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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국의 언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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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오염된 추악한 언론의 현주소


기자의 펜은 칼보다 강하다 하지만 돈엔 약하다




윤태식게이트는 한국사회의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인을 살해한 살인자가 버젓이 사회를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은 안기부(현 국정원)의
검은 권력이, 하루아침에 화려한 벤처 사업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언론사와의 부적절한 거래가 가능케 했다. 특히 벤처열풍 속에서 소문만
무성하던 벤처와 언론의 유착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지검 특수3부(차동민 부장검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패스21> 주주명부에 올라있는 언론인은 모두
25명이다. 매일경제가 5명으로 가장 많고 SBS 4명(전직포함), KBS MBC 각 3명, 대한매일, 서울경제, 연합뉴스, 조선일보 각
2명, 동아일보와 방송위원회 각 1명씩이다. 이들은 각각 20∼2천9백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기자들은 윤씨로부터 시가의 수십 분의 1밖에 안 되는 싼 액면가로 주식을 산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번에 구속된 SBS 정 아무개
PD처럼 주식 외에 돈까지 수 천만 원 받은 경우가 있고, 벤처 담당 부서 데스크도 여러 명 끼어 있어, 일부 언론사의 경우 개인 차원을
넘어 조직적으로 ‘주식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언론계에서는 이와 관련해 언론인 7∼8명이 사법 처리되는 언론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윤게이트=언론게이트

99년부터 2000년 초까지 벤처 열풍이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었다. 외환위기의 책임지듯 재벌들은 하나둘씩 무너져 갔고, 이에 반해 벤처들은
곤두박질하는 한국경제의 유일한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를 반영하듯 코스닥시장은 연일 상종가를 때렸으며, 주가 올리기에 혈안이 된 벤처 사업가들은
언론에 달라붙었다.

또 기자들이 벤처에 투신하는 일도 적지 않았으면, 이들은 벤처와 언론사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 경제신문사는 한꺼번에 많은 기자들이
이직해 취재에 상당한 타격을 입기도 했다. 돈으로 기사 만들고, 기사가 나가면 주가가 오르니, 당시 벤처와 언론의 ‘돈 놓고 돈 먹기’는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윤태식게이트로 구속된 전 매경기자 이모 씨의 경우 지난 99년 12월 22일자 지난해 10월 24일까지 모두 30건에 이르는 <패스21>
관련기사를 썼으며, 이와 관련해 윤 씨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주식 1천4백주와 현금 1천2백만 원 등 1억9천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SBS 정 전PD의 경우 2000년 1~3월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살인 미스테리, 누가 수지 김을 죽였나’>
프로그램의 방영을 막아주겠다는 대가로 윤 씨로부터 2억여 원 규모의 주식과 현금 등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당시 웬만한 기자들은 거의 다 벤처 기업의 주식에 투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경제지 기자들은 특히 그랬고, 기자라면
누구나 벤처 기업들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일부 벤처 기업들은 기술 개발이나 경영보다 주가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기사 위에 광고

비단 벤처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의 경우 기사를 써달라고 노골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지만 비판기사나 기업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기사들에 대해서는 광고와 교체되도록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 대기업 언론담당자는 술자리에서 “돈 있으면 기사를 올리기도 하고, 나쁜 기사를 빼기도 한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실상 대기업에서
홍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저녁 여섯시 무렵이면 태평로에서 다음날 조간신문을 검색하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마치거나 새로운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회사에 대해 좋지 않은 기사가 나가면 다음 판부터 빼내야 하거나 최소한 서울에는 배포되는 신문에서는 빼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기사를 빼는 조건으로 광고를 넣는다.

얼마전 K은행 노조는 은행행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의견광고를 에 게재키로 했다. 그런데 이미 섭외와 조판이 끝난
상태에서 로부터 갑작스럽게 게재불가 통보를 받았고, 곧 지면을 확보하여 조판까지 마쳤다. 그런데
이 광고가 노조(광고주)에 통보 및 허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게재되지 못 했다. 경위를 확인해 본 결과, K은행장이 직접 OO일보를 방문
고위층을 접촉,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K은행은 요즘 모든 매체에 광고를 싣는 대형광고주이다.


