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9일 감사원은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감사 자료를 발표했다. 시민단체 등에서 그동안 의혹으로 제기됐던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났다. 당시 외환은행이 매각될만큼 경영이 부실하지도 않았고 매각 과정에서 BIS(자기자본비율)이 조작됐다는 점, 또 외환은행 경영진과 재경부 금감원 등 정부 관료들이 개입돼 매각이 일사천리로 처리됐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여기에 ‘왜’는 없고 책임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밝혀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제 공은 검찰에게로 넘어갔다. 검찰은 감사원 자료를 근거로 핵심인물 수사에 착수했다. 외국계 투기자본에 합세해 각종 불법 로비를 벌여 국내 금융사를 헐값에 팔아넘긴 배후세력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일이 남았다.
‘이헌재 사단’은 모피아의 전형적인 사례
감사원 자료에서도 드러났듯이, 외환은행 매각 사태는 단순히 싸게 팔아넘겨서가 아니다. 헐값 매각의 배후에는 ‘모피아’가 있었다는 데 있다. 외환은행의 BIS를 조작해 외국계 펀드 론스타에 헐값에 넘겨 4조5천억원이라는 막대한 이익을 안겨준 셈이다. 감사원 감사에서도 재경부가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외환은행 김보헌 노조위원은 “재경부는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매각사로 적정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금산법의 예외조항을 따서 외환은행을 ‘잠재적 부실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부실금융기관’으로 만들어 매각이 가능케 했다”면서 “당시 론스타에 매각된다는 사실을 직원들도 알지 못했을 정도로 일사천리로 매각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또 재경부와 금감위가 주장하는 외환은행 부실가능성에 대한 근거가 없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는 “론스타 자금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외환은행은 흑자였고 독자생존이 얼마든지 가능했다”면서 “2004년 1월부터 공식적으로 흑자전환이 되고 법적 충당금을 갖췄는데도 외환카드에 충당금을 보충해 주는 식으로 자기자본비율을 낮췄다”고 말했다.
‘모피아(MOFIA)’는 재무 관료와 출신 인사를 지칭하는 말로 재정경제부(MOF·Ministry of Finance)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로, 재경부 출신들이 산하기관을 장악하며 그 세를 넓혀 가는 것이 마피아와 비슷하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이들은 재경부와 청와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국가 경제의 요직을 장악하고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막강한 파워를 과시한다.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과 장덕진 전 농수산부 장관이 모피아의 대부격 인사로 알려져 있고, 그 뒤를 이헌재 전 부총리, 신명호 HSBC은행 회장, 임창열 전 부총리 등이 이어받았다.
이헌재 사단은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초엘리트 집단으로 1998년 외환위기 극복과 금융구조 개혁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관치금융의 논란에 빠져들면서, 모피아가 화려한 날은 가고 난데없는 위기에 속을 태우게 됐다.
‘이헌재 사단’은 모피아의 전형적인 사례로, 외환은행 헐값 매각 과정에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사원도 그동안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결정적인 근거가 됐던 BIS비율을 허위보고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사실을 확인하고 ‘윗선 개입’여부를 조사해 왔다. 이헌재 사단은 이 전 부총리와 학연과 지연 등으로 얽혀 중요 경제정책 결정과 집행 분야에 넓게 포진돼 있다. 이 전 부총리가 함께 일한 관료들과 각계 전문가 그룹, 경기고와 서울대 인맥이 주축이다.
검찰수사 ‘이헌재’정조준
이 전 부총리는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한 바 없다”고 말하지만 이 말을 곧이 들을 사람은 거의 없다. 막강한 금융계 인맥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으며, 이미 감사원 자료에서 이헌재 사단의 윤각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검찰 수사 역시 이 전 부총리를 직접 정조준 하는 모습이다.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헌재 전 부총리와 신재하 보고펀드 공동대표도 외환은행 헐값매각 수사와 관련해 출국금지를 당한 상태다. 모건스탠리 전무였던 신재하 씨는 세종의 모 변호사와 함께 ‘10인 비밀회의’에 참석한 인물로 최근 부인의 금융거래 내역을 압수수색 당하기도 했다. 김재록 인베스투스클로벌 전 회장도 부실기업 인수 및 대출 관련 알선수재 혐의로 이미 구속됐다.
앞서 현대차 비자금 수사과정에서 변양호 전 금융정책국장과 연원영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김유성 전 상호저축은행중앙회장 등이 구속 또는 체포됐다. 30여년간 재무부와 재경부에서 근무했던 김유성 전 대한생명 감사도 체포됐다. 이들 모두 이재국(현 재경부 금융정책국) 출신으로 이헌재 사단의 일원이다.
