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마니 앙살새… 시누년은 삐죽새”
여성의 한(恨)을 노랫말로 엮어 낸 <어머니의 전설>
“날아다니는
새들과 나비, 곤충들도 모두 제 이름이 있고, 땅속에 사는 지렁이와 굼벵이를 비롯하여 온갖 벌레들도 하나같이 제 이름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만 이름이 없습니다.”
조선시대 여성에겐 이름이 없었다. 고대사회에서도 존재했던 이름이 고려를 거치면서 희미해지다가, 조선시대에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 아무개의
딸에서 아내로, 다시 어머니로 바뀔 뿐이었다.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여성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았을 리 만무하다. 남성의 부속물로 전락한 여성들은, 가슴에 맺힌 한(恨)을 구성진
노랫가락으로 토해 냈다.
구전가요 통해, 차별 받는 여성의 삶 재조명
장시(長時) <순례자>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던 정동주 씨는 여성의 눈물이 듬뿍 밴 노래 73곡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냈다. 그는 여성들이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차별과 모욕, 뿌리깊은 인습의 고난과 능멸과 따돌림, 무엇보다 아프고 서러웠던 가난과
문맹으로 인한 피눈물의 나날들 속에서도 인간의 길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이 노래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조선시대 여성들을 ‘이승살이·저승살이 외에 시집살이라는, 또 하나의 세상을 더 살아야 하는 인고의 주인공’이라고 여긴다. 특히
‘시어마니 앙살새고 시아바지 유달새고 시누년은 삐죽새고, 하다하다 못 살아서 결국 중이 된 며느리’에 대한 구전가요에는 당시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며 살아갔던 여인네들의 하소연이 담겨 있다.
“찢을 년아 발길 년아 본처 없는 첩 있더냐”
또한 지은이는 “찢을 년아 발길 년아 본처 없는 첩 있더냐”는 노랫말을 통해 당시 처첩(妻妾) 간의 갈등이 심각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조선시대의
가부장적 제도를 갈등의 원인으로 꼽는다. 여필종부(女必從夫). ‘아내는 반드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일방적 강요가, 남편이 아니라
같은 약자인 첩을 원수 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편 이 책에서 지은이의 유려한 글솜씨 못지 않게 독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월간 중앙> 권태균 기자가 찍은 빛 바랜 흑백사진들이다.
모진 풍파에 시달려 온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사진들이 마치 수묵화의 여백처럼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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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순 기자 blue@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