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치락 뒤치락 홈런왕 삼국지
송-이 전쟁에 불어온 마풍(馬風)
송지만(29·한화), 이승엽(26·삼성),
마해영(32·삼성)이 2002 프로야구 홈런왕 자리를 놓고 피말리는 진검 승부를 펼치고 있다.
먼저 치고 나간 쪽은 황금독수리 송지만. 그는 개막전 이후 20경기 만에 무려 10개의 공을 담장 밖으로 훌쩍 넘겼다. 이는 지난 90년
이만수(삼성)가 19경기 10홈런을 달성한 이래, 가장 빠른 속도다.
송지만의 홈런 제조 비결은 95년 데뷔 이후 꾸준히 실시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단련된 우람한 근육. 그는 이를 바탕으로 2000년 시즌
초반에 이승엽과 치열한 홈런 경쟁을 펼쳐 ‘송지만 천하’를 열어나가는 듯 했으나, 갑작스런 발목 부상으로 인해 중도 탈락의 비운을 맛봐야
했다.
이후 송지만은 이를 악물고 재활 훈련을 충실히 소화해 내 올해 다시 황금독수리의 위용을 되찾았다.
4월에 황금독수리가 날아올랐다면, 5월에는 라이언킹이 포효했다. 시즌 초 괴력에 가까운 송지만의 홈런포에 기를 펴지 못했던 이승엽은, 5월
들어 ‘국민타자’의 본색을 서서히 드러냈다. 그는 5월 19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송지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17호 대포를 쏘아 올려 올 시즌
처음으로 홈런순위 단독 선두에 나섰다. 이승엽은 올 시즌 개막 전, 타격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상징이었던 외다리타법을 버렸다.
이같은 타격 변화에 대해 파워가 떨어졌다는 일부의 우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킬레스건이었던 낮은 변화구에 대한 대처 능력이 좋아졌다.
그 결과 타율이 무려 3할 3푼을 웃돌고 있으며, 예전에 자주 볼 수 있었던 우두커니 서서 헛스윙 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승엽의 가장 큰 재산은 홈런왕을 세 차례나 경험해봤다는 것. 아무래도 홈런왕을 차지해본 선수가 긴장감이 덜해 후반으로 갈수록 뒷심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투수들이 상대하기 꺼려하는 왼손 타자인 데다가, 유난히 여름에 강하다는 점도 그의 홈런왕 등극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피말리는 라이벌전, 관중들은 즐겁다
6월에는 마풍(馬風)이 거세게 몰아쳤다. 마해영은 6월 11일 부산에서 열린 친정팀 롯데와의 경기에서 시즌 23호 홈런을 터뜨리며 홈런
경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데뷔 이래 가장 많은 홈런을 쳤던 99년 시즌에 고작(?) 35개를 담장 밖으로 넘겼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페이스.
마해영이 이렇듯 폭발적인 홈런포를 가동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에 힘입은 바가 크다. 앞뒤로 이승엽, 김한수, 양준혁
등 내로라하는 타자들이 몰려 있어, 과거 롯데 시절 ‘혼자서 해결해야 했던’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었던 것. 특히 꼭 필요한 상황에서 한방을
터뜨려줘, 그의 홈런은 영양가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의 관록도 그의 첫 홈런왕 등극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뛰는 선수들은 괴롭겠지만, 라이벌전을 지켜보는 관중들은 즐겁기 마련이다. 80년대 중반 프로야구는 두 걸출한 투수 선동렬(해태)과 최동원(롯데)의
라이벌 대결로 바람몰이에 성공해 흥행대박을 터뜨린 바 있다. 또 90년대 후반에는 이승엽과 ‘흑곰’ 우즈(두산)의 치열한 홈런왕 쟁탈전이
침체됐던 프로야구의 중흥을 이끌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등에 업은 프로축구의 개막으로 흥행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올 시즌, 홈런왕을
향한 세 강타자간 대결이 주춤거렸던 프로야구 열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원순 기자 blue@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