외환은행 매각 주역 3인방인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이강원 한국투자공사 사장(전 외환은행장),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전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 등은 모두 이헌재의 사람들이다. 핵심 인물 가운데 최근 수뢰혐의로 구속된 변양호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모피아 중의 모피아다. 변 국장은 외환은행 매각 당시 재정경제부 주무 국장이었고 론스타 법률 자문을 맡고 있던 법무법인 김&장의 고문으로 있었다.
변 국장은 협상 과정에서 론스타가 콜옵션(외환은행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요구하자, 행사가격을 임의로 정한 뒤 외환은행 대주주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변 국장과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는 이 전 부총리의 경기고 후배다. 이들은 외환은행 매각의 판단기준이 됐던 BIS 자기자본비율을 축소해 은행법상 인수자격이 없는 론스타에게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배후’ 내지 ‘윗선’개입 잠재우기 위한 수순?
변 국장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이, 다른 한쪽에는 김석동 전 금감원 감독정책 1국장(현 재경부 차관보)이 있다. 이들은 모두 외환은행 매각 협상 당시 BIS 비율을 낮춰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이강원 전 사장은 이 전 부총리의 광주서중 후배로 이 전 부총리가 외환은행에서 10억원을 대출받을 당시 은행장을 지냈다. 이들 3명은 2003년 7월15일 외환은행을 론스타로 매각하기로 결정한 이른바 ‘10인 대책회의’에도 함께 참석했다. 지난달 29일 검찰은 외환은행 본점과 이강원 전 행장, 이달용 전 부행장 집과 집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강원 한국투자공사사장의 경우 검찰의 소환을 앞두고 해임여부가 거론되고 있는 판이다.
당시 론스타의 회계 담당인 회계법인 삼정KPMG의 고문으로 있었던 진념 전 경제부총리도 의혹의 화살을 비껴갈 순 없다. 외환은행 매각 시절 재경부 장관직을 맡았던 진념 현 교육부총리는 교묘하게도 급식파동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의사를 밝히고 물러났다. 김진표 당시 경제부총리는 2003년 7월22일 외환은행의 론스타로의 매각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이정재 당시 금감위원장은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을 승인한 감독당국의 수장이었다. 이들 3명은 모두 감사원 조사를 받았다.
당시 론스타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김&장 법률사무소는 이헌재 전 부총리가 비상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외환은행 매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장은 은행 인수 자격이 없는 미국계 투기펀드인 론스타를 은행법상 예외조항을 적용해 외환은행을 매각할 수 있도록 법률자문을 했다.
하지만 김&장 법률사무소는 “국내 법률자문만 맡았을 뿐 세간에 떠도는 의혹은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며 이헌재 사단과의 연결고리에 대해서도 “이헌재 씨는 비상임 고문이었을 뿐”이라고 모르쇠를 취하고 있다.
외환은행 헐값매각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박영수 검사장)는 론스타쪽 법률자문을 담당한 김&장 법률사무소와 외환은행쪽 자문을 담당한 법무법인 세종에 대해 관련 자료를 요청한 상태다.
감사원 감사 발표 이후 검찰의 급진전된 수사와 관련자들의 잇단 구속과 체포 등에도 ‘뭔가가 있다’는 의혹이 나온다. 이미 변양호 전 국장 등 이헌재 사단의 핵심세력들이 현대차 비자금이나, 개인적인 다른 이유로 정리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달 30일 김진표 교육부총리와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갑자기 사의를 표명한 것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적지 않다. 일각에선 이런 행보가 이헌재 사단 외에 더 큰 ‘배후’ 내지 ‘윗선’ 개입을 감추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수조원 대의 거대은행의 처리는 청와대와 경제부처 수장들이 정책결정을 해왔다는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재경부, 금감위 최고 책임자의 개입도 배제할 수 없다. 권오규 당시 청와대 정책수석(현 정책실장)은 당시 청와대 행정관을 10인 대책회의에 참석토록 했던 점이 한 점의 의혹으로 남는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10인 비밀대책회의에는 노무현 정부 인수위 시절부터 이 업무를 담당한 재경부 출신의 행정관이었다”면서 “2002년 서울은행과 하나은행을 해외에 매각하기로 IMF와 합의했고 이행과정에서 제일은행을 해외에 매각한 뒤 국부유출이라는 비판여론에 밀려 서울은행을 하나은행에 매각하고 다음순서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기로 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검찰의 수사방향이 이헌재 사단에서 그치고, 사법처리 여부도 더 이상의 ‘윗선’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론스타 외의 것으로 처벌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다음 페이지 인터뷰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