언론, 자본의 도구로 추락

신문사의 수입의 80%가 광고에 의존하고 있으니 이 같은 사태는 비일비재하게 터지고 있다. 또 ‘기획광고’라는 이름으로 광고인지 기사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지면이 늘고, 보도면에도 ‘특집’이라며 광고 같은 기사가 실리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를 눈여겨 본 독자라는 언론사와 광고주의 메커니즘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특집 또는 부동산 특집 등으로 기사가
실리게 되면 그 매체의 앞뒷면에 분명히 기사에 실린 자동차나 아파트광고가 자리잡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언론사는 대형광고주에 대한 비판기사를
쉽사리 게재하지 못하고 있다.

실례로 시사주간지를 즐겨 본 독자라면 전투기광고를 쉽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광고라는 것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주간지를 읽는
독자 중 전투기를 살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주간지에 매주 어김없이 전투기광고가 실리고 있다.

한국의 차세대전투기(FX) 사업은 구매가격만 무려 4조3천억 원에 달할 뿐 아니라, 한국의 차세대 전투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차대한
국책사업이다. 사업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미국의 보잉사, 프랑스의 닷소사 등 세계 4대 방위산업체가 치열한 로비전을 전개중이다.

언론이 당연히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야할 취재대상일 뿐 아니라 독자가 알고 싶어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신문이나 잡지에서 FX사업에 대한 기사는
선정경과만 알릴 뿐, 분석이나 비판기사는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광고는 매주 볼 수 있다.

이렇게 신문이 광고에 좌우되면 당연히 공정보도는 멀어지게 된다. “저녁 8시까지만 확인되면 어떤 기사도 뺄 수 있다”고 한 어떤 재벌그룹
언론 담당자의 말대로 광고주=대자본의 영향력이 신문지면에 미치고, 그들에게 유리한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신문이 자본의 도구가 되면 신뢰는
더욱 떨어지게 된다.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


 


다윗, 골리앗에 싸움을 걸다


언론권력 횡포 참다못한 시민들, 언론인권센터 출범해 견제 나서


진실에
입각한 보도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해야 할 언론이 왜곡과 오보로 오히려 국민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이에 시민들이 언론의 횡포를 두고볼 수 없다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언론인권센터 피해자 구제 나선다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일이 천부의 권리이듯, 말과 글로 인해 사람의 인격이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을 권리 또한 천부의
것입니다.”

1월 31일 언론인권센터 창립대회. 발기인 가운데 한 명인 참교육학부모연대 장은숙 대표가 낭독한 ‘언론인권선언문’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됐다.


언론이라는 무소불위 권력 앞에서 시민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4천5백만 명의 눈과 귀를 향해 오염된 말과 글 보따리를 풀면 보도대상자의
삶은 한마디로 ‘끝장’이다. 우리는 그러한 사례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이번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75명 가운데는 언론보도로 인해 직접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월간조선>에 의해
아동용 통일도서 <나는야 통일 1세대>가 친북·용공도서라고 소개되어 이른바 ‘빨갱이’ 취급받았던 한국외대 이장희 교수, 역시
<월간조선>에 의해 사상검증을 받아야 했던 고려대의 최장집 교수, 대마초를 피웠다는 오보로 인해 가수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조덕배 씨,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으로 회사부도와 가정파탄이 난 양순자 씨 가족 등이 그들이다.

언론인권센터는 앞으로 이러한 언론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언론중재 및 소송 등 피해구제 절차를 상담해 주고, 법률지원단을 구성해 소송을
지원할 예정이다. 또 언론수용자 중심으로 언론관계법 개정 운동과 언론보도피해에 대한 단체간 업무 제휴 및 시민사회 연대활동을 벌여나갈 방침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언론인권센터를 탄생시킨 데는 언론권력의 힘이 컸다. 이장희 교수가 2001년 8월말 <월간조선>의 왜곡보도에
대해 승소판결을 받으면서 언론인권센터 출범에 대해 논의가 시작되었고, <월간조선>의 배상금 1억 5백만원을 종잣돈으로 전액 출연했기
대문이다.


