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기둥은 민요, 아리랑은 ‘민요의 핵’
북한 아리랑의 실상(1) - 민요 아리랑
아리랑은 남북이 유일하게 공동으로 인정하는 노래이며, 한민족의 정서를 오롯이 담고 있는 그릇이다. 비록 국토는 분단되었지만, 아리랑이 있기에 남북이 정서적으로는 단일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의 아리랑 축전이 월드컵 대회를 희석시키려는 ‘맞불작전’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리랑은 남북 공감대 형성의 문화적 매개로 우선 인식되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본지는 북한 아리랑에 대해 상당한 연구 성과를 가지고 있는,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의 글을 통해 북한 아리랑의 실상을 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북한에서는 의도적인 변조가 없는 메나리 권역의 강원도 아리랑과 체제 선전적인 메시지를 담아 만들어진 아리랑이 동시에 불려지고 있다. 이번 호는 전자를, 다음 호에 후자를 게재하기로 한다. <편집자주> |
직지사 방장 전 관응 스님은 “아리랑은 한민족의 眞言(진언)”이라고 했고 민족시인 고 은은 “아리랑은 고난의 꽃으로 한국인의 만다라”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구한말 한국에 온 미국인 선교사 H·B헐버트는 “아리랑은 조선인에게 쌀과 같다.”라고 하기도 했다.
모두 아리랑에 대한 지극한 예찬으로서 민족사와 함께 한 ‘역사의 노래’임과 시대와 지역과 사상을 초월한 ‘민족의 노래’임을 말한 것이다.
실제 남과 북은 물론 해외 128개국 교민사회 어디에서나 불려지고 있고, “아버지, 어머니” 조차도 우리말로 못하는 교포 3세들까지도 아리랑만은
우리말로 부르는 유일한 노래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리랑을 말할 때 “민족의 노래” 또는 그냥 “우리들의 노래”라고 말한다.
또한 음악적인 갈래로는 50여 종, 노랫말 수로는 6천여 수, 분포지역으로는 우리 나라는 물론 128개국 전 교포사회에 퍼져 있다. 이것이
우리 아리랑의 총체적인 모습이다.
하나의 노래가 이렇게 많은 종류와 노랫말 수를 갖고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음은 놀랍고 신비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그것이 문집이나
족보나 향토지 같은 문헌에 단 한 줄로도 기록되지 않은, 그래서 순전히 할머니와 어머니의 가슴과 입으로만 전해져 온 것이지 않는가.
북한에도
아리랑이 있다
“북한에도 아리랑이 있다” 이 말은 논리상으로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마치 북한에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는 표현이거나 사라졌던 것이
다시 복원되었다는 식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단지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 말이 통용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분단
57년, 한국전쟁 52주년을 맞는 세월 동안에도 북한의 아리랑을 접할 수 없어서 이었다. 그래서 북한의 아리랑을 말할 때는 의외라는 식이거나
비감 어린 표현을 쓰게 되는 것이다.
해외 교민들의 아리랑 상황을 말하고, 심지어는 외국인들이 지어 부른 낯선 아리랑까지도 말하면서 정작은 우리의 반쪽 북한의 아리랑을 말하고
부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오는 4월말부터 6월 말 까지 개최키로 하자 국내외에서 의외의 자료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민요로서는 경상도아리랑, 영천아리랑, 랭상모판큰애기 아리랑이고, 가요로는 통일경축아리랑과 강성부흥아리랑이다.
앞의 세 가지는 메나리 권역의 강원도 노래이긴 하지만 분명히 북녘에서만 불려지는 것들이고 창법상의 차이가 있을 뿐, 노랫말이나 선율에서
의도적으로 변조한 흔적은 찾을 수가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 창법상의 차이에 대해서는 오히려 우리 노래의 또 다양성으로 이해한다면 매우
의미 있는 것이지 않을 수없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이 해외 교민들이 부르는 아리랑이 선율과 노랫말이 낯설고 다르다고 해도 그것을
아리랑의 한 가지로 보지 않을 수는 없듯이 이 북한 아리랑도 그렇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의 두 가지는 일종의 혁명가요이기도하다. 북한의 가요실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아 살펴보기로 한다.
