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유럽 재정위기가 글로벌 자동차시장 판매둔화로 옮아 붙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현대·기아차는 25일 해외 법인장 회의에서 정 회장이 이 같이 강력히 주문하고 하반기 글로벌 생산 판매 전략을 집중 점검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회의는 정몽구 회장의 지시로 예정보다 한 달 앞당겨 열렸다. 유럽재정위기가 장기화 할 조짐을 보이자 이를 미리 막고 시장별 종합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정 회장은 회의에서 "유럽재정위기 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전에 위기 대응을 철저히 해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고 밝히고 "지금까지는 잘해왔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 때 어슈어런스 등 창의적 마케팅으로 위기를 극복했듯이 이번 유럽위기도 선제적 대응을 통해 현대·기아차가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유럽 재정위기가 다른 지역으로 전이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해외 시장별 상황변화를 감안한 차별화된 대응방안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또 "어려울 때일수록 고객과 품질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유연하면서도 일관된 시장 전략을 추진한다면 충분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 회장은 이달 초 유럽 시장 대응책 모색을 위해 현지에 현대·기아차 경영진을 급파했다.
정 회장은 현대·기아차 경영진에게 "유럽위기는 유럽에서 차단하라"고 강조하고 "직접 유럽 현장을 방문해 시장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이형근 기아차 부회장이 각각 각사 판매 및 생산법인을 방문해 대응방안을 강구하는 등 유럽위기 진화에 나섰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 유럽 판매법인에서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각국 판매법인장들과 함께 유럽 상황을 숙의하고 향후 대책을 집중 논의했다.
현대차가 올 초 대표적 유럽형 모델인 신형 i30를 선보인 데 이어 하반기 중 i20 개조차, 신형 싼타페 등 전략차종을 잇달아 출시할 계획인 점을 감안해 위기 속에서도 판매를 극대화할 수 있는 창의적 마케팅 전략을 모색했다.
정 부회장은 또 유럽 생산거점인 현대차 체코공장을 찾아 신형 i30의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생산품질을 집중 점검했다.
이형근 부회장도 유럽 판매법인과 기아차 슬로바키아공장을 차례로 방문했다.
이 부회장은 유럽 판매법인에서 현지 법인장들과 함께 판매 확대 및 위기 돌파 방안을 논의한 후 슬로바키아공장을 찾아 올 3월부터 가동에 들어간 유럽 전략차종 씨드의 생산라인을 직접 살폈다.
정 회장은 지난해 9월과 올해 3월 경제위기의 진원지인 유럽을 연이어 방문해 유럽 생산, 판매, 마케팅 전략을 집중점검하고 위기에 적극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현대·기아차는 독일, 프랑스 등 주요지역 직영체제 구축을 통해 지역 밀착마케팅을 펼치고 고객만족 프로그램을 강화해 유럽자동차시장 부진 속에서도 판매가 늘고 있다.
지난 5월까지 유럽 자동차판매는 564만1371대를 기록해 지난해(608만4990대)보다 7.3% 감소했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5월까지 32만7243대를 판매해 전년동기(28만2917대)대비 15.7% 증가했다. 점유율도 5.8%를 기록해 올해 처음으로 6%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글로벌시장에서도 미국, 중국 등 주요시장에서 호조를 보이며 296만9928대를 판매, 전년 262만2843대보다 13.8% 증가했다.
정 회장이 현대·기아차의 선전에도 해외 법인장들을 긴급 소집한 것은 유럽 위기로 인해 다른 지역까지 판매 위축이 확산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과 유럽자동차시장 수요가 급락했을 때 현대·기아차는 중국, 러시아, 인도 등 신흥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며 위기를 돌파했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가 장기화되면 유럽 자동차판매가 두 자릿수 이상 감소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시장도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또 금융위기 때는 각국 정부가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산업연관효과가 큰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해 폐차지원제도 등 수요 확대 정책들을 펼쳤지만 이번에는 재원 부족으로 인해 가시적인 대책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정 회장의 이번 지시는 지금까지의 판매증가에 안주하지 말고 품질 및 브랜드 등 내실 강화와 고객 만족 극대화를 통해 위기상황에 더욱 철저히 대비하라는 의미"라며 "그동안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글로벌 자동차시장 전망이 불투명해 향후 경영성과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