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시대는 끝났다. 대중문화의 오래된 성 역할론, 이를테면 ‘백마탄 왕자는 저돌적으로 구애한다’ ‘청순한 여자는 구원 혹은 동정 받는다’ ‘멜로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은 능력 있고 여자 주인공은 착하다’ 등의 지루한 고정관념이 그 시효를 다해가고 있다. 요즘 영화 드라마 가요 광고에서 여자들은 남자의 뒤통수를 치고 호탕하게 웃는 반면, 남자 캐릭터들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수줍어한다. 남자다움과 여성다움의 환상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와장창’ 소리가 들릴 지경으로 요란하게.
고전적 여성상 뒤엎는 김삼순
대중문화는 집단 감수성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MBC의 인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종영 후에도 쉽사리 열기가 꺼지지 않는 것은 무수한 사회적 담론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구세대의 가치관과 드라마의 질서를 동시에 무너뜨리며 사랑과 멜로드라마, 성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그야말로 시대적 코드의 집합체였던 셈이다.
그 중에서 남녀 캐릭터들의 성 역할 반란은 시청자들에게 결정적 해방감을 줬다. 시청률 50%, 국민 2명 중 1명이라는 놀라운 숫자가 김삼순(김선아)에 열광했던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녀는 단지 뚱뚱하고 평범한 ‘보통 여성’의 개념을 넘어선다. 멱살 움켜지고 욕해대는 것은 다반사며, 술 먹고 길에 웅크리고 앉아 오줌을 누는 추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키스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덤비는 건 약과. ‘굶었다’는 원초적 대사에 ‘콘돔 사 오라’며 상대 남자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침대 위에서 삼순의 모습 등은 자기 성 역할의 판타지를 스스로 깨고 성장한 30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전통적인 여성상에 근접해 있는 인물은 조연인 희진(려원)이다. 갸날프고 예쁘고 잘 웃고 센스 있고 착한 그녀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상. 삼순이가 희진에게 ‘남자가 별거냐’며 가르치는 장면은 편협한 성의 이분법을 고수하는 구세대들을 향한 설득 같다.
반면, 뽀얀 피부에 화려한 패션을 자랑하는 남자 인물들은 소극적이고 부드럽다. 삼순이가 당당하고 저돌적인데 비해, 진헌(현빈)은 치졸하고 자기감정 표현에도 직설적이지 않다. 희진에게 소곤소곤 말하고 다정하게 챙겨주는 헨리(다니엘 헤)는 70년대 영상물의 여자 주인공들처럼 지고지순한 순정을 보여준다.
내 안에 ‘양성’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드러난 이 같은 성의 역전 현상은 최근 문화 전반을 거세게 강타하는 트렌드다. 남자 꽃남방의 유행 중에도 영화 ‘실미도’ 같은 마초주의가 부활했고,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일을 사랑하고 결혼을 거부하는 ‘남자 같은’ 사만다(킴 캐트럴)에 경악하는 반응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런 정서는 ‘촌스러운’ 과거가 됐다. 지금은 한국형 메트로 섹슈얼과 콘트라 섹슈얼 코드를 대중문화에서 풍부하게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반응도 선망 쪽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의 언니(이아현)는 과히 한국판 사만다라 할만 하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이영애)가 옷을 벗자 예쁘장한 연하남은 침대에 눈을 질끈 감고 누우며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말하고, 보아는 ‘내 모습 그대로 당당하고 싶어 그늘에 갇혀 사는 여자를 기대하지마 섹시한 차분한 영원히 한 남자만 아는 따분함 그건 바로 착각’이라고 노래한다.
투싼 CF에서 커리어우먼 여주인공(유키)은 ‘강한 여자는 여린 남자에게 끌린다’ ‘가끔 남의 사랑이 더 커 보인다’ 등의 도발을 서슴지 않고, ‘더 페이스 샵’에서 권상우는 머리에 화관을 쓰고 ‘여신’처럼 ‘청순한’ 미소를 짓는다. 개그프로그램 ‘웃찾사’에서조차 ‘미소천사’ ‘눈빛왕자’ 등의 별명을 가진 남자들이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는(‘보이스포맨’) 반면, 여자들은 가죽옷을 입고 발차기를 하며 임무 수행(‘미녀삼총사’)을 한다.
