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원회)는 '청원 오창창고 보도연맹 사건'을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등의 이유로 감금된 마을 주민 315명이 후퇴하던 군인들의 총격과 미군 전투기의 폭격으로 인해 희생된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13일 제58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전쟁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인 '청원 오창창고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보도연맹 및 불순분자를 일제히 구속하라'는 내무부 치안국장의 지시에 따라 1950년 6월 30일과 7월 8일 양일간 충북 청원군 오창면과 진천군 진천면 보도연맹원 400여 명이 오창양곡창고와 오창지서, 진천경찰서 사석출장소 등지에 강제 구금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헌병의 지시에 따라 관내 경찰과 의용소방대원들은 각 마을을 돌며 미리 작성한 명부에 의거해 주민들을 소집해 구금했다.
당시 오창지서에는 헌병 5∼6명이 다수의 군인들을 지휘하고 있었고 헌병의 지시를 받아 경찰과 의용소방대원이 경계를 섰다. 소집된 보도연맹원들은 7월 8일부터 3일동안 오창창고 안에서 구금생활을 했다.
오창지서와 오창양곡창고 구금자 중 주동자급으로 분류된 주민들과 군인 가족 등 최소 6명 이상이 7월 10일 오창지서 창고 및 오창양곡창고에서 수도사단 헌병대와 진천지역에서 전투에 참가한 국군들에 의해 사살되거나 폭행치사 당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헌병과 경찰이 창고 안 구금자들도 전원 사살하려 했으나 오창지역 마을 유지들의 만류로 창고를 잠근 채 후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후 오창양곡창고에 구금된 최소 304명 이상의 보도연맹원들은 7월 11일 새벽 창고 앞을 지나가던 제6사단 헌병대와 후퇴하던 군인에 의해 사살 당했다.
군인들은 창고 자물쇠를 부순 뒤 구금자들의 신분이 보도연맹원임이 밝혀지자 기관총과 M1소총 등으로 총격을 가하고 수류탄을 투척해 사살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후 몇 시간이 지난 7월 11일 아침 8시 30분경 미군 전투기에 의해 창고 인근이 폭격을 당해 당시 군인들의 총격을 피해 살아남은 사람마저도 희생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앞서 진천지역 보도연맹원 가운데 주동자로 분류된 최소 5명 이상이 1950년 6월 30일경 진천면 성석리 소재 할미성에서 진천경찰서 사석출장소 경찰로부터 총격을 받고 3명이상이 사망, 2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가해군인의 소속에 대해 7월 10일 발생한 사건은 수도사단 헌병대와 그 지휘 하에 있던 군인, 7월 11일 오창창고 구금자 전원을 사살한 군인들은 제6사단 19연대의 지휘를 받아 수도사단 1연대 소속 군인과 17연대의 2개중대 군인일 개연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군·경찰의 공식기록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신청인 90% 이상이 가해부대를 수도사단 소속 부대로 진술하고 있고, 문서상으로도 이들 가해부대가 사건현장에 주둔하거나 통과한 기록이 있어 가해자로 확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 사건과 관련하여 확인된 사망자 수는 총 223명, 현장 생존자 수는 총 92명이며, 전체 피해자 수는 총 315명으로 조사됐다.
희생자들 대부분은 과거 좌익활동 관련 전향자 조직인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로 알려졌으나 일부 주민들은 가입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신청인ㆍ참고인 증언에 의하면 보도연맹 가입자라 해도 조직의 성격을 알지 못한 채 강제로 가입한 사람, 또는 분위기에 휩쓸려 이전에 좌익관련 단체에 가담했던 무지한 농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비교전 상태에서 비무장ㆍ무저항의 민간인을 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차별 살해한 행위는 당시의 실체법이나 절차법을 위반한 행위이며 국제인도법에도 위반되는 행위라고 밝혔다.
또 헌법에서 규정한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등의 이유로도 침해할 수 없다"라는 법치국가의 최소한 원칙도 위반했다고 덧붙였다.
사건의 생존자들은 총상을 당해 노동능력을 상실하고 사고 당시의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과중한 치료비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렸던 경우가 많았다. 유가족 역시 가장이 사망하자 생활고와 연좌제 피해 등 갖은 고초를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이 비록 한국전쟁 발발 초기 국군이 급히 후퇴하던 급박한 상황에 발생한 사건이나 비무장 민간인을 적법 절차 없이 소집ㆍ구금하고 임의로 사살한 가해 군ㆍ경에게 책임이 발생하며 이런 행위를 묵인하고 비호한 국가에게도 책임이 발생한다고 결정했다.
국민보도연맹사건은 한국전쟁 전후 최소한 수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집단희생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가운데 34.2%(7,539건 중 2,576건)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사건이다.
이번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은 국민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첫 진실규명 결정으로 향후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전국적인 상황과 발생 배경, 가해의 지휘·명령체계를 밝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청원 오창창고 보도연맹 사건'의 진실이 규명됨에 따라 국가의 공식사과와 위령사업의 지원, 호적 정정 등 명예회복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해 공식기록에 등재하고 군인과 경찰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하며, 전시 비무장 민간인 보호와 인권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진실규명 결정과 관련해 전정웅 유족회장은 "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당시 순수한 민간인들을 빨갱이라고 뒤집어 씌워 사살한 것에 대해서 아직도 많은 유족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되고 국가차원의 보상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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