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를 넘어서 대중 속으로
지하철 중심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 활발, 개념 정립 등 사회적 합의 필요
“미술
작품을 감상하러 간다”라면 갤러리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때 떠오르는 갤러리의 이미지는 떠들어도 뛰어다녀도 안 되는 고상한 공간일
가능성이 크다. 오랫동안 미술은 갤러리시스템에 갇혀 있었고, 예술은 천재적이고 신성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대중이 미술을 생활과 격리된 고급스러운
또는 지루한 행위나 결과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카이스트 인문과학부 최혜실 교수는 난해한 현대미술이 대중에게 “권태이자 고문이요, 무식한 자신을 자책하는 고해성사”가 되어왔다고 지적한다.
최 교수는 “그야말로 무식한 소리 듣지 않으려고 순수예술에 대한 소양을 지니고 남은 시간은 만화책보고, 무협소설 읽고 액션 영화 보며 낄낄거리게
되었다. 킬링타임용이라며 스스로 알리바이를 주면서도 실제로 위안은 여기서 받는다”고 말했다. 최근 환경과 미술계에 새로운 대안으로 조명
받고있는 공공미술은 이같은 미술의 비대중성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화폭에서 뛰쳐나와 환경조형물에 안주?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는 영국의 존 윌렛이 1967년 ‘도시 속의 미술 Art in a City’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평론가나 수집가 등 소수의 전문가만이 즐기고 소유하는 고급미술의 유통구조를 비판하고, 민주적인 문화 소비를 활성화하는 대안으로 공공미술을
고안했다.
국내에서는 80년대 대중문화의 발전과 함께 본격 거론된 개념이다. 대중문화의 성장에 따라 미술은 여타 순수예술과 마찬가지로 점차 고립되기
시작했다. 창작자들은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고, 그 과정에서 공공미술이 등장했다. 물론 화폭이나 갤러리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미술에 대한 도전의 결과이기도 했다. 현대미술의 주를 이루는 설치미술이 속성상 공공성을 띄는 것도 공공미술의 확산을 더욱 부채질한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90년대까지 국내 공공미술은 실질적으로 건물 조각품 등의 ‘환경조형물’에 한정되어 있었다. 공공미술 기획사 아트 앤 컴퍼니의 이지미
실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공공미술은 환경조형물을 지칭하는 협의적인 의미로 통용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공공미술이 정부의 제도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도시의 빌딩 앞에 즐비해 있는 환경조형물의 대부분은 ‘건축물 미술장식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설치된 것이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
이 제도는, 연면적 1만㎡이상의 모든 민간건축물과 공공건물 건축비용의 1%를 건축물 미술장식에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삭막해져 가는
도시의 환경미화와 예술가의 후원이라는 목적에서 만들어졌지만, 적용 과정에서 각종 부작용을 낳으며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문화적 동기가 부족한 건축주들은 편의적인 작품 설치를 하게 되었고 작가와 건물주, 해당 공무원 사이에 불법 리베이트가 성행하게 된 것이다.
리베이트 룰을 잘 아는 작가가 시장을 잠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 같은 작가의 비슷한, 그리고 장소와의 조화나 시민과의 소통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질 낮은 작품들이 쏟아지면서 시각공해라는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단순한
장식 개념 벗어난 기획 잇달아
이처럼 1% 법안은 공공미술을 양적으로는 확산시켰지만, 질적으로는 한 차원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공미술은 이미
단순한 장식이나 장소적 개념을 넘어섰다. 주변환경과의 조화와 대중과의 소통 쪽에 비중을 두며 포장, 디자인, 인터넷 공간 활용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환경조형물에 국한되어왔던 우리나라의 공공미술은 수용자의 취향과 의사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진정한 의미의 ‘공공성’을 상실한 셈이다. 미술계에서 1%만 공공미술을 실현하고 99%가 공간 채우기에 급급한 흉물이라는 1%법안에 대한
조롱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 의한 것이다.
이 실장은 “개념이 혼재된 상태다. 기획자나 작가들의 자연스러운 훈련의 기회가 없었고, 작가층도 아직 얇다”며 공공미술의 실태를 과도기로
진단했다. 하지만 전망은 밝다. 2000년 8월 폐사택을 이용한 ‘탄광촌 미술관’, 2000년 9월 도심 구석구석에 작품을 설치한 ‘미디어
시티 서울’ 광주비엔날레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을 도화선으로 올해는 특히 공공미술 관련 작업이 활발해졌다.
가장 혁신적인 공공미술의 사례는 지하철 프로젝트다. 2000년 8월 7호선 ‘달리는 도시철도 문화예술관’으로 시작된 문화열차는 세계적으로도
전무한 획기적인 발상이다. 관객들은 “신선하다” “일상의 피로를 풀어준다”며 열띤 반응을 보였다. 외국 언론들도 문화열차를 통해 한국 공공미술의
위상과 관공서의 마인드를 높게 평가했다.
지하철 역사도 곳곳이 ‘갤러리화’ 되었다. 5호선 광화문 역사 내 ‘광화문 갤러리’, 4호선 혜화 역사 내 ‘미술전시관’,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 역사 내 ‘어린이 미술마당’ 등 역사 공간을 이용한 전시 공간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역의 시설물을 이용한 설치 미술이 선보이기도
했다.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의 ‘작은 미술관 - 소풍 프로젝트’는 역사 내의 기둥과 공중전화 부스, 출입구 등을 이용한 작품들이 설치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문화열차도 지속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지하철 5호선과 6호선에는 월드컵의 성공을 기원하는 ‘월드컵 테마열차’가 기획되었다.
월드컵경기장이 있는 상암 역사 내 외부에는 ‘디지털아트네트워크’전이 전시 중이기도 하다.
‘공공’의 개념,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우리나라 공공미술이 지하철을 중심으로 발전한 가장 큰 이유는 자금 확보의 이점에 있다. 제작비를 전적으로 협찬사에 의존하고 있는 공공미술
기획자들은 “이미 거대한 광고시장인 지하철은 협찬사를 찾기 가장 쉬운 공간”이라고 말한다. 물론 대중적이고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은 공공미술을
실현하기에 이상적인 장소다. 외국인들은 지하철에 예술공간이 가능하다는 것은 “한국의 지하철이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증거”라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서구는 범죄의 우려 때문에 조명을 낮추는 등의 예술적 장치는 상상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앞으로 대부분의 미술이 공공미술 형태가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공공미술은 지하철을 벗어나 점차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1%법의 부작용들은 해결되지 못했다. 또한, 공공미술의 개념도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99년 뜨거웠던 포스코빌딩
앞의 초대형 철 조형물 ‘아마벨’의 철거시비가 벌어졌을 때도 공공미술 작품의 주인이 누구인지, 공공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합의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미술은 여전히 심각한 ‘논쟁중’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