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연예관련자 간 ‘검은 거래’ 밝혀져
연예프로그램 개혁의 계기 돼야
연예계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홍보비(PR)의
총체적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연예산업이 대형화되면서 방송연예계의 ‘검은 거래’가 향응이나 금품 수수를 넘어 주식로비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지난 7월 11일 서울지검 강력부(김규헌 부장검사)는 가요순위프로그램 출연을 명목으로 신인 가수의 매니저로부터 거액의 홍보비를 제공받은
공중파방송의 PD와 유력 케이블 음악채널의 제작본부장 등을 구속했다. 또 S, G, D사와 또 다른 S사 등 4대 연예기획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이번 홍보비 사태에 대한 총체적인 수사에서 개인적인 단죄 차원을 넘어 방송가와 연예계 사이의 고질적인 유착관계의 비리구조를
철저하게 밝혀내고, 연예계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제작과 홍보 관행을 근절하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생색내기
수사’ 아니다
특히 이번 검찰의 수사 방식은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과거 연예계 수사가 연예인 매니저 개개인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국내 연예계를 대표하는 4개 기획사가 대상이다. 즉 과거의 개인적인 비리 차원과는 규모와 성격상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
연예계 비리가 대중가요의 홍보비 문제가 아닌 영화감독과 스포츠지 기자, 방송사 간부 등이 얽힌 복합형태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4일 구속된 케이블 음악채널의 제작 본부장은 뮤직 비디오계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인물로 주목을 받았으며 각종 콘서트에서도 뛰어난
기획력을 갖춘 연예계에 알려진 실력자다. 또 지난 21일에 구속된 전 스포츠 신문 부국장은 재직 당시 영화, 가요, 연예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 홍보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챙긴 것이 밝혀졌다.
검찰의 강력 수사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환영을 보내고 있다. 문화개혁 시민연대는 지난 16일 공동선언문을 통해 검찰의 강력한 수사의지를 지지한다고
밝히며,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홍보비의 구조적인 실체가 완전히 밝혀지길 강력히 촉구했다.
자정(自淨)목소리 커지고 있어
검찰의 방송연예계비리 수사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이자, 여러 문화운동 단체들이 엄정한 수사를 지지하며 문화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른바
‘PR비’ 관행은 대중문화에 대한 지상파 TV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높은 데서 출발한 것이다. 또한 TV는 청소년에 영합하는 현란한 대중문화로
무분별한 시청률 경쟁을 벌임으로써 영향력과 비리구조를 심화시켜 왔다.
그런 이유에서 문화운동 단체들은 지상파 TV의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를 우선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인기가수의 경쟁무대이자 신인가수가 얼굴을
알리는 가요순위 프로그램에 로비가 집중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커지자, 가요계를 비롯한 연예계 종사자들 사이에 자정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연예인과 매니저, 방송PD 간의 음성적인
거래 관행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고질적 관행의 뿌리를 들어내는 계기로 보고 있다. 이에 윤도현밴드, 전인권, 강산에, 이은미 등 대중가수
30여 명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정선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는 “최근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기획사와 방송사간 유착 등의 문제는 가요계의
고질적 병폐 가운데 하나로 제작자와 PD뿐만 아니라 가수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음을 반성한다”고 밝히고 있어 이들의 자정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검찰수사를 계기로 방송연예계에 대한 비리와 불법을 척결해 방송 연예프로의 개혁이 이뤄져야 하며,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던 대중문화
산업이 후퇴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됐다.
진희정 기자 kiki037@sisa-news.com