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복서’ 김득구 일대기
무리한 눈물샘 강요하는 <챔피언>
지난해 영화 <친구>로 전국 관객 800만명을 동원한 이야기꾼 곽경태 감독이
링 위에서 삶을 마감한 비운의 권투선수 ‘김득구’의 일대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울지마라… 내가 뭐 죽으러 가니. 반드시 이기고 돌아올게’
포스터의 문구에서 나타나듯, <챔피언>은 좌절과 절망을 통해 ‘희망’을 말하는 휴먼 드라마의 공식에 충실한 영화다.
좌절과 절망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김득구의 일생은 더욱 그렇다. 김득구(당시 26세)는 지난 82년
11월 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진 WBA 라이트급 세계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레이 맨시니(21)에게 도전해 14회 KO패를 당한
뒤 나흘만에 숨졌다.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비운의 복서’라는 꼬리표로 남아있는데 감독은 이 꼬리표를 어떻게 떼어내고 ‘희망의
복서’로 풀어 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전반부
박진감 넘쳐
영화는 김득구와 WBA 라이트급 세계챔피언 맨시니의 대결 장면에서 시작한다. 마치 영화 <록키>를 연상 시키는 것처럼 박진감이
넘친다.
무언가 특별한 것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영화 챔피언. 그러나 감독은 무난한 흐름으로 전반부를 풀어간다. 가난하고 불우했던 시절과 7~80년대의
분위기는 사실에 가깝게 재현된다. 이제는 볼 수 없는 버스 안내원과 노란 택시, 김득구가 경미를 쫓아 남산 언덕을 오를 때 나오는 ‘로봇
태권 V’ 음악은 아련한 추억 속의 한 장면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하다.
전작 <친구>에서 보여주었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가 더 진해지고 치밀해졌다고나 할까.
배우들도 권투선수라는 명함에 걸맞게 아쉽지 않은 액션과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숨 가쁜 열기로 가득한 체육관 안에서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샌드백을 치던 청년 김득구의 영상은 매우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동료들과의 힘겨운 트레이닝 과정과 교차 편집되는 13경기는 짧지만 임팩트가
강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극
긴장감 후반 갈수록 떨어져
하지만 김득구를 비추던 카메라에 힘이 들어갈수록 영화는 중심을 잃고 상투적인 이야기를 답습하게 된다. 약혼녀와의 사랑도 여자의 아버지가
반대하면서 여주인공은 갈등도 없이 쪽지 한 장으로 이별을 결정하고, 반대하던 약혼녀의 아버지는 경기 관람 한 번하고 승낙하고…. 김득구의
연인 경미에 대한 묘사는 아쉽게도 뮤직비디오에서 나오는 사랑의 패턴과 다를 바 없고 비운의 복서를 강조하는 장치에 그치고 만다.
또 어렵게 캐스팅한 김득구의 어머니는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어색한 연기로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벌거벗은 몸뚱아리 하나로 버티며 휘청대는 인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감독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영화가 주력했던
인간 ‘김득구’의 모습이 또 다른 주축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지나친 희망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희망에의 강조’는 영화 후반을 강하게
억압한다.
김득구가 결코 비운의 복서만은 아니었다고 외치고 싶은 감독은 그가 숨을 거두는 순간 <친구>에서 따뜻하고 정을 느끼게 해주는
부산 앞바다를 장소만 바꿔 다시 한 번 등장 시킨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앞바다와 죽은 아버지를 자랑스러운 듯 바라보는 아들까지 등장시키면서
억지로라도 관객을 감상에 빠져들게 만든다. 단지 보여주기만 했어도 느낄 것을 감독은 친절하게도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것을 부연 설명해주고
있다.
무리한 감동 요구
감독은 분명 김득구를 둘러싼 시대상을 정직하게 보여주면 그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20년이 지난 지금의 사회로 끌어 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그 반대로 김득구가 죽음에 이르는 바로 그 길, 곧 드라마의 디테일을 보다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그래도 이 영화의 매력은 김득구가 되기 위해 1년 내내 권투 글러브를 끼고 산 유오성의 연기와 몸매다. 그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 무대 인사에서
“최고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인생을 연기했다”라고 말했다. 배우 유오성의 성실한 연기만으로 김득구를 대변하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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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정 기자 kiki0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