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심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중요”
버려진 나무 돌보는 하남 나무고아원, 환경교육장으로 확대 조성될 계획
식목일을 맞아 전국에서 각종 식목행사를 벌일 예정이다. 해마다 4월 5일이면 대량의 나무들이 심어지지만, 한편에서는 각종도로공사와 개발사업
등으로 갈아엎거나 상처를 입은 채 죽어 가는 나무들이 많다. 심기만 하고 내팽개친다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나몰라라하는 부모와 다를 바
없다. 하남 나무고아원은 환경에 대한 이러한 무책임한 세태와는 대조적으로, ‘이 고장에서 자란 나무는 단 한 그루도 버리지 않는다’는 책임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1999년 11월 하남시는 시가지 버즘나무를 이팝나무로 교체하기로 확정했다. 버즘나무가 꽃가루 알레르기로 주민의 불편을 초래한 것이 이유였다.
문제는 기존 버즘나무의 처리였다. 매각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하남국제환경박람회’를 개최하면서 환경에 관심이 깊었던 하남시는 남다른 선택을
했다. 총 6백72그루의 버즘나무를 미사리 선동일대에 옮겨 심은 것이다. 버즘나무의 새 터전은 꽃가루가 한강에 가라앉는 위치였기 때문에
주민들의 건강을 헤치지 않으면서 나무를 살릴 수 있었다.
2000년 4월 당시 버즘나무는 외부에서 사다 심으면 그루 당 약 19만원이었는데, 옮겨 심는데 드는 비용은 20만원이었다. 결국 옮겨
심는 비용이 1만원이나 더 들어 예산 낭비라는 비난도 있었다. 환경이 우선이라는 의지 없이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16종 6천여 그루 나무들의 갖가지 사연
버즘나무 이식은 나무고아원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연이어 위기에 처한 나무를 받아달라는 요청이 전국에서 쇄도했다. 이렇게 해서 받아 심은
나무가 점차 늘어났고, 하남시는 작년 6월에 정식으로 나무고아원을 개원했다. 현재는 5만여평에 은행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 16종
6천여 그루가 갖가지 사연을 안고 자라고 있다.
김천재 팀장이 “부가가치가 높은 나무”라며 자랑한 1백63그루의 소나무는 겉보기에도 역사가 느껴지는 노송이다. 이 나무는 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이던 배알미동 한강변 솔밭에서 왔다. 176번 강변도로를 팔당대교에서 팔당댐까지 연장 개설하면서 베어질 위기에 처했던 것을 시공회사,
감리회사 등과 여러 차례 협상과 회의 끝에 옮겨오게 되었다. 시민들의 소풍 장소였던 만큼, 어릴적 추억이 담긴 나무라는 점도 ‘부가가치’를
높인 요인이다.
‘상처를 치료중인 나무’라는 띠를 두른 은행나무는 서울시 가로수, 중부고속도로 확장공사장 나들목 부근 등 여러 곳에서 왔다. 보기 좋은
나무들은 도심지에 옮겨 심었고, 각종 사고로 성장이 더디거나 상처가 난 나무들이 이 곳으로 왔다. 차에 치여 동강나거나 속살이 흉하게 드러난
나무들은 나무외과병원 의사 등 전문가의 치료와 정성어린 간호를 받아 제 모습을 찾고 있다.
감나무, 자귀나무, 꽃사과 등 13그루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옮겨왔다. 방공포부대가 건물을 헐고 신축하는 과정에서 베어질 처지에 놓인
나무들을 안타깝게 여긴 한 시민이 시청과 구청에 이식을 건의했으나, 거절당하고 결국 나무고아원에 오게 된 것이다.
홍단풍나무는 축사를 짓기 위해 중장비로 밀어버리려는 것을 시청 직원이 발견해서 옮겨 심게 되었다. 이식 초기에는 몸살이 심했지만, 제방너머
한강에서 2단 양수로 물을 끌어 주는 등 심혈을 기울인 끝에 현재는 잘 자라고 있다. 이외에도 하남시의 환경정책에 감명 받아 손수 기른
나무를 기증한 것도 있고, 잘못 심어져 못쓰게 될 나무의 소유자를 설득해 기증 받은 경우도 있다.
예산절감,
녹지공간, 교육장 등 기대효과 높아
나무고아원으로 이식된 나무들이 빠르게 기운을 되찾고 모양을 바로잡는 것은 각별한 정성이 뒤따른다는 증거이다. 김팀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세세한
간호는 물론, 의사의 진단에, ‘한약’까지 먹는 ‘호강’을 나무들은 받고 있다. 나무고아원 한켠에 놓여진 대형박스 몇 개에는 한방비료가
가득하다. 김팀장은 “경동시장에서 한약 찌꺼기를 구해 톱밥을 섞어 한방비료를 만든다”며, “효과가 좋다”고 설명했다.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나무들은 가로수나 공원수로 사용되어 수목구입비 등 예산 절감에 상당부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하남시가
기대하는 효과는 그보다 근본적이다. 나무고아원 부지는 원래 버려진 땅이었다. 이 곳이 환경자원의 재활용 공간이 된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하남시민에게 쾌적한 녹지공간이 됨과 동시에, 국민 교육장으로서 환경의식을 고양시킬 매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하남시는 수로를 만드는 등 추가 작업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는 13만평까지 확장 조성할 것이며 토끼, 오리, 기러기 등 야생동물을
방사해서 체험 교육장으로의 면모를 갖출 계획이다. 산림청 임업연구원의 산출자료에 의하면 숲의 공익적 기능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95년
기준으로 1인당 년간 8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나무고아원은 단순한 예산 절감을 넘어 환경의 ‘공익적 기능’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산책 공간으로도 일품이다. 나무고아원을 둘러싸고 한강이 흐르고 있으며, 드라이브나 자전거 코스도 멋지다. 때문에 녹지가 무성할 늦봄부터
여름에는 가족이나 연인 단위의 방문객들이 끊임이 없다. 나무고아원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치료가 필요하거나 쓸모 없어진 나무들도 언제나
환영이다. 이양하는 수필 ‘신록예찬’에서나무에게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고 했다. 식목일에는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족과 함께 나무고아원을 산책하며, ‘참다운 기쁨’을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