민요
아리랑
‘북한아리랑’이라고 할 때는 북한에서만 불려지는 것만을 말하고, ‘북한의 아리랑’이라고 말할 때는 현재 북한에서, 북한식 창법과 북한식
노랫말화 한 모든 아리랑을 말하게 된다. 말하자면 전자는 강성부흥아리랑 같은 경우이고 후자는 노랫말 일부가 바뀌고 다른 창법으로 부르는
진도아리랑과 같은 예이다. 이번에는 후자만을 대상으로 그 실상을 살피기로 한다.
1) 영천아리랑
선율면에서는 강원도아리랑을 편곡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원도아리랑의 5박자 구조와 같고, 양성발성(서양식 창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떠는
풍이 전통적인 떨림법과는 다르게 잘게 떤다. 곡은 활발하고 힘이 넘치는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구성음은 La, Do, Re, Mi,
Sol 5음계이며 C 조(調)로 되어 있다.
아주까리 동배야 더많이 열려라 / 산골집 큰애기 신바람난다 / 아라린가 쓰라린가 영천인가 / 아리랑고개로
날넘겨주오 / 멀구야 다래야 더많이 열려라 / 산골집 큰애기 신바람난다 / 아라린가 쓰라린가 영천인가 / 아리랑고개로 날넘겨주오 -하략-
2) 경상도아리랑
이선법은 정선아라리와 거의 같고, 창법은 전통적인 메나리 창법을 쓰고 있다. 그러나 선율 진행 중 가락을 길게 늘어뜨려 푸는 듯 하다가
A-Tempo(본디빠르기)로 진행하는 점에서 매력적이며, 경쾌하고 구수한 맛이 있다.
장단은 5박자이며 3박 + 2박의 진행 형식을 갖고 있고, 구성음은 Mi, Sol, LA, Do, Re 5음계에 A minor로 되어 있다.
북한 창법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노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어절시고 날넘겨주소 / 울넘어 담넘어 님숨겨두고 / 호박잎만
난들난들 날 속였네 / 만경창파에 떠가는 배야 - 하략 -
3) 랭상모판큰애기 아리랑
선율은 경상도 민요인 ‘울산아가씨’와 거의 같고, 리듬은 3분박 3박자로 되어 있다. 서양식 창법으로 서정적이며 경쾌하다. 구성음은 Mi,
Sol, La, Do, Re 5음계 구조이며 f minor로 되어 있다.
아라린가 쓰라린가 염려를 마오 / 큰애기 가슴도 노래로 찼소 종다리 꾀꼴새야 울지만마라 / 큰애기
가슴도 노래로 찼소 / 아라린가 쓰라린가 염려를 마오 -하략-
이 노래는 창작 가야금병창곡으로 매우 서정적인 것이다. 랭상은 80년대 북한식 주체농법을 성공시킨후 불려진 노래이다. 3절의 “조합의 큰애기
일못할라”을 제외한 모든 노랫말은 매우 서정적이다.
이상의 세 가지 아리랑은 남한에서는 불려지지 않는 것들로서 주목하게 되는 아리랑 들이다. 이들에서 확인되는 특징은 창법의 특징이 가장 뚜렷이
나타난다. 이 창법은 1960년대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세워진 음악정책으로 “모든 음악은 민요를 기본으로 하고, 밝고 고운 소리로 민중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하고, 그에 의해 노동현장에서 즉시 반응할 수 있는 선동성이 있어야한다” 는 원칙 하에 수립된 음악으로 그 첫 번째 정책이
서도창법을 기본으로한 민성창법과 양성창법이다. 이래야만 가사 전달이 명확하고 듣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자니 전통민요 창법보다는 높은 음계에서
불려지고 서양 벨칸토 창법이긴 하나 마치 1930년대의 축음기 소리를 듣는 듯하다. 그럼에도 다행한 것은 모든음악의 기둥을 민요에 두고
그 중에서도 아리랑을 ‘종자의핵’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가사 수정에서도 체제 선전적인 것은 배제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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