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한 현실, ‘마술적 사고’로 극복
어른들을 위한 동화 <환상동화집>
누구나 학창시절 학교에서 나눠준 권장도서
목록을 한 번쯤은 받아보았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목록을 차지하는 책은 바뀌었지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등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청소년들의 권장도서로 꼽히고 있다.
<환상동화집>은 헤세가 동화의 형식을 통해 쓴 독특한 단편과 중편 등 26편을 모은 것으로 1975년 헤세 연구자인 풀커 미헬스가
편집해 <동화 Marchen>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을 번역했다. 이 동화집은 저자의 자기성찰에 가까운 독특한 글쓰기가 그대로
녹아있어 내면을 솔직하고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다.
헤세만의 독특함 잘 드러나
헤세의 작품이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환상동화>라고 불리는 데에는 헤세만의 독특한 마술적 세계관이 큰 몫을 했다. 헤세는 1차
세계대전 중 정신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사고와 가치관에 심한 변화를 겪었다. 때문에 그는 인습적인 가치를 부정하고 ‘마술적 사고’라 불리는
새로운 창작 기법의 세계로 접어들면서 동화를 썼다. 마술적 사고란 내적인 현실과 외적인 현실, 즉 자연과 정신을 동일한 존재 양식에 속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뜻한다. 책에 수록된 ‘다른 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은 이를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다.
어느 평화로운 별에 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자 시신을 장식할 꽃이 부족하게 된다. 꽃 없이 묻힌다는 것은 영혼의 부활을 막는 것이기에
한 소년이 꽃을 청하기 위해 왕에게 파견된다. 도중에 만난 커다란 새가 소년을 태우고 다른 별나라로 데려다준다. 그 별나라는 어린 시절
전설 속에 등장하던 전쟁의 참상이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다. 소년의 자각을 도와준 새는 그를 고향으로 데려다준 후 사라진다. 안내자로서의
임무를 끝낸 것이다. 이 동화는 헤세가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체험한 전쟁의 참상과 무의미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동시에 ‘새의 인도’라는
동기를 사건 전개의 중심으로 삼았다. ‘마술적인 방법’을 통해 새는 주인공의 참된 자아를 찾게 해준 것이다.
코드 읽기의 즐거움
<환상동화집>에 수록된 ‘팔둠’, ‘새’ 등도 역시 1차 세계대전 후 헤세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반영했다. 이 작품에는 구질서의
붕괴와 전쟁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극복하려는 헤세의 바람이 잘 나타났다. 이 외에도 정신치료(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아이리스’,
‘험한 길’ 등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소설 <데미안>처럼 영혼의 심리 치료를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헤세는 동화집에서 현명한 노인, 산, 새 등의 코드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들은 동화 속에서 정신적 투사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에
헤세는 이 코드로 모든 이야기들을 풀어나가고 있다. 이런 코드들이 동화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발견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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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정 기자 kiki0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