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동아여, 공기(公器)로서의 자리를 찾아라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작년 최고의 흥행작이었던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에서 주인공이 죽어가며 남긴 말이다. 영화만큼이나 이 말은 대유행이었다.
요즘 언론 중에 이 말과 꼭 들어맞는 데가 있어서 굳이 인용했다. 최근 불거진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에 대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앞장서서
정권을 공격하고, 일부 정당에 훈수까지 하는 모습이다.
물론 사실을 보도하는 데는 의의가 없다. 언론의 기능이란 당연히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을 속 시원히 밝히고, 사회의 잘못을 바로잡아가는 데
있다. 그것이 언론의 순기능이라면, 힘있는 세력과 결탁하고 자신의 몸을 불리는 일, 사실을 오도함으로써 국민을 기만하는 일, 언론 스스로가
권력화 돼 남을 공격하고 자신을 방어하는 데에 힘을 쏟는 일 등은 언론의 역기능이라고 하겠다.
직업상 거의 모든 뉴스와 신문에 눈과 귀를 열어놓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보는 게 하루의 가장 중요한 할 일 중 하나다. 그런데 최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보면서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다른 기사를 찾아볼 수가 없다. 양 신문은 1면부터 7면까지 죄다 대통령 아들 관련 기사로 도배를 해 놓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보다도 “날 해칠 것 같아 밀항 거부”(5월 7일자 조선일보 톱), “최규선씨 청와대에 구명시도”(같은 날 동아일보
톱) 기사를 실어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대통령 탈당 기사는 1면 귀퉁이에 박스처리되어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이들 신문은 분이 덜 풀렸는지 사설을 통해서도 따끔한(?) 충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사설의 주제까지도 똑같다. ‘이희호 여사와 홍걸씨’,
‘부적절한 대통령 사과’, ‘북측이 남북경협 거부’. 단지 제목이 약간 다르고, 그 순서가 뒤바뀌었다.
이날뿐만이 아니다. 마치 한풀이라도 하듯 최근 열흘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7면 할애의 공식’을 써먹고 있다. 오피니언란에도 대통령
아들과 정권비리 관련 의견을 채워놓았다. 한 번 돌아본다. 요즘 톱으로 오를만한 사회적인 이슈는 없었나? 정치권에 또 다른 기사거리는 없었나?
탈북한 길수가족이 중국에서 일본공관으로 진입을 시도하다가 붙잡힌 사건도 있었고, 문희갑 대구시장과 최기선 인천시장이 소환되는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건들은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입맛에는 안맞는 모양이다.
언론개혁이 그렇게도 미웠나?
왜 이렇게 이들 신문이 정권비리에만 열을 올리는 것일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현정권과 불편한 관계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현정권의
언론개혁을 두고 감정의 골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세무조사를 하고 추징금을 물리는 것에 대해 이들 신문은 부당한 언론탄압이라고 맞섰다. 그리고
정권의 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 정부여당의 후보에 대해서도 배타적이다. 조선일보는 대선후보검증위원회를 만들어 초등학교때 몇
번 결석을 한 것으로 미루어 불성실하다느니, 요트 동아리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서민인 척 하지만 실상은 대선전략이라느니, 검증위원회라기보다
트집잡기위원회라고 불러야 될 정도다. 동아일보도 후보검증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니 참 죽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감히 말한다. 조선·동아여! 누구를 검증하기 전에, 그리고 어떤 사건에 대해 정략적으로 이용하기 전에 자신들이 국민에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공기(公器)로서의 자리를 되찾고 언론권력으로 그동안 누리던 혜택은 과감하게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