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가는 고위공직자 상당부분 의혹 아닌 사실일 것
지난 2월25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고위공직자 재산변동사항 공개이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헌재 전 부총리가 사퇴에 이르기까지 그 중심에 서서 부동산 투기 의혹 해소와 투기 척결을 위한 단호하고 적극적 조치를 요구해 왔다. 고위공직자 비리와 투기 척결에 앞장서 온 경실련의 윤순철 정책실장을 통해 현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들어본다.
경실련에서 부동산 투기의혹과 관련 이헌재 전 부총리에 대한 사퇴를 촉구해 왔고, 결국 그 뜻을 관철시켰는데.
“이 전 부총리는 참여정부의 경제수장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진 공직자인데, 부동산 의혹이 언론을 통해 사실로 밝혀지고 있어 더 충격이며, 이미 국민들에게 그의 경제정책이 신뢰성을 잃었기 때문에 사퇴는 당연한 결과였다. 처음부터 사태를 키울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고위공직자들이 임명될 때마다 재산 형성과정에서 투기의혹이 제기돼 오지 않았나. 때문에 작년 임명때부터 준비해 온 사항인데 이번 공직자 재산변동 공개와 관련해 이번 사태가 불거져 나온 것이다”
몇몇 고위공직자에 대한 부동산 투기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로 준비하고 있는 계획이 있나.
“누구라도 공직자 중 투명하지 못한 거래로 재산을 불렸다면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이 전 부총리 문제에만 매달려왔다. 하지만 고위공직자 부동산 투기와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전면적으로 싸워 나갈 것이다. 김세호 건교부 차관과 김영일 헌법재판관 등 몇몇 공직자들도 의혹을 사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미 두 군데서는 해명자료를 받긴 했으나, 그 근거가 불분명하다. 봐야 알겠지만 상당부분 의혹이 아닌 사실로 확인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 본다”
사실상 투기거래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맞다.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만연되는 것이다. 현행 공직자윤리법도 껍데기법에 불과해 실상 공직자들의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검증이 불가능하다. 현재 공직자 재산변동 공개에서 직계 존비속은 고지를 거부할 수 있게 돼 있다. 즉, 본인과 배우자만 공개하게 돼 있고 자녀는 공개를 거부할 수 있어 얼마든지 자녀들을 통해 재산을 증여할 수 있다. 이 전 부총리의 경우도 2000년 이후부터 아들과 딸의 재산공개를 안하고 있다. 또한 심사과정에서도 사실상 실질 심사 아닌 서류심사에 불과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위공직자의 재산증식을 ‘재테크’로 볼 것이냐, ‘투기’로 볼 것이냐 라는 기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재산을 보통 사람들보다 쉽고 빠르게 불릴 수 있는 건 그들이 직접 정책수립을 하거나 최소한 유리하게 정책을 수립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급 내부 정보 또는 수년 앞으로의 계획까지 알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공직자라면 깨끗한 도덕성을 위해서라도 재산이 많아지면 알아서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만일 의혹을 받는다면 스스로 책임지고 적극 해명하면 될 것이다”
매번 불거지는 고위공직자 투기 비리의 문제는 무엇 때문이라고 보는가.
“공직자 비리는 89년 경실련 초창기부터 미션 중 하나였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특히 고위공직자 임명때부터 특히 부동산 투기 의혹은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다. 그만큼 불법, 편법을 이용한 재산증식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공직자가 이런 식으로 재산을 불리는 걸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런 안이한 판단에서 고위 공직자 부동산 비리가 만연해진 것이다”
대안이 있다면.
“백지신탁제도와 공직자윤리법을 손질해서라도 법을 보완해야 한다. 고위공직자 재산형성 에 대한 변동사항은 현행 1년에 한 번을 상시체제로 운영하고 변동있을 때마다 본인이 직접 소명자료를 밝히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로 옷 벗은 장관들
확실히 ‘높은 자리’와 ‘부동산 투기’와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고위공직자 임명때 ‘부동산 투기’는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다. 권력자의 힘을 이용해 편법, 불법으로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투기를 하는 등 재산을 늘려 낙마하는 정치인, 고위공직자가 비일비재하다.
1993년 처음 공직자들의 재산이 공개됐을 때는 당시 국회의장을 비롯, 수많은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이 불투명한 재산 증식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짐을 쌌다.
가장 최근엔 이기준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월 ‘부동산 실명제 위반’으로 취임 57시간 만에 중도 하차했다. 장남의 병역기피 의혹 및 국적 문제 등으로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던 터에 결정적으로 자신이 소유한 수원 요지의 땅에 지은 신축건물을 장남 명의로 등기했고 그 과정에서 증여세를 포탈하는 등의 의혹이 불거지면서 낙마했다.
도덕성을 표방한 국민의 정부 시절, 주양자 전 복지부 장관은 일가족이 16차례에 걸쳐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이 드러나면서 장관직을 사임했다. 안정남 전 건교부 장관도 국세청 재직 시절 땅 투기 사실이 드러나 중도 하차했다.
특히 2002년 장상, 장대환 전 국무총리 서리의 부동산 투기의혹이 제기되면서 무려 두 달동안 국무총리 자리가 공석이 된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장상 총리 지명자는 서울 잠원동, 반포동, 목동 아파트 등 위장전입 등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됐고 장대환 지명자는 부동산 세금 미납 등에 대해 일부 시인하기도 했다.
DJP연합 당시 2000년 1월 김종필 총리 후임에 오른 박태준 전 총리는 명의신탁한 건물을 재산신고에서 누락시켜 4개월여 만에 낙마했다.
문민정부 시절은 한 술 더 뜬다. 김상철 전 서울시장은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정의로운 행정을 펼치겠다”고 다짐했지만, 취임 7일 만에 자신의 저택이 그린벨트를 무단 훼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역대 서울 시장 가운데 최단명 재임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 시절, 박양실 전 복지부 장관(현 복지부 장관)은 아들, 딸을 위장전입시켜 절대농지를 사들여 놓고 증여세를 물지 않는 등의 의혹이 제기됐고, 허재영 전 건교부 장관도 국토개발원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개발정보를 이용해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단 며칠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홍경희 기자 mete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