여성적 취향의 남성, 남성적 취향의 여성이라는 신세대 감수성을 가장 확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케이블 TV 온스타일의 ‘싱글즈 인 서울’이다. 도시의 싱글 남녀에 대한 이 프로그램의 ‘시즌 2’와 ‘시즌 3’의 제목은 ‘메트로 섹슈얼’과 ‘콘트라 섹슈얼’. 이 보다 더 직설적일 수는 없다.
현실적 캐릭터로 진화
물론 터프걸과 순진남의 구도가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다. ‘엽기적인 그녀’ ‘그녀를 믿지 마세요’ ‘조폭 마누라’ ‘싱글즈’ 등의 영화에서 실현된 바 있는 남녀 캐릭터의 ‘거꾸로 배치’는 지속적인 유행 아이콘이다.
하지만 최근에 나타나는 ‘성의 혁명’은 미세한 진보를 보여줌으로써 의미가 사뭇 다르다. 이전의 작품들이 과장된 성 역할 바꾸기, 혹은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오기 등으로 통속적인 전복에 그쳤다면 최근 캐릭터들은 보다 섬세하고 현실적인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요즘 성의 역전은 성 정체성 자체를 거세하거나 통째로 뒤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반대성’에 대한 수용에 가깝다. 때문에 진보한 대중문화의 ‘예쁜 남자’나 ‘강한 여자’는 특별한 직업을 가졌거나, 남다른 선택을 하는 ‘기인’이 아닌 보다 일상적 보편적 인물로 묘사된다. 리트머스 시험지는 집단 감수성이 메트로 섹슈얼과 콘트라 섹슈얼을 생생한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성의 고정관념 파괴는 대중문화 전반의 ‘20세기적 신화’의 무너짐과 관련이 있지만, 무엇보다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민감하게 반영된 결과다. 가부장제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가족보다 자아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됐다. 자아에 눈뜬 개개인은 성의 사회적 역할보다는 내면의 기호에 더 충실하게 된 것. 힘이 관건이던 과거와는 달리 교감이 더 비중있는 사회적 요건이 되자 여성적인 남성이 경쟁력을 얻게 됐다는 주장도 있다. 반대로 독립 개체가 된 여성은 경제력과 생활력 등 강인함을 덕목으로 수용했다.
또 다른 상업주의인가
하지만 성의 이분법에 도전하는 대중문화의 이 같은 시도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또 다른 상업주의일 뿐이라는 논리다. 메트로 섹슈얼족의 유행은 가부장제의 파괴보다 외모지상주의에서 비롯된 감이 더 크다는 비판도 많다. 꽃미남이나 패셔너블한 남성이 메트로 섹슈얼로 대표되지만 여성적 감수성을 이해하고 성 역할에 대한 진보적 의식을 가진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이용포 씨는 “대중문화에서 성의 역전은 여성 소비자를 의식해 만들어진 유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지적했다. 조신 우아 청순 부드러움과 상냥함 등으로 대변되던 여성성과 우직 저돌 공격 믿음직함과 강함의 이미지로 구축돼 온 남성성의 고정관념은 사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이미지기도 하다. 이씨는 “그래서인지 여성의 남성성 흡수는 긍정적으로 묘사하지만, 남성의 여성성 흡수는 제한적인 경향이 있다. 강한 여성도 예쁜 남자도 모두 여자들이 더 선호하는 이상이다”고 말했다.
여성 캐릭터가 현실화되고 점차 더 파격적인 양상을 띄는 데 비해 남성 캐릭터가 판타지를 배회하는 것은 이 같은 상황과 관련 있다. 꽃미남 신드롬이 은폐된 가부장제의 권력이라는 시큰둥한 반응도 그래서 무리는 아니다. 겉만 예쁜 마초 남성이 사는 세상에서 여성도 진짜 강해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강한 여성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여성과 소통하는 남성이 많아지는 것 또한 당연하니 비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시류는 이렇다. 여자 연기자는 화장을 지워서 뜨고, 남자 연예인은 곱게 화장을 해야 스타가 된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