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인정하고 먼저 인사하는 풍토가 절실하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유학중인 딸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학교에서 성적이 경쟁 위치에 있는 친구가 자신을 시기질투하고 한국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욕설을 하거나 싸움을 걸어온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시험 볼 때 부정행위를 한다며 모해한다고 호소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비싼 돈으로 외국에 나가서도 한국학생들끼리 몰려다니며 싸움을 하다니. 한국학생들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자기들끼리
떼지어 다니며 시간을 낭비한다고 했다. 공부하는 친구를 욕하거나 고등학생이 담배를 핀다는 것이다. 결국 공부 열심히 하는 유학생들은 한국학생들을
기피하거나 한국인이 없는 학교를 찾아 봇짐을 싸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집도 한국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고 거리에서 만나도 무표정하거나 퉁명스럽게
대하는 사례도 있다. 긴요한 정보를 교환하지도 않는다.
필자는 딸에게 ‘멀리도 가까이도 하지 말도록’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분명한 목표를 세워서 옆을 돌아보지 말고 정진하도록’ 조언했다.
친구들과 인간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먼저 인사하며, 먼저 칭찬하고, 먼저 인정하도록’ 타일렀다.
딸의 고통스런 호소를 들으면서 지금 우리 나라 정치나 사회풍토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여야가 모두 대통령 후보를 내기 위해 경선을
하거나 전당대회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후보로 부각되는 사람들이 인사를 먼저 하지 않고 헐뜯고 있다.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사-. 그것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귀담아 듣겠다는 표시이다.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하며 모해하는 것은
신사다운 풍모가 아니다. 옆을 돌아보거나 곁눈질하며 시기 질투하는 것은 ‘더불어 살려는 자세’가 아니다.
필자는 특히 중앙일보에서 ‘사람 사람면’을 담당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각종 사회단체 모임이나 향우회, 대학 동창회를 취재하면서 재미있는
현상을 하나 발견했다. 몇몇 지도자층에 있는 사람 중에도 인사나 악수를 건성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악수를 하거나 명함을 받으면서 상대방을 보지 않고 인사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명함을 받아 음식점 탁자에 놓고 일어서거나 상대방 명함으로
담뱃재를 터는 사람이 있다. 기분이 매우 좋지 않거나 슬며시 화가 솟구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하나 좋은 사례는 약속을 하고 늦거나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이른바 코리안 타임이나 노쇼(No-show) 현상이다. 요즘에는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모임이나 행사들을 주관해 보면 아직도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다. 실제로 호텔이나 항공사는
노쇼 현상으로 상당한 피해를 본다고 한다. 정확한 예측이 어려워 약간 오버 부킹(Over-booking)시켰다가 공항에서 종종 분쟁이 나는
현상도 일어난다. 벌과금을 채택할 수 없는 행사는 주최자가 매우 곤혹스런 처지가 된다.
이웃을 인정하지 않고 먼저 인사하지 않는 풍토는 사회를 삭막하게 만든다. 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특히 정치권은 국가전체가 흔들리는
큰 소용돌이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여야가 진실을 말하지 않고 대치정국으로 흐르면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
이제 21세기, 새로운 시대-. 만물이 소생하듯 우리 민족도 좌절과 고통을 떨치고 분연히 일어서야 할 시기다. 온 국민들이 용기를 갖고
희망찬 미래를 맞을 수 있도록 힘을 합쳐 단결해야 한다. 서로 격려하고 가르쳐주고 이끌어 주는 풍토가 뿌리내려야 한다.
특히 정치지도자들이 앞장서서 말만 앞세우는 ‘국리민복’이 아닌 진정으로 사랑하고 가슴으로 끌어안는 풍토를 뿌리내려야 한다. 상대방의 허물이나
가벼운 실수를 부풀려 깎아내리는 것보다는 정책을 말하고 비전을 제시해 평가받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고 본다.
우리 국민들은 IMF 경제위기에 매우 놀랐다. 어떻게 찾은 나라인데 이 모양인가-. 구조조정과 실직, 물가인상으로 깊히 상처받아 있는 사람들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감싸 주어야 한다. 고통을 나누며 난국을 헤쳐나가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자세로.
고대경영학과/ 대학원경영학과 졸업/ 연세대대학원 경영학 박사과정/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경제부차장)/ 한국공공정책연구원장/ 시사뉴스주필(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