약자를 짓밟은 언론의 권력

언론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보도로 피해를 입은 경우와 악의적인
왜곡보도로 피해를 입은 경우이다.

양순자, 조덕배 씨는 전자에 속하고 이장희, 최장집 교수, 황석영, 임수경 씨는 후자에 속한다.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이나 조덕배 씨의 대마초 흡연 혐의 사건은 조금만 보도에 신중을 기했으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사건이었다. 그러나 특종을
터뜨리려는 마음이 앞섰던 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실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그리고 허위보도로 문제가 확산되자 발빼기에 급급했다.


이날 양순자 씨는 언론의 힘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양 씨에게 그것은 약자를 위한 대변자로서의 위력이 아니라 약자를 짓밟는 권력이었다.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이 터지자 양 씨 등은 각 언론사에 “11톤 차량 열대 분에 물방울 하나 떨어진 만큼이고 자연식품에도 포르말린은 존재한다”며
읍소했으나 언론사들은 들은 체도 안했다. 심지어 살인자 취급하며 협박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양 씨는 “힘 있는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게 서민이다. 언론의 오보는 피해자의 인생을 무참히 짓밟는다”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익
실현하기 위한 색깔론


일부 언론에 의한 ‘빨간색깔 옷입히기’는 기득권유지를 위해 정략적으로 이용되어 온 대표적 수단이다. 그들 언론은 얼토당토않은 트집을 잡아
북한의 앞잡이로 둔갑시키며 남북대결을 조장했다.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이런 행위는 히틀러와 괴벨스의 여론조작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히틀러와 그의 심복 괴벨스는 여론을 조작함으로써 민심을 장악했다. ‘달콤한 유대인’이라는 영화로 유대인에 대해 혐오감을 극대화시키고,
‘의지의 승리’라는 영화로 국민을 집단광기에 빠지게 했다. 또 히틀러는 통신사를 설립, 나치에 유리한 것만을 보도함으로써 국민들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언론의 왜곡보도에 대해 색깔논쟁의 한 가운데 있었던 최장집 교수는 “조선일보가 나를 공격할 때 취했던 극우 냉전반공주의 논리는 ‘A’가
아닌 모든 것을 ‘Z’라고 규정하는 양극화의 논리가 핵심… 이는 냉전반공주의 이념 이외의 다른 이념을 갖는 개인·그룹·부문은 정치과정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배제의 이념이며 민주주의의 원리에 어긋나는 발상… 이들이 말하는 언론자유는 한낱 여론·담론·언론의 독점적 영향력을
통해 사익을 실현하는 자유일 뿐”(한겨레신문 2001년 7월10일)이라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풀뿌리
민중의 작은 힘이 무기


언론인권센터의 창립에 대해 언론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이날 참석했던 문화방송의 김중배 사장은 반가운 한편 씁쓸함을 지우지
못했다. 그는 작년 이맘때쯤만 해도 제야에서 언론정화 운동을 하고 있던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이날은 언론권력의 중심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가해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석했기 때문이다. 그는 “참회의 심정으로 언론개혁운동에 참여할 것”을 약속했으며, “군사독재시절에는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었다. 군사독재가 끝난 지금은 자유를 넘어 방종의 길을 가고 있다. 비록 늦었지만 문화방송 시청자 주권위원회를 만들었다.
방송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이 있다면 명예와 인권, 재산 등에 대해서 피해보상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김학수 한국언론학회장은 “법이야말로 마이너리티, 소수, 약자이기 때문에 구현될 수 없었던 권리를 실천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통로”라며 법조인들의
많은 참여를 반겼다. 덧붙여 그는”언론인권센터의 출범으로 국민피해가 줄어들 길 바라며 신고접수에 의한 처리만이 아니라 찾아 나서서 구제해주는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가도 어쩌지 못한 언론인데 감히(?) 시민들이 나서서 언론을 상대하겠다는 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윗은
세상 사람들의 걱정과 비웃음을 뒤로한 채 멋진 승리를 일궈냈다. 승리의 원동력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감이었고 무기는 조그만 조약돌을
사용한 지혜였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


 


“친일, 친독재 신문, 역사 앞에 단죄한다!”


