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처음 지휘한 이번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속 개혁'을 택했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은 채찍을 들기보다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한 교체인원을 줄이는 방식으로 충격을 최소했다. 하지만 신상필벌이라는 대원칙과 기업 승계라는 당면과제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삼성전자의 버팀목 역할을 해준 반도체 부문에서는 사장 승진자가 나온 반면 실적 악화를 막지 못한 인터넷·모바일(IM)사업부에서는 3명의 사장이 사실상 퇴진했다.
합병실패라는 과실이 발생한 삼성엔지니어링에서는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의 남편인 김재열 사장을 이동시키는 의미심장한 한 수를 뒀다.
1일 삼성에 따르면 이날 단행된 사장단 인사는 사장 승진 3명, 대표이사 부사장 승진 1명, 이동 7명 등 총 11명에 그쳤다. 사장 승진자는 역대 최소 규모며, 계열사간 이동 역시 예년 평균인 8.6명 보다 적었다.
특히 교체가 점쳐졌던 신종균·윤부근·권호현 등 3대 삼성전자 부문장은 모두 유임됐다.
이 부회장이 '물갈이 인사'로 책임을 묻기보다는 '안정속의 개혁'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사장이 메모리사업부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삼성식 성과주의가 이재용 부회장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할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다.
메모리 반도체 전문가인 전 사장은 반도체 사업이 삼성전자의 추가 실적 악화를 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공을 인정받아 사장 자리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스마트폰 등 모바일 사업부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영업이익 4조원대가 붕괴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왔다. 하지만 반도체 사업부가 뚝심을 발휘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밖에 9년연속 세계1위가 확실시되는 TV사업 부문 김현석 부사장도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 미래전략실은 전영현 사장 승진에 대해 "전 사장은 DRAM개발실장,메모리 전략마케팅팀장 등을 역임한 메모리 개발 전문가로 초격차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데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면서 "전 사장은 이번 승진과 함께 메모리 사업의 절대우위 위상 강화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실적이 주저앉거나 그룹차원의 사업구조 개편에 실패한 계열사에는 강한 경고 메시지가 전달됐다.
삼성전자의 경우 7명의 IM부문 사장 가운데 이돈주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과 김재권 무선사업부 글로벌운영실장, 이철환 무선사업부 개발담당 사장 등 3명이 2선으로 후퇴했다. 홍원표 미디어솔루션센터장도 사실상 부사장급으로 평가되는 글로벌마케팅전략실장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품 계열사 중에서는 삼성전기 최치준 사장이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박상진 삼성SDI 에너지솔루션부문 사장은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으로 옮겼다. 대외업무를 담당하던 강호문 삼성SDI 부회장은 퇴임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실적이 기대에 못미친 김석 삼성증권과 이동휘 삼성BP화학의 대표이사도 교체됐다.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이 제일기획으로 이동한 것을 놓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실적이 신통치 않은 계열사에서 부인인 이서현 사장이 근무하는 회사로 이동시킴으로써 오너 일가를 배려한 차원이라는 분석이 있는 반면 경영기획 총괄 사장인 그에게 삼성중공업과의 합병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특히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합병작업은 향후 그룹 건설부문에 대한 후계구도 정립과 관계된 사안인 만큼 김 사장을 뺀 것은 이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후계구도 재편 과정에서 분류가 다소 애매했던 건설부문을 이재용 부회장 소속으로 두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향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와 금융 계열사를 총괄하고, 이부진 사장은 호텔과 상사무문을, 이서현 사장은 패션과 미디어 부문을 맡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재열 사장의 부인인 이서현 사장은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 사장을 맡고 있으며, 이번에 김 사장이 제일기획으로 이동하면서 부부가 함께 경영하는 형태를 갖추게 됐다.
이에 대해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김재열 사장은 향후 수원삼성블루윙즈, 서울삼성썬더스 등 제일기획 소속 스포츠단 경영에 주력하게 될 예정"이라면서 "특기인 스포츠PR을 살릴 수 있는 브랜드위원회 등에서 활동을 전념하라는 뜻"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