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라 철새들아 다음에 또 올거지”
철원평야에서 있었던 철새와의 이별 나들이
지난달
17일 일요일 오전 8시, 세종문화회관 뒤편 도로는 전세버스로 장사진을 이뤘다. 교외로 빠지려는 사람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버스들이 1차선
도로의 한 개 차선을 완전히 점거하고 있었다. ‘환경운동연합 철새와의 이별나들이’라는 종이가 붙은 버스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긴 줄의
끝트머리에 있었다. 버스 안을 둘러보니 참가자들은 대부분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였다. 인원체크하고, 조금 늦게 도착한 인원이 있어 예정보다
20분 늦은 8시 20분에 출발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흐린 날씨가 일행을 걱정스럽게 하더니, 서울을 지나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넘어갈 무렵 차창엔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봄비를
머금은 대지는 어느덧 해빙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소중한 겨울 손님
버스는 어느새 1차 기착지인 철원 고석정에 도달해 있었다. 철새를 탐방하기 위해서는 민간인통제구역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고석정내 철의삼각전적관에
견학신청을 해야한다. ‘안보견학’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다시금 출발한 버스는 몇 차례 검문소를 지나친 후에야 독수리를 만날 수 있는 토교저수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오늘 첫 번째 행사는 독수리와의 이별인사였다. 저수지에 버스가 멈추자마자 아이들은 일제히 달려나가며 장탄식을 터뜨렸다. “야 독수리다”
“엄마 진짜 독수리야?” “되게 크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역시 아이들이군 독수리 한 마리에 저렇게 좋아하다니”라는
생각으로 발길을 아이들쪽으로 향한 순간,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200여 미터 정도의 저수지 뚝방을 따라 20~30여 마리의 독수리들이
날개를 움츠리고 말뚝처럼 서있었다. 짙은 안개와 흩뿌리는 비 때문인지 독수리들이 마치 저승사자처럼 느껴져 두렵기까지 했다. 왠만한 초등학생보다
커보이는 독수리가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날개폭만해도 3~4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갑자기 몰아치는 바람과 빗방울 때문에
독수리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아쉬운 작별을 해야했다.
버스는 다시 철의삼각전망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흩뿌리던 빗방울은 이내 눈발로 바뀌었다. 눈 덮인 논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두루미나 재두루미
무리를 잠깐씩 멈춰서서 버스 안에서 보기도 했다.
환경운동연합 양은숙 간사는 “시화호, 새만금, 천수만 등 철새도래지마다 철새가 틀려 그 느낌도 다르다”며 “독수리와 두루미, 재두루미 등은
철원이외의 지역에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철원평야에 남겨진 바람
날씨가 맑은 날에는 ‘김일성 고지’, ‘피의 능선’ 등 북녘 땅은 물론 북한병사도 볼 수 있다지만 궂은 날씨 때문에 일행은 불과 5미터
전방도 볼 수 없었다. 철의삼각전망대 밖에는 월정리역이 있다.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에 근접한 경원선의 마지막 역. 원래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역사 바로 맞은 편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간판과 함께 6.25때 폭격으로 부숴진
열차의 잔해가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 채 누워 있어 분단의 아픔을 실감케 했다.
월정리역을 둘러 본 일행이 다다른 곳은 백마고지 인근의 논이었다. 이곳에서 철새 먹이주기행사를 가졌다. 미리 준비해 간 옥수수부대를 차에서
내리자 아이들이 몰려왔다. 양손으로 옥수수를 가져가는 아이, 쓰고있던 모자를 벗어 옥수수를 담는 아이, 옥수수가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양
소중히 들고간 아이들은 저마다의 장소에 살포시 옥수수를 내려놓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주위에서 철새들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의 작은 정성은 논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백마고지와 노동당사 등을 둘러본 후 서울로 향하는 일행은 철원평야에 작은 바람을 남겨 놓았다. “무사히 잘 돌아가서 건강한 알 쑥쑥 낳고,
새끼 잘 키워서 올 겨울에 또 만나자고….”
세계적으로 독수리 (천연기념물243호) 독수리는 |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