조선일보 반민족·반통일 행위, 민간법정서 유죄 판결


지난
1월 30일, 우리 역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제껏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밤의 대통령’이라는 훈장(?)까지 달았던 대한민국의
언론사들. 그러한 언론사들 중 자칭 ‘1등 신문’을 자랑하던 ‘조선일보’가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방청객 5백여 명 몰려

지난 달 30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법정에서 조선일보가 유죄판결을 받았다. 조선일보의 죄목은, 창간
이래로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반민족, 반통일, 반민주적’ 보도 행태였다. 비록 이 법정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민간법정이었지만, 우리의 언론
역사상 큰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광복 이후 현재까지 법적·정치적으로 청산되지 못했던 친일 행위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이루어졌음은
물론, 거대 언론사를 상대로 한 반대운동에 모범이 될만한 전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반민족·반통일 행위에 대한 민간법정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작년 10월부터 그 준비작업을 시작했다.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와
통일연대 등, 조선일보의 폐해를 처벌하기 위한 시민사회단체들은 민간법정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소속의
변호사들과 함께 법정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이후 추진위 구성과 법률지원단 회의 등을 통한 민간법정 준비작업들이 이어졌고, 드디어 지난 30일
민간법정이 열리게 되었다. 추진위는 각계각층의 인사 1천여 명으로 구성되었다. 추진위는 구랍 18일 열렸던 민간법정 설명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조선일보가 우리 민족과 역사에 저질렀던 죄악을 생각하면 이 땅에서 이미 사라졌어야 할 신문”이라며 “조선일보의 반민족·반통일 행위에 대한
민간법정을 열어 민족정의와 역사의 이름으로 조선일보를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반(反) 민족·민주·통일로 기소’

30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는 추진위원들을 비롯해 사회각층의 인사들로 구성된 배심원단, 조선일보반대시민단체, 학생, 언론사 기자 등 5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로 행사장이 가득차, 민간법정이 갖는 의의와 관심을 확인시켜 주었다.

재판은 판사진(수석판사 고영구 변호사)의 입장과 함께 시작됐다. 민변의 고영구 변호사는 시종일관 엄숙하고 진지한 진행을 통해, 자칫 가벼운
행사로 흐를 수 있는 민간법정의 분위기를 가다듬었다. 재판장 모습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피고인석에 놓인 조선일보 두 부. 민간법장
헌정 제 8조에는 ‘조선일보나 대리인에게 법정에서 증거를 제출하고 구두 진술할 기회를 보장’했지만, 조선일보 측에서 출두할 리는 만무한
사실이었다. 재판부는 조선일보의 사정에 밝은 자 중에서 국선변호사를 선임하는 형태로 변호인단을 구성해, 최민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
등 3인을 선임했다.

재판은 검사단의 김인회(민변 소속 변호사) 수석검사의 기소장 낭독으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조선일보는 1920년 3월 5일 창간되었다. 1919년의 3·1 독립만세운동 후 일본 제국주의는 이전의 무자비한 무단통치를 변경하여 조선
민중의 독립투쟁의식을 둔화시키고 민족해방투쟁 진영을 분열시키기 위해 문화통치라는 미명 하에 조선일보의 창간을 허용하였던 것이다.”

이어 김 수석검사는 조선일보의 창간 발기인 39명이 친일기업인들의 모임이었던 대정실업친목회 회원들이었던 사실, ‘백의’(白衣) 폐지론 주장
등의 친일행위,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지지 보도, 광주민주화운동 폭동 매도 보도 등 독재정권에 대한 충성 등을 고발했다. 또한 금강산
댐 왜곡보도, 김일성 사망 오보, 그리고 최근의 만경대 파문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진행돼온 반통일적 보도 등에 대해 조선일보를 기소했다.


