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판결 남아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박관용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한 가운데 12일 오전 무기명 비밀투표에 부쳐졌다.
이날 오전 11시5분께 경위들을 대동하고 본회의장에 입장한 박 의장은, 경위들이 의장석에서 농성중이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끌어낸 후 의장석에 앉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당 의원들과 경위들, 야당의원들간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져 본회의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박 의장은 당초 조순형 대표가 발표키로 했던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을 유인물로 대체하고 곧바로 무기명 투표를 선언했다.
김근태 원내대표 등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표결중단을 요구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박 의장은 “의장이 의원 다수의 의견을 투표에 반영토록 하는 게 임무”라면서 탄핵안 표결 진행을 막지 말도록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당부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재진입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경위들에 막혀 뜻을 이루지는 못 했다. 결국 의원들만 본회의장에 입장할 수 있도록 결론이 나긴 했지만 이부영 홍재형 의원 등은 “표결이 끝났는데 들러리 서고 싶지 않다”면서 입장하지 않았다.
탄핵이 결정되기까지는 겨우 3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본회의장에 입장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탄핵 표결은 3·12 쿠테타”라며 표결 중단 구호를 계속 외쳤으나, 표결 자체를 막지는 않았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표결이 있기 전인 이날 오전 9시 이병완 홍보수석을 통해 “대결국면의 탄핵정국에 이르게 된 것을 참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대국민사과를 했다. 11일 기자회견이 야당의원을 비롯해 국민들을 자극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3대 2라는 압도적 표차가 말해주듯 효과가 전혀 없었다.
탄핵이 가결된 후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의원직 총 사퇴를 결의했다. 정동영 의장은 “80년대 민의를 짓밟았던 5공의 후예들이 쿠테타를 일으켰다”면서 “총선에서 심판받게 될 것”이라고 야당을 비판했다.
탄핵소식을 전해들은 노 대통령은 “힘이 들더라도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지금의 상황이 변화를 위한 진통이고 내일을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남아있고 헌재는 법적인 판단을 하는 만큼 정치적 판단과는 다를 것”이라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한편, 청와대는 충격 속 후속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탄핵 가결에 대비해 이미 대통령 권한과 신분 검토도 마친 상태다. 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탄핵에 대비해 담담하게 대처하자는 노 대통령의 당부가 있었다”고 전했다.
탄핵이 현실화된 만큼 이제는 이로 인한 충격파를 흡수·상쇄하는 것이 관건이다. 국정혼란과 국론분열에 지혜롭게 대처하고, 경제를 살리는 데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진력해야 할 시점이다.
노 대통령 탄핵 일지 |
▲2004년 1월5일 민주당 조순형 대표, “대통령이 선거운동 헌법과 법률 위반 탄핵사유 해당” 총선 관련 탄핵 언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