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마다 내일을 꿈꾼다’·‘동행’의 김미례 감독이 본 비정규직여성
대한민국 여성노동자 580만명 가운데 380만명이 비정규직. 열에 일곱 꼴이다. 100만여명에 달하는 특수고용노동자 대다수가 여성이다.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남성노동자의 62% 수준이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전체 정규직의 43%에 불과하다. 2003년 정규직남성
월평균 임금이 222만원인데 반해, 비정규직여성은 82만원을 받았다. ‘남녀고용평등법’이나 ‘남녀차별금지법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은 있으나마나였다.
이 나라 어디에서든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 곳이 없지만 노동시장, 특히 비정규직여성에게는 더 하다.
김미례(41) 감독은 누구보다 비정규직여성의 현실을 잘 안다. 김 감독은 비정규직여성들의 투쟁을 고스란히 담은 ‘나는 날마다 내일을 꿈꾼다’와
남녀노동차별철폐를 위해 헌신하는 한 여성노동활동가의 삶을 비춘 ‘동행’ 등 작품으로 이 사회를 질타했다.
그는 뷰파인더로 온갖 차별을 감내하는 비정규직여성들을 응시하면서 어머니와 언니 동생, 그리고 예전 자신을 발견하고는 가슴 한 구석 멍울이
생겼다. 김 감독이 본 그들의 모습을 풀어내 본다.
현장에서 직접 접한 여성노동자들은 어떤 모습이었나?
식당조리사 환경미화원 학원강사 골프장경기보조원 등 비정규직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멸시는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다. 겉보기에 나약한 그들은
그러나 당당히 그게 잘못된 것이라고 소리쳤다. 생존이 걸린 일이지만 그런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그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
각각의 경우 어떤 차별을 받고 있었나?
당시 학교 환경미화원과 식당조리사 아주머니들은 월 50만원(2001.9~2002.8 기준 47만원, 현 56만원)도 안되는 법정최저임금을
받고 있었다. 이에 반해 남자경비원은 월 60~70만원을 받았다. 노동강도는 더 높았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1년을 일하든
10년을 일하든 임금엔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고용이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용역회사로 넘어가면서 비정규직화됐다. 이전에도
마찬가지로 최저임금을 받았지만 동료들과 계모임도 하고 주말에는 놀러도 다니면서 행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동료들과 소원해졌고 일하는 즐거움이 사라졌다고 하소연했다.
경기보조원은 특수고용직이다. 사측이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라운드를 돈 손님들에게 수당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측은 경기보조원들이
사측에 고용되지 않은 소사장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출퇴근 관리에서부터 온갖 통제를 다하는 등 고용관계에 있으면서 그걸 부정하는 것이다.
산업재해나 고용보험, 의료보험 등을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다.
학원강사는 구두계약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계약대로 지켜주면 고마운 것이고 지키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나가라고 하면
힘없이 보따리를 싸고 나와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잘 지켜지고 있었나?
연·월차나 각종 보험혜택, 법정 근로시간 준수 등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비정규직여성이 자신에게 보장되는
권리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목숨줄을 쥔 사업주가 주면 주는 만큼만 받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해왔다.
비정규직여성들을 바라보면서 특히 가슴 아팠던 부분은?
작품 사례들은 해피엔딩이었다. 학교측과 싸워서 고용승계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고 경기보조원들은 사측으로부터 노동자로 인정받았다. 학원강사들은
제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 매주 모여 공부하고 다른 강사들에게도 널리 알렸다.
그런데 진정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식당조리사의 경우 결국 학교측에 의해 한사람씩 해고됐다. 그들로서는 때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또
다른 경우들도 합의했던 사항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현실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남성노동자들이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에 동참하거나 도와준 적은 없었나?
그런 사례가 기억이 안 난다. 지금 비정규직남성들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들 역시 차별을 받으면서도 같은 비정규직여성들을 가부장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많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은 절체절명의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여성의 문제는 자기들만큼 절실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여성의 노동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급노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중심, 남성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의원 여성할당제를 실시하겠다고 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상급노총에서조차 여성차별이 심각한데 어떻게 여성들의 문제를 진심으로 고민하고 해결할 수가 있겠는가.
감독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영화 작업을 하기 이전에 여러 비정규직을 거쳤다고 들었다.
학원강사도 했었고, 백화점 가판 판매, 출판사 임시직 등 생활을 위해 이런 저런 일들을 닥치는 대로 했었다.
당시 불합리함을 느낀 적 없나?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그 사례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은 했으되 말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의 경우는 어떤가?
예전에는 정규직이었던 친구들도 이제는 비정규직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다. 결혼과 동시에 퇴사를 했던 그들이 다시 사회로 복귀하려고 할 때는
대부분 텔레마케터,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등 비정규직으로 편입한다. 비로소 임금이 낮다는 것을 알게 되고, 비정규직의 고통이 눈에 들어오게
됐다고들 한다. 단지 비정규직여성 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여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여성노동조합이나 여성노동자협의회 등에서 내놓는 요구안과 정책적 대안들을 사용자와 정부가 받아들여야 한다. 또 노동자 전체적으로는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할 것 없이 동류의식을 가지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