민족지의 이름으로 친일(親日)

검사단은 조선일보의 반민족 행위에 대해 42건의 신문기사를 증거로 제출했다. 제출된 증거에는 일본 천황과 황후의 노골적 미화와 찬양,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악의적 보도, 일제의 제국주의 전쟁에 조선민중들을 적극 동원한 보도, 노골적인 친일광고의 기재, 미국 일변도의 보도 등이 자세하게
실려 있었다. 조선일보의 반민족 행위에 대한 증인으로 출석한 오마이뉴스 정운현 편집국장은, 일제시대의 친일 지식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덕부소봉에게,
당시 조선일보의 사주였던 계초 방응모가 보낸 신년연하장을 처음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정 편집국장은 조선일보 창간발기인들의 모임이었던 대정실업친목회를
대표적인 친일단체로 규정했다.

“대정실업친목회는 일본인과 조선인 기득권 층의 친목모임으로, 당시 사이토 총독의 문화정치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단체들이다. 대정(大正)이란
말 자체가 일본 천황의 연호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작년에 조선일보에서 특집으로 연재했던 역대 사장열전에는 1, 2, 3대 사장들이 빠져있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조선일보가 이들의 친일 행적이 거론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정 편집국장은 조선일보가 ‘자진’ 폐간한 1940년 이후로 친일의 강도가 더욱 세졌다고 증언했다.

“조선일보는 일제의 물자절약 및 조선어 말살정책에 동조, 자진 폐간한 이후에도 자매지인 <조광(朝光)>을 통해 친일 지식인들의
글을 싣는 등 줄기찬 친일행적을 보였다. 친일의 정도는 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가 가장 심했지만, 민족지라 자처했던 조선일보의
친일행위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특히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이후 조선일보의 친일보도는 절정에 달했다.”


독재정권의 대변자

이어 조선일보의 반민주적 보도에 대한 임종일(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집행위원장) 검사의 기소가 시작되었다. 임 검사는 정식기소에 앞서 근현대사의
반민주 행위를 보여주는 동영상자료를 볼 수 있도록 요청했고, 고영구 재판장을 비롯한 판사진은 논의를 거쳐 이를 허락했다. 스크린에 비친
우리 현대사의 얼룩진 단면들은, 잠시 재판장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일제 강점시기 저질렀던 친일행위와 반민족적 범죄에 대하여 한마디의 사과나 반성 없이 1945년 11월 23일 속간하였다. 조선일보는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분단현실에 편승하여 인권상황과 민주주의 진전 및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소망을 외면한 채 독재정권을 찬양, 미화하였고
한편으로는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민주화운동 인사, 단체, 세력을 비방하여 왔다.”

임 검사는 기소문을 통해 “특히 조선일보는 1969년 독재자 박정희가 3선 개헌과, 유신헌법 및 체제를 옹호했으며, 5·18 민주항쟁을
악의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독재자 전두환을 찬양, 미화했다”고 밝혔다. 증거자료로 제출된 조선일보의 기사 중 1980년 8월 23일 자의 기사,
‘인간 전두환’ 편에는 ‘육사(陸士)의 혼(魂)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 ‘사에 앞서 공… 나보다 국가’,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남에게 주기 좋아하는 성격’, ‘그의 투철한 국가관과 불굴의 의지, 비리를 보고선 잠시도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겐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 등의 보도로 전두환을 찬양, 미화하는데 앞장선 내용이 실려 있었다.


