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일본이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온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의 공습'이 시작됐다.
국내 주축인 LG화학은 불과 5년 만에 전기차 배터리 매출을 10배(2009년 매출 600억원, 지난해 6000억원)나 성장시켰으며, 삼성SDI는 3년도 안 돼 배터리 매출을 '제로'에서 1000억원 규모로 키웠다. 박상진 삼성SDI 사장은 "2015년부터 자동차 배터리 사업에서 조 단위 매출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 같은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의 상승세는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도 확인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B3에 따르면 2009년 xEV(HEV, PHEV, EV)용 배터리 시장에서 AESC(닛산과 NEC 합작사), PEVE(토요타와 파나소닉 합작사), LEJ(미쓰비시와 GS유아사 합작사) 등 일본 업체들의 합산 점유율은 70.4%인 반면, LG화학과 삼성SDI 등 국내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은 25.9%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B3 추정치) 국내 업체들은 시장 점유율 41.3%를 기록, 51.1%의 점유율을 기록한 일본 업체를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특히 B3는 올해 국내 업체의 점유율이 49.5%를 기록, 일본 업체(48.9%)를 앞지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래의 시장으로 손꼽히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은 어떻게 역전 드라마를 써내려갈 수 있었나.
승부수는 품목 선택. 일본 업체들이 '안정성'을 이유로 기존 니켈수소전지에 주력하는 동안 국내 업체들은 앞선 시장 예측을 바탕으로 리튬이온전지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을 진행, 후발주자로서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에는 니켈수소전지와 리튬이온전지 등이 사용된다. 니켈수소전지는 리튬이온전지보다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리튬이온전지는 물과 닿으면 폭발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리튬이온전지는 니켈수소전지보다 에너지 밀도, 성능, 출력이 우수하다. 대기 상태에서 배터리가 방전되는 속도도 느리다.
LG화학은 지난 2000년부터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와 북미시장 개척을 위해 미국에 연구법인인 LGCPI(LG Chem Power Inc.)를 설립하는 등 본격적인 연구개발 활동에 들어갔다.
LG화학은 고용량 배터리 셀을 개발해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늘리고, 내구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전기차에서 5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의 원가를 낮추는 일에 집중한 결과, GM과 르노, 포드, 장안기차 등 전 세계 총 20여 곳의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과 공급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삼성SDI의 경우 2008년 9월 세계 자동차 전장업계 1위 기업인 독일의 보쉬와 합작사인 SB리모티브를 설립했다. 2010년 11월 삼성SDI 울산사업장에서 SB리모티브의 전기차용 전지 생산라인의 준공식을 갖고, 전기차용 배터리의 대량 양산 체제에 돌입했다. 삼성SDI는 2012년 9월 SB리모티브의 지분을 전량 인수하면서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 부문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면서 매출을 확대하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니켈수소전지보다 성능이 좋은 리튬이온전지가 전기차 배터리의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며 "일본 업체들은 니켈수소전지에 투자를 많이 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리튬이온전지 생산을 늘리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본 전기차 배터리 업체가 자국의 완성차 업체와 합작사를 이루고 있다는 점도 국내 업체에 이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 2위인 AESC(닛산과 NEC 합작사), 5위의 PEVE(토요타와 파나소닉 합작사), 7위 LEJ(미쓰비시와 GS유아사 합작사)가 모두 합작사 형태다. 3위를 기록하고 있는 파나소닉은 유일하게 합작사가 아닌 형태로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일본 전기차 배터리 업체가 토요타, 닛산 등 자국 완성차 업체와 합작사를 만들어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면, 자국 이외에 유럽이나 미국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AESC는 닛산과 NEC의 합작 형태인데, NEC가 제작한 전기차 배터리를 닛산이 아닌 포드나 GM에 공급하는 것을 닛산이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완성차 업체의 경쟁력 저하와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한 LG화학과 4위인 삼성SDI 등 국내 업체들은 합작사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미국과 유럽, 중국 등에 있는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시장 1위를 기록하고 있는 LG화학은 미국의 GM, 포드, 유럽의 포드, 볼보, 중국의 상해기차, 현대·기아차 등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삼성SDI는 BMW, 크라이슬러 등이 주요 고객이다.
탄소배출 규제 강화 추세도 국내 업체에 탄력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은 오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지난 2005년 대비 30% 감축하는 지구온난화 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유럽연합(EU)도 오는 2020년부터 EU의 모든 신차에 대한 탄소배출 규제를 강화하는 타협안에 합의했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신차의 배출가스량을 1km당 95g으로 줄이는 것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선진국 완성차 업체의 가솔린, 디젤 기술이 뛰어나지만, 강화되는 탄소배출량 규제 추세에 맞추기 위해서는 전기차 배터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은 추세에 힘입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커지고 있고, 합작사 형태를 띤 일본 업체에 비해 국내 업체들이 수혜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B3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지난해 32억6000만 달러(3조3000억원)에서 2020년 182억4000만 달러(18조4000억원)로 5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