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구속은 국내 재계에서 여성 후손이 수감되는 첫 사례로 남게됐다. 그동안 재벌 가문의 여성 2~3세가 법정에 선 경우는 있어도 구속까지 됐던 경우는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일은 국내 재계 후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오너 일가 한 명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거대 기업이 휘청대고 반기업 정서가 확산되는 상황까지 불러왔다는 점에서 향후 재계 후손들의 행동 반경이 크게 제약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오너 리스크를 안고 있는 기업은 대한항공 뿐만이 아니다. 많은 대기업에 이미 3세는 물론 4세까지 경영에 참여하고 있고, 이들 대부분은 젊은 나이에 임원 타이틀을 달고 경영에 참여하거나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고, 현대차 그룹도 정의선 부회장을 비롯해 정성이 이노션 고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 등 여성 후손들이 고위 임원을 맡고 있다.
LG그룹 구광모 상무, 현대중공업 정기선 상무, GS건설 허윤홍 상무,두산그룹 박서원 오리콤 최고광고책임자, 한화그룹 김동관 한화솔라원 영업실장 등 다른 대기업 오너 3세들도 임원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려면 20년이 넘게 걸리는데 반해 이들은 입사후 평균 3년이면 임원으로 승진해 많게는 수만명의 부하직원을 거느린 경영자 대열에 올랐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는 혹독한 후계수업 거친 준비된 후계자들이다. 주유소에서 주유원으로 직접 손님을 맞은 정유사 오너 후손, 원양어선을 타고 바다에 나간 참치회사 회장의 장남 등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자진해서 해군장교로 입대한 재벌가 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가업을 승계받고, 선대 오너들이 이뤄놓은 성과를 발판삼아 큰 노력없이 기업을 경영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을 제대로 검증하는 시스템이나 견제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기업 이사회는 오너 일가 위주로 구성돼 있고, 사외이사들도 제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주총회 역시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지 않은 구조 탓에 요식행위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대한항공 사례에서 보듯 부당하거나 잘못된 지시가 내려졌을 때 직언하는 조직문화가 형성되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다보니 초고속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에 오른 재계 후손 가운데 잘못된 특권의식에 빠져드는 사례가 종종 나오고 있다. 자신을 기업인이라기 보다는 현대판 귀족이나 상류층으로 인식하는 후손들이 일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조현아 전 부사장의 구속을 계기로 이들이 받아온 특혜에는 상당한 제약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재벌 후손들의 이른바 '갑질'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사법조치와 기업의 위기로까지 이어지는 전례가 생기면서 행동을 조심할 수 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오너와 관련된 일이라면 모든 일에 우선하던 관행을 무작정 고수하기는 힘든 상황이 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 내부에서 오너는 '매직 키워드'나 다름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앞으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오너일가의 적절한 행동이 포함되는 것으로 인식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