방응모
장남 방재선 씨 사죄


세 번째로 검사로 나선 최규엽 민주노동당 자평위원장은 조선일보의 반통일적 보도행태를 기소했다. 최 검사는 “조선일보의 반통일적 언론행위는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한반도가 화해와 협력의 구도로 바뀌어야 할 시기에도 지속됨으로써 그 폐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의 반통일적 보도 행태는 ▲금강산 댐 건설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 ▲김일성 사망성과 관련한 악의적 보도 ▲성혜림 망명설과 관련한 악의적
보도 ▲항장엽 망명과 관련한 악의적 보도 ▲6·15 남북정상회담 전후의 악의적 보도 ▲남한 정부의 대북화해정책에 대한 악의적 보도 ▲북한의
남북대화 자세에 대한 악의적 보도 ▲남한의 통일운동에 대한 악의적 보도 ▲9·11 테러 이후 북한 위협론을 부추기는 보도 등으로 나뉘어
기소되었다.



조선일보의 반통일적 보도에 대한 증인으로 나선 강정구 교수(동국대 사회학과)는 지난 8·15 통일대축전의 만경대 방명록 파문에 대해 “조선일보를
비롯한 남한의 소위 주류 언론들이 자행한 파시즘적 해석독점권의 전형”이라고 증언했다. 강 교수는 자신이 방명록에 적었던 만경대 정신에 대해
“만경대라는 지역을 거론하기 위해선, 그 지역에 얽힌 시대적 정황들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면서 “만경대는 역사적으로 반외세주의, 조선 소작인
한의 정신, 남북협상 정신, 항일 민족독립 정신, 민족정기 정신, 김일성 신봉주의 등 6가 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근현대사와 북한 전문가인 자신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은 채, 오직 김일성 신봉주의로만 몰고 간 조선일보는 파시즘적 해석독점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울러 이러한 보도 행태는 반통일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했던 사람들 중,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사람은 단연 방재선 씨였다. 조선일보의 전 사장인 방응모의 장남인 재선 씨는
“친조카인 방상훈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에 의해 조선일보의 경영권을 빼앗겼다”며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고영구 재판장은 증인 선서에
앞서 방 씨에게 “피고와 친인척 관계에 있는 증인에게 위증선서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판단으로, 본인이 원한다면 선서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으나, 방 씨는 “아닙니다, 하겠습니다”고 말해 긴장감을 감돌게 했다.

방 씨는 “아버지와 가족들을 고발하는 자리에 서게 돼 매우 참담한 심정”이라며, “추호도 사심에 얽매여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할 말이 없다. 분명한 것은 아버지인 계초 방응모 사장이 친일을 했다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아버지와 현 경영진을 대신해 진심으로
머리숙여 국민들에게 사죄드린다. 과정이야 어쨌든 일본에 굴종한 것은 사실이다.”


조선일보는
유죄


검사단의 기소 및 증인들의 증언, 변호인단의 변론이 모두 끝나자, 고 재판장은 배심원단의 평결을 위해 잠시 휴정했다. 택시기사, 노동자,
학자, 한의사, 기자, 학생, 주부 등 우리사회 각계각층의 인사 33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약 20여분 후 속개된 법정에 다시 들어섰다.
배심원 단장인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조선일보의 반민족, 반민주, 반통일 행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배심원단 만장일치로
‘유죄’를 선고했다.

이어 고 재판장은 배심원단의 평결에 의해 조선일보의 유죄 판결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헌장에 근거하여 설치된 이 법정 배심원단은 피고인 조선일보에 대하여 검사단이 기소한 반민족적 언론행위, 반민주적 언론행위, 반통일적 언론행위
각 부분에 대하여 제출된 증거들에 기초하여 신중히 평의한 결과, 기소 행위사실 모두에 대하여 유죄로 평결한다.”



고 재판장은 이어 “피고인 조선일보가 역사 앞에 참회하고 참다운 민족민주 언론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권고했다.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민간법정. 그러나 일제와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단죄받지 못했던 거대 언론에 역사적 심판을 처음 시도했다는 점은, 우리
언론역사 상 새로운 이정표가 될만한 사건이었다. 5백여 명의 방청객들은 모두 박수로 이날의 ‘유죄’ 판결을 축하했다.

장진원 기자 newsboy@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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