면 죽게된다. 왜 그럴까. 인체 속에 필수적인 산소를 들이키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산소가 없으면 생물은 당연히 죽고 만다. 산소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피할 수 없는 요소인 것이다. 이처럼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흔히 소홀히
하는 것 같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사회활동이다. 사람을 만나야하고 돈을 벌어야한다. 시장에 나가서 물건을
사야한다. 밥을 짓고 먹어야 하며 옷을 갈아 입어야한다. 거리를 걸어다니거나 학교 또는 직장에 다녀야한다.
사회활동을 위해서는 법질서 준수가 불가피하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법질서의 지배를 받아야한다. 각종 세금을 내지 않으면 모든 권리집행에
제재를 받는다. 도둑에게 약탈당하거나 전쟁을 막기 위해서 든든한 치안과 국방이 필요하다. 어느 한곳에도 법질서가 숨쉬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면 법은 어디서 만들어지고 집행되는가. 바로 정치권이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정부에서 시행한다. 사법부에서는 법 집행으로 잘잘못을
따지게된다. 따라서 정치는 우리 사회에 불가피한 토양을 조성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는 마치 산소처럼 우리가 피하려해야 피할 수가 없는 절대
요소인 것이다.
따라서 정치는 산소처럼 신선해야 한다. 혼탁한 먼지가 곁들이지 않아야 한다. 산소가 맑을수록 인체에 좋은 것처럼 정치도 깨끗해야 우리
사회를 쾌적하게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요즘 정치가 바로 그런 정치인가? 서로 치고 받는 모습으로 투영되어 있지 않은가? 과연 국민을 위해
깨끗한 정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인가?
대부분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게 된다. 대부분 실망하고 있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정치권에 들어 있는 사람 중 하나로 무엇이 문제인가
자세히 들여다보자. 무엇이 병폐인지 같이 살펴보자.
우리나라 정치제도와 풍토는 돈이 많이 들게 되어 있다. 국회의원 선거를 사례로 들어보자. 우선 국민 대표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2천만원의 공탁금이 필요하다. 선거벽보와 선거공보 인쇄비도 3천만원이 들어간다. 지구당 정기대회에도 2천만원으로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선거 사무실도 사람이 운집한 요지에 개설해야 한다. 선대본부장과 사무국장, 운전기사 2명, 여직원 2명등 상근요원이 필수적이다. 복합지구의
경우에는 해당 연락소에 연락소장과 여직원도 필요하다. 선거운동원과 여성 홍보요원도 대부분 일당이 제공된다. 식대와 숙박비등을 포함하면 줄잡아도
1억원 이상이다.
선거기간 전후에 후보 본인의 생활비를 포함하면 2억원이 들었다면 빈축을 산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활동비가 적지가 않다. 당선된 사람은
그래도 낫다. 세비도 나오고 후원금도 들어온다. 이권청탁도 줄을 선다. 낙선된 야당 위원장은 아주 서럽다.
자신의 생활비는 말 꺼내기조차 부끄럽다. 쥐꼬리만한 중앙당 보조비가 간간이 건너뛴다. 규탄대회등 당원 세몰이에는 30∼50만원의 교통비가
밥값 등을 포함하면 곱절로도 모자란다.
중앙당 후원행사를 포함해 평소 가까운 의원 후원행사가 책상에 수북히 쌓인다. 동기동창 등 선거에 도와줬던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면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애·경사 등에 모습만 드러 내려해도 차비를 포함해 10만원 가량 든다. 체면치레가 만만하지 않다.
과소비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부적절한 이권 개입 유혹에 빠져들게 한다. 정치인들을 부도덕하게 만든다. 특히 집권세력에서는 틈만 있으면 사정의
칼을 휘둘러 정치인들을 부도덕한 정치꾼으로 몰아 세운다. 국민들이 정치를 외면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권을 연장하고 독재를 하려는 것이다.
이제 21세기다. 우리나라도 정상적인 고급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주력으로 자리잡는 시기이다. 정치인들이 부도덕한 손가락질 받지 않고 존경의
대상으로 자리잡도록 잘못된 제도들을 하나씩 고쳐가야 한다. 그래서 멋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정녕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밭을 갈고
씨를 뿌릴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