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는 일하고 싶다
일반 빈곤층보다 신불 빈곤층 일하려는 의지 높아 …
5년내 빚 갚고 중산층 진입 전망 69.6%
‘신용불량 빈곤층’(이하 신불층) 가운데 열에 여섯은 자살을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빚을 갚기 위한 장기매매 고려가 열에 한 명
꼴. 절도 매매춘, 강도, 납치 등 생계형 범죄를 실행에 옮길 생각을 했던 사람도 거의 열에 두 명 가까이 됐다.
지난해 8∼9월 두 달 동안 서울·경기지역 거주 신불층 상대 설문 조사 결과 이들이 경제적·심리적 고통에 매우 시달리고 있다고 한국빈곤문제연구소는
12월30일 밝혔다.
그러나 이들은 미래에 대해 다소 희망적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제도적인 도움만 있다면 부채를 꾸준히 갚아나가 열에 일곱이 5년 내에 중산층
이상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바라보고 있었다.
신불층 생활실태, 의식조사
신용불량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03년 11월 현재 은행연합회 통계에 따르면 365만 명을 넘어섰다. 한 가구의 가구원수를 3명으로
볼 때, 신용불량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수는 약 1,0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친지, 보증인까지 합하면 전국민의 1/3에
해당하는 1,600만 명 정도가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생활실태와 경제의식, 사회의식이 ‘일반 빈곤층’(이하 일반층)과 비교해 어떤지에 대한 연구 발표가 없다. 일반층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이들을 재단했고 대책마련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한국빈곤문제연구소는 국내 최초로 신불층과 일반층 모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소는 향후 신용정책수립에
필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설문조사에는 신불층이 129명, 일반층이 609명 참여했다.
공평한 사회복지제도 적용 필요
신불층의 평균 부채는 무려 7,460만5,000원에 달했다. 신불층 55.7%는 2003년에 양산됐다.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진
시점과 무관하지 않다. 선뜻 돈을 내주던 카드사들이 위기가 닥치자 돈을 거둬들이기 시작한 것. 한편, 일반층은 평균 1,988만4,000원의
부채를 갖고 있었다.
신불층의 수입은 월 평균 205만5,000원으로 170만1,000원의 일반층보다 35만4,000원 더 많았다. 그러나 부채가 많다보니
상환액도 월 206만5,000원으로 오히려 수입을 초과했다.
이들은 거의 모든 사회복지제도에서 일반층보다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층 9.5%가 기초생활급여를 받고 5.3%가
자활사업 참여, 12.8%가 산재보험 혜택을 받고 있었다. 반면, 신불층은 기초생활급여 5.1%, 자활사업 0.9%, 산재보험 9.4%로
확실히 차이가 났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박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근로능력 보유자라며 추정소득세가 부과되거나 등재할 주민등록지가 없다는
이유로 신용불량자들을 기초생활보장에서 제외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빚독촉으로 실직한 신불층 76.3%
일반층 35.9%가 부모로부터 빈곤을 물려받았고, 33.6%가 ‘성인이 돼서 실직 또는 사업 실패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신불층은 빈곤을 대물려 받았다는 답이 27.6%였고 과반수 이상(50.5%)이 성인이 된 후에 빈곤층에 편입됐다고 답했다.
실직을 했다는 응답자 가운데 신불층은 잦은 빚독촉으로 인한 애로 때문에 그만둔 경우가 76.3%로 대다수였다. 반면 일반층은 직장이 도산하거나
휴·폐업으로 실직했다는 사람이 74.3%로 대조를 이뤘다.
문화생활면에서도 양측은 차이가 났다.
신불층 42.1%는 신문을 구독하고 있고 50.4%가 최근 1년 사이 공연관람을 한 적 있다고 답했다. 일반층은 신문구독 32.5%,
공연관람 36.8%에 불과했다. 인터넷 이용률도 76%와 51.6%로 격차를 보였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이상승 간사는 “신용불량자 쪽이 공연관람이나 인터넷 이용률이 높은 것은 실질소득이 떨어졌지만 소비수준을 급격히 낮추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더 많은 인터넷 이용과 신문구독을 통해 구직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자 하는 빈곤탈출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신불층, 제도적 도움주면 빚 갚는다
신불층은 극심한 경제적 압박 때문에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78%가 신경쇠약과 우울증 발병을 염려했다.
자살이나 가출, 밀입국 등 현실 도피적 방법을 모색한 경우도 매우 많았다. 61.7%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으며 28.7%가 가출을,
13.9%가 밀입국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범죄를 통해 돈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장기매매 12.7%, 사기·절도·매매춘 7.8%, 불특정인에 대한 가해 6%,
강도·납치·유괴가 1.74%였다.
이에 따라 연구소 이상승 간사는 “신용불량자를 위한 특별한 심리치료프로그램과 자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통상적인 예상과는 달리 신불층은 일반층보다 근로 의지가 더 높았다. 무려 77.1%가 연장근로에 긍정적이었다. 수준을 낮춰서라도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취업 의지를 내보인 사람도 73.9%나 됐다. 일반층은 각각의 항목에서 55%, 62.8%로 낮았다.
또 신불층은 83.4%가 이자율을 낮추고 장기대출을 해주면 부채를 갚아나갈 수 있으며 69.6%가 5년 내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희망적으로 전망했다. 중산층 진입에 대해 일반층은 57.9%가 5년 내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신용불량으로 인한 빈곤은 정부 정책 실패에 기인한 면이 크다. 단기적 경기부양을 위한 신용카드정책은 결국 수많은 빈곤층을 양산했고, 카드사들조차도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은 격이 됐다. 책임을 져야 할 정부는 카드사 회생을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개인회생을 위한 대책에는 소홀하다.
이 간사는 “신용불량자들이 일하려는 의지가 있고 조금만 도와주면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면서 사회적 관심과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