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계의 서태지를 기대하세요”
국내 최초 랩개그 준비중인 ‘갈갈이 삼형제’
지난
김장철에는 ‘무’ 파동이 있었다. 가격 폭락에 따른 파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파동의 요인은 KBS2TV ‘개그콘서트’ 중 ‘갈갈이 삼형제’이다.
‘갈갈이’는 개그맨 KBS 공채 13기 박준형(28), 이승환(27)과 15기 정종철(26) 세 멤버가 외화더빙 성우성대 모사를 비롯,
각각의 개인기와 캐릭터를 살린 개그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개그 삼인조이다. ‘무갈기’는 이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지 이미 오래.
갈갈이의 맏형격인 박준형이 토끼처럼 나온 앞니로 무나 각종 과일을 가는 모습은 시청자에게 ‘충격적인’ 웃음을 주었다. ‘무갈기’ 열풍이
전국을 강타한 것이다. 십대들은 경쟁적으로 ‘수련’에 들어갔고, 식품매장에서 무를 들고 ‘갈갈이 제스추어’를 취하는 주부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끝까지 함께 갈 환상의 삼인조
김장철이 지난 후에도 그들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사이버커뮤니티를 만들고, 사진 및 기사 스크랩과 모니터를 자청하는 고정팬의 모임이
우후죽순 생겼다. 무채썰기에서 시작해 수박, 멜론을 갈아 모양을 만드는가 하면, 급기야 사과를 갈아 요요를 완성하기까지 하던 박준형은 이제
더 이상 갈 것이 없다고 한다. “관객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해요. 그래서 강도를 높여가며 가는 대상과 방법을 바꾸어갔죠. 하지만 이제
웬만한 것도 재미있어 하지 않아요” 갈갈이 팀원 모두는 “가는 것 자체가 식상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그들은 봄에 맞춰 산뜻한 개그를 준비했다. 이른바 ‘랩개그’. “비트박스와 랩에 개그, 스크래치, 성대모사 등을 접목시킨 개그콘서트를
겨냥한 코너”라는 것이 멤버들의 설명이다. ‘랩개그’는 팀플레이가 강조되는 것이 특징이다. 종전의 개그가 캐릭터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에는
멤버들의 화음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다. 갈갈이 삼형제 멤버에 16기 개그맨 김기수가 함께 할 계획이다.
“이번 개그의 모델은 서태지입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서태지가 대중문화를 주도하며 변혁을 일으켰듯이, 갈갈이 삼형제도 차세대 개그맨으로서
개그계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주자이기 때문이다. 뭉쳐서 신화를 만들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그들도 셋이 뭉쳐 떴다.
갈갈이 삼형제가 결성된 것은 7개월전 쯤. 막내 정종철은 데뷔 일년차라 큰 무명생활은 없었지만, 박준형과 이승환은 레크레이션 강사와 리포터
등을 전전하며 5년 가까이 무명시절을 보냈다. “서려움도 많았답니다. 그래도 열심히 무명을 견뎠죠” 무명시절에도 최선을 다한 덕분에 현재는
과거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고 있다. 특히 박준형은 리포터로 활동하면서 인지도를 높여놓은 상태였다. 말솜씨도 좋아져 애드립 구사 등에 도움이
되고 있다.
셋이 함께라는 것은 큰 힘이다. “끝까지 함께 하기로 약속했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배신하지 않기로 유치하지만 계약서도 썼지요”라는 박준형의
말에 덧붙여, “우리가 사회성이 워낙 없어서 그래요. 다른 사람들과는 호흡도 안 맞고 개그도 잘 안되요” 정종철은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연이어 “한 사람이 뜨면 업혀서 갈 것이다”는 장난스런 유머가 오가는 등 무대 밖 개그가 끊이지 않았다.
“최고의
개그맨이 아니라, 최장의 개그맨 꿈꾼다”
예상대로 이들은 생활 자체가 개그다. 대부분 시간을 함께 보내기 때문에 따로 회의가 없다. 이승환과 정종철은 아예 같은 집에서 산다. 이승환은
“모여 있다보면 저절로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말한다.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아이템을 찾아내는 것이다. 박준형은 “언젠가는 창작력이 고갈되는
날이 있겠지만, 지금은 저장된 아이템이 많다”고 자신했다.
빠르게 변하는 취향을 좇아 시대적 흐름까지 꿰뚫어야 하는 개그맨은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은 즐겁게 일한다.
1998년부터 대학로에서 ‘배꼽빼리아’라는 제목의 공연도 하고 있다. 방송국 녹화가 있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있는 공연이지만 이 또한
힘들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소극장
무대는 개그맨 박승대가 제작비를 지원해주면서 입성의 계기를 터준 것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무대에 계속 서겠다는 각오를 현실화시켜준 셈이다.
어렵게 닦은 무대인 만큼 애착도 남다르다. “소극장 무대는 발판입니다. 관객은 돈을 내고 보는 사람들인 만큼 냉정합니다. 정확한 판단기준이
되는 것이죠” 따라서 새로운 아이템의 시험무대로 활용도가 크다. “무엇보다도 관객과 직접 대면하는 현장의 즐거움이 빼놓을 수 없는 보람”이라며
무대에 대한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배꼽빼리아’가 입소문으로 관객몰이에 성공한 것은 끊임없는 노력과 활기가 넘치는 공연분위기 덕이다. “보통 어떤 아이템이 생기면 일부만
쓰고, 일부는 나뒀다가 다음에 써먹는 식으로 아끼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지금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무대에 서요. 오늘 다 쏟아
붓고 내일은 또 다시 짜내는 거죠” 바로 이 “현재에 충실하자”는 좌우명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비결이다.
이들의 넘치는 ‘끼’를 보면, 타고난 개그맨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역시 유머감각이 남다른 박준형과 성대모사 개인기가 탁월한 정종철은
초등학교때부터 개그맨이 꿈이었다.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선천적이었던 것이다. 왕자병 캐릭터가 인상적인 이승환은 잘 생긴 얼굴답게 탤런트가
꿈이었다. 그래서인지 개그 스타일도 정극 연기를 많이 연상시킨다.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해 “선굵은 연기를 하고 싶다”며 꿈을 피력하기도
했다.
갈갈이 삼형제가 지향하는 것은 대한민국 최고의 개그맨이 아니다. 그보다도 “가장 오래하는 개그맨”이다. “이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50,
60대에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그들은, 한시간 반 가량의 격렬한 공연 직후에도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 특유의
만족감이 큰 에너지가 되는 듯했다. “늘 새로운 아이템으로 국민 여러분들을 즐겁게 해드리고 싶다”는 갈갈이 삼형제. 그들이 새봄에 펼칠